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퍽이 왜 중요한 항구이냐면 일단 부동항이고 만이라서 파도가 잔잔하다. 햄프턴 로드라는 구부러진 만도 있어서 육상에 해안포만 잘 배치하면 군항을 방어하기도 쉬웠다. 그런데 남북전쟁발발전 조짐이 좋지 않음을 느낀 당시 노퍽해군기지 사령관 찰스 스튜어트 맥컬리는 어떻게 하지 고민을 하게 된다. 잘못하면 군항이 전부 남부로 넘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행한 예측은 맞았고 남부 민병대가 노퍽 해군 기지를 공격하자 어쩔 수 없이 노퍽 기지 사령관은 군함을 적의 손에 넘길 수 없어서 군함을 불살라 버린다.
남부해군이 노퍽을 보니 시설이 완전히 전소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USS 메리맥은 위에 부분만 타고 엔진은 멀쩡했다. 기왕 위에 다시 만들 것을 위를 철골 구조물을 덧 씌우기로 한다. 철골 구조물을 만들고 그 안에 대포를 넣는 것이다. 남부 해군 장관 스티븐 말로리는 이 철갑선이야 말로 전쟁 양상을 바꿀 것이라 장담한다. USS 메리맥은 CSS 버지니아로 탈바꿈하고 이 함선이 바로 서양에서 제작된 첫 철갑선이라 할 수 있다. 북부도 이 배의 존재를 알게 된다. 북군이 궁금한 것은 이 군함의 성능이였다. 이 배의 정보는 당시 노퍽 해군 기지 인근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던 메리 루베스트에 의해 넘겨진다. 남부 조선 기술자들이 하숙집에 모여 한잔씩하다가 들은 정보를 북군에게 전달한 것이다.
북부는 남군의 이런 철갑선 제조에 놀라 자기들도 철갑선을 만들려고 공모전을 한다. 3대가 채택되는데 2대는 기존 유럽의 방식 처럼 나무 증기선에서 철갑을 대는 일반적인 형태 였다. 또 하나는 아주 독창적인 함선 디자인이 채택된다. 존 애릭슨이라는 사람이였다. 발명왕으로 이름 좀 날리던 사람으로 이 사람은 스크루를 2개 만들어 돌리는 식을 고안해 낸다. 기존 한 개의 스크로 보다 2개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려 안정성을 크게 향상 시킨다. 게다가 애릭슨이 설계한 배는 갑판및 외부가 다 철제였다. 회전형 포탑까지 설계한다. 기존 배들이 배 양쪽에 포를 배치하는 고정식이였다면 이 새로운 배는 360도 포탑을 회전시켜 전 지역을 카바할 수 있게 만든다.
이 새로 디자인 된 배 이름이 USS 모니터이다. 장갑 두께만 20cm 이고 포탑 무게만 160톤에 이르는 엄청난 배였다. 후에 나오는 독일 최신식 타이거 전차 장갑 10cm 보다 두꺼운 장갑을 가졌다. 탑재된 무장도 최신식인 후장식(뒤에서 장전하는 방식)의 달그렌 포 2문이였다. 얘네는 회전형 포탑으로 돌면서 쏘니까 일반 군함 10배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당시 군함 디자인을 완전히 혁신적으로 바꾼 것이였다. 더군다나 선체가 무겁다보니 거의 가라앉을 듯 상태가 되는데 이는 의도된 설계로 아무래도 이러면 선체가 물 밖에 노출이 잘 안되어서 상대가 맞추기 어렵게 된다. 문제는 만드는 시간이였다. 발명왕 에릭슨 답게 공기도 확 줄인다. 1861년 10월 25일에 건조를 시작하여 1862년 1월 30일 드디어 진수되게 된다. 사람들이 완성된 USS 모니터를 보자 뭔 뗏목에 치즈 깡통을 붙인 것 같다고 놀린다.
1862년 2월 17일 남부 해군도 CSS 버지니아를 실전 배치한다. CSS 버지니아는 길이 84m 에 배수량 4100톤 이고 USS 모니터는 길이 55m 에 배수량 1000톤이였다. 양측이 서로 만든 최신식 군함의 충돌을 불가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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