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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철갑선 전투 남군의 CSS 버지니아를 위시하여 5대 군함이 북부의 햄프턴 로드 지역으로 공격하러 간다. 이상하게 생긴 배가 출현하자 북부의 버틀러 진지에서 CSS 버지니아를 포격한다. 그러나 깡통 소리만 들리고 포탄이 튕겨나간다. USS 컴벌랜드가 CSS 버지니아 시야에 들어오고 CSS 버지니아가 포격을 가한다. 컴벌랜드 우현에 구멍이 생기고 CSS 버지니아는 그대로 앞으로 들이받아버린다. 컴벌랜드는 포탄을 쏘면서 격렬히 저항한다. 들이받았는데 이게 다시 빠지지 않게 된다. 잘못하면 컴벌랜드와 버지니아가 동시 침몰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첫 출항에 철갑선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침몰 직전 간신히 빼내는데 성공한다. 겁에 질린 USS 콩그레스는 배에 있는 짐을 싣고 도망간다. CSS 버지니아 포격하여 USS 콩그.. 2024. 4. 9.
서양 최초의 철갑선 노퍽이 왜 중요한 항구이냐면 일단 부동항이고 만이라서 파도가 잔잔하다. 햄프턴 로드라는 구부러진 만도 있어서 육상에 해안포만 잘 배치하면 군항을 방어하기도 쉬웠다. 그런데 남북전쟁발발전 조짐이 좋지 않음을 느낀 당시 노퍽해군기지 사령관 찰스 스튜어트 맥컬리는 어떻게 하지 고민을 하게 된다. 잘못하면 군항이 전부 남부로 넘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행한 예측은 맞았고 남부 민병대가 노퍽 해군 기지를 공격하자 어쩔 수 없이 노퍽 기지 사령관은 군함을 적의 손에 넘길 수 없어서 군함을 불살라 버린다. 남부해군이 노퍽을 보니 시설이 완전히 전소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USS 메리맥은 위에 부분만 타고 엔진은 멀쩡했다. 기왕 위에 다시 만들 것을 위를 철골 구조물을 덧 씌우기로 한다. 철골 구조물을 만들고.. 2024. 4. 8.
포트 로얄 전투 북군은 전쟁 초기 중요한 해군기지인 노퍽을 잃는다. 북부는 해군을 재정비하고 남부를 말라죽이기 위해 해상봉쇄를 위한 계획을 세운다. 봉쇄전략위원회가 조직되고 구체적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보면 알겠지만 미국 영토가 워낙 넓어 전 지역을 봉쇄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방법은 주요 해군 기지는 북부에 두고 남부 중요 지역에 거점을 만드는 것이였다. 그래서 노퍽 밑에 작은 섬과 미시시피강 남단에 작은 섬을 북부가 먼저 선점한다. 다음 타겟으로 남부의 주요 항구인 찰스턴과 서배너를 치고 중간 보급소를 만들기 위해 포트 로열을 치기로 한다. 북군 총사령관 윈필드 스콧과 북군 포토맥군 사령관 조지 맥클레런의 봉쇄에 대한 의견이 달랐다. 맥클레런은 자기가 돋보이고 싶어서 남부의 수도 리치먼드를 공략하기를 원했다. 맥클레런.. 2024. 4. 8.
잉글랜드 엘리자베스 1세 1533년 엘리자베스 1세가 태어난다. 아버지 헨리 8세가 아들을 원해서 별로 환영받지 못한다. 게다가 어머니는 누명을 쓰고 생을 마감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더구나 헨리 8세의 여성 편력으로 어머니가 수시로 바뀌는 변화를 겪게 된다. 헨리 8세가 죽고 그의 아들 에드워드 6세가 9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다. 헨리 8세가 귀한 아들이라며 방을 매일같이 깨끗하게 해주고 건강에 각별히 신경쓴 아들이였다. 그러나 7년후 이 아들이 사망한다. 헨리 8세가 죽기전 여자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다고 법을 만들어준 덕에 다음 후계자가 장녀인 메리 튜더가 된다. 이 사람이 잉글랜드 최초의 여왕이다. 메리는 가톨릭 신봉자였다. 어머니 영향이 컸을 것이다. 가톨릭 수호자를 자처하며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와 결혼한다. 잉글.. 2024. 4. 6.
강상해군의 등장 옛날 해전은 적함을 들이받은 후 병사들이 상대 진영으로 가 백병전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였다. 15세기말 부터 배에 함포를 장착해 이제 포격전이 해전의 일반적 양상이 된다. 16세기부터 군함 옆쪽 (현측) 에 대량의 함포를 장착하기 시작한다. 좌우 어느쪽에서 적을 마주할 지 모르니 양쪽에 대포를 장착한 것이다. 17세기에 전열함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때 부터 본격적 포 경쟁이 시작된다. 요즈음 갤럭시나 아이폰 시리즈 숫자 늘리는 것처럼 계속해서 포대를 늘리고 결국은 3층까지도 포를 꽉꽉 채운 전열함이 등장하게 된다. 옛날에는 배를 들이받아 적함을 깨기도 해야하므로 선수에 무섭고 웅장한 장식을 만들었다. 문제는 배 하중 절반이 뱃머리 였고 돈도 많이 든다는 것이였다. 점점 선수 장식을 없애는 추세로 가게.. 2024. 4. 6.
