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군은 전쟁 초기 중요한 해군기지인 노퍽을 잃는다. 북부는 해군을 재정비하고 남부를 말라죽이기 위해 해상봉쇄를 위한 계획을 세운다. 봉쇄전략위원회가 조직되고 구체적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보면 알겠지만 미국 영토가 워낙 넓어 전 지역을 봉쇄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방법은 주요 해군 기지는 북부에 두고 남부 중요 지역에 거점을 만드는 것이였다. 그래서 노퍽 밑에 작은 섬과 미시시피강 남단에 작은 섬을 북부가 먼저 선점한다. 다음 타겟으로 남부의 주요 항구인 찰스턴과 서배너를 치고 중간 보급소를 만들기 위해 포트 로열을 치기로 한다.
북군 총사령관 윈필드 스콧과 북군 포토맥군 사령관 조지 맥클레런의 봉쇄에 대한 의견이 달랐다. 맥클레런은 자기가 돋보이고 싶어서 남부의 수도 리치먼드를 공략하기를 원했다. 맥클레런은 또 해상봉쇄에 대해 그건 해군 작전이지 육군이 왜 해군 작전 보조를 스냐며 부정적이였다. 그러다 해군 장관 기드온 웰스가 나서서 포토맥군 사령관과 북부 해군 대령 새뮤얼 듀폰이 만난다.
듀폰 이름 많이 들어봤을 꺼다. 현재 유명한 듀폰 화학 회사 이다. 1800년 프랑스 혁명 시기 E.I. 듀폰이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주한다. 보니까 미국 화학 기술이 형편없음을 알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화학기술을 가지고 화약만드는 사업을 시작한다. 남북전쟁 시기 북부의 중요한 화약 공급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 사람의 조카가 바로 새뮤얼 듀폰이다. 부유한 가문이었지만 새뮤얼의 아버지가 사업을 말아먹어서 새뮤얼을 어린 나이에 해군으로 입대한다. 이 때가 1815년 12살 때이다.당시에는 해군이 어린 나이에 입대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심지어 유럽은 7살 입대도 가능하다. 배 안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것이다. 군 경력을 따지자면 듀폰이 맥클레런보다 한참 선배인 것이다. 둘이 봉쇄작전을 해야 하는데 교착상태에 빠지고 링컨이 직접 나서서 이 둘을 조율한다.
어찌어찌해서 육해군 합동군이 꾸려지게 된다. 그러나 가다가 풍랑을 만나 어수선한 채 작전에 임하게 된다. 예정 도착일에 안 도착한 군함들이 많았다. 육군을 실은 배는 도착도 못한다. 새뮤얼 듀폰은 단독으로 워커 요새를 치기로 한다. 일렬로 쭉들어가서 포격하고 포격 끝난 군함은 다시 돌아와서 장전하고 다시 또 들어가고 이런 식으로 어마어마한 화력을 워커요새에 퍼붓는다. 남군은 북군의 이런 어마무시한 함포 공격에 백기를 든다. 결국 늦게 도착한 육군과 합류 포트로열을 차지하게 된다. 보우리 가드 부대가 있었으나 이미 손쓰기에는 늦어 버렸다.
이 포트 로열 전투에서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형 토마스 드레이튼은 워커 요새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고 동생 퍼시벌 드레이튼은 북부의 해군이였다. 둘이 적군으로 만난 것이다. 원래 둘은 남부 주의 사우스 캐롤라이나 출신이였다. 아버지 윌리엄 드레이튼은 사우스 캐롤라이나 하원의원이였고 제2중앙은행 총재였다. 가만히 있어도 되는 데 연방을 지지한다며 북부 필라델피아로 간다. 이 때 퍼시벌도 따라가고 형인 토마스는 남겨진 노예와 남겨진 재산과 함께 남부에 남게 된다. 둘은 전투 후 모두 살았다. 하지만 형이 가진 재산은 북부가 몰수한다. 형은 빈털털이가 된다. 이 후 남북전쟁에서는 남부인 재산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가 숙제가 된다. 형은 부글부글하고 동생 퍼시벌은 한가하게 다 신의 뜻이고 아버지 뜻이라며 형에게 위로아닌 위로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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