잉글랜드 헨리 8세 1491년 잉글랜드 왕국에서 헨리 8세가 태어난다. 이 당시 영국은 힘이 약했고 로마 가톨릭이 영국인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헨리 8세 아버지 헨리 7세는 리처드 3세를 몰아내고 새 왕조를 열었는데 이 왕조가 튜더 왕조 였다. 헨리 8세는 어려서부터 영특했다. 외국어,천문학,신학등 다방면에서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첫째형이 있어서 왕위 계승 서열 2위였다.헨리 7세의 첫째 아들은 당시 강대국 스페인 공주 캐서린과 결혼했다. 정략결혼이였다. 불행하게도 형은 일찍 세상을 떠다고 후계자가 헨리 8세가 된다. 형수가 혼자 남게 되자 헨리 7세는 서둘러 형수와 헨리 8세를 결혼시킨다. 결혼 당시 영국은 스페인으로부터 결혼 지참금을 받는데 이 액수가 한 우리나라 돈 420억 정도 되는데 이 돈을 주기 싫었던 것이다.. 2024. 4. 6.
갈릴레오 갈릴레이 2부 수학을 공부했던 성직자 신분의 코페르니쿠스는 천동설의 모순을 발견한다. 천동설에 의하면 하늘은 완벽해서 새로운 별이 생기면 안되는데 코페르니쿠스가 발견한 것이다. 더 나아가 지구가 중심이 아니고 공전과 자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게 바로 지동설이다. 갈릴레오는 무릎을 탁치고 이거다라고 생각한다. 코페르니쿠스는 성직자여서 이런 자신의 생각을 감추고만 있다가 죽기 전에 확 터트린다. 당시 천동설 주장하는 사람은 새로 생긴 별이 천상계와 지상계 중간에 있다는 애매모호한 결론을 내린다. 갈릴레오는 책을 써서 지동설에 힘을 실어 주나 아뿔사 교수 재임용 시기가 오게 된다. 이 때 구원자가 나타나니 메디치 가문의 코시모 2세였다. 갈릴레오가 예전에 수학 과외 해주던 제자였다. 책에 아부를 하는 문구까지 .. 2024. 4. 1.
갈릴레오 갈릴레이 1부 16세기 신에 대한 믿음이 강한 시대였다. 아직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든 과학이 아직도 그대로 믿어지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564년 갈릴레오가 태어난다. 7남매중 장남이였다. 아버지는 갈릴레오에 기대가 컸다. 갈릴레오는 아버지 뜻과 가문을 부양해야하는 의무로 피사 대학 의학부에 입학한다.그러나 갈릴레오는 의학보다 수학에 흥미를 가진다. 19살 갈릴레오는 성당에서 흔들리는 램프를 보고 자신의 맥박으로 그 주기를 측정한다. 이를 이용 환자 맥박을 체크하는 맥박계를 만든다. 또한 진자의 등시성을 발견한다. 등시성이란 진자의 주기는 추의 질량이 어떻든 진폭이 길든 짧든 주기가 같다는 것을 알아낸다. 이는 당시 해시계 같은 시계보다 정밀한 시계를 만드는 원리가 된다. 아버지의 뜻에 반해 수학에 빠진 갈릴레.. 2024. 4. 1.
당나라 측천무후 2부 첫째 아들이 이제 대가리가 굵어져 정치에 관심을 가진다. 더군다나 똑똑해서 여러 신하들 지지까지 받는다. 술독에 담겨 죽었던 소숙비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어느날 첫째 아들이 이 둘을 보게 된다. 결혼도 못하고 궁핍하게 사는 것을 보고 측은함을 느끼고 엄마에게 소숙비 딸들 혼사를 해주자는 건의를 한다. 측천무후는 대노하여 자신의 아들을 독살한다. 이제 황태자는 둘째에게 넘어간다. 그런데 둘째도 첫째 못지않은 재목이였다. 측천무후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둘째도 반역자로 만들고 둘째는 분에 못이겨 자결한다. 683년 고종이 사망하고 셋째 아들이 황제가 된다. 셋째 역시 엄마에게 대항하고 측천무후는 분노하여 2달 후 폐위시킨다. 넷째가 황제가 되고 측천무후는 이번에 아예 황제를 궁안에 가두어버린다. 측천무후는 .. 2024. 3. 31.
당나라 측천무후 1부 측천무후는 624년 산시성 문수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다. 이 시기는 당고조가 어지러운 중원을 통일한 시기였다. 측천무후의 아버지는 목재상 출신의 무사확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당고조를 도와 당 개국에 일조하고 당고조의 총애를 받는다. 당고조는 무사확 아내가 죽자 수나라 황족 출신 양씨를 소개하여 그녀를 소개시켜주고 그녀와 무사확사이에서 딸 세명을 낳는다. 그 중 둘째가 측천무후이다. 이름은 무조이다. 무조는 어렸을 때 범상치 않았다고 한다. 관상가는 황제가 될 상이라 예언했다고 한다. 635년 측천무후가 12살이 되자 아버지가 죽고 당고조도 세상을 떠난다. 무사확에게는 전처가 있었는데 아버지 죽자마자 괴롭힘이 시작되고 이를 피해 어머니와 함께 장안으로 이사한다. 여기서 제2대 황제 태종(이세민)에게.. 2024.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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