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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미국 남북 전쟁

경계주는 어디로?

by senamu 2024.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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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필드 스콧이 주장했던 아나콘다 계획은 따라 미시시피강 장악이 매우 중요했다. 이 지역을 포함하고 있는 미주리주와 켄터키주가 매우 중요했다. 켄터기는 중립을 표방했고 북군과 남군 모두 이 뜻을 존중했다. 미주리는 남북전쟁 이전부터 내전이 발생하여 치고박고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미주리 주지사 클레이본 잭슨이 연방을 탈퇴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더군다나 민병대 5만명도 소집하겠다고 나선다. 이건 주지사 생각이고 주의원들은 연방에 붙기를 바랬다.

미주리의 남군 합류를 막기위해 북군 서북군 사령관 너새니얼 라이언이 미주리로 진군한다. 이 소식을 들은 미주리 밑에 주에 주둔하던 남군 아칸소와 인디언준주 의용군 사령관 벤자민 맥클로치가 미주리로 진군한다. 라이언 밑에는 프란츠 시겔이라는 북군 서북군 제2여단장이있었다. 이 양반은 독일제국의 바덴대공국 육군 장교 출신이였다. 군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제대한 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다. 유럽 전역에 자유주의 운동이 발발하자 바덴 혁명 공화국 정부에 투신하고 군사령관이 된다. 그러나 프로이센에게 반란은 제압당하고 1852년 스위스와 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다. 1857년에는 뉴욕에서 미주리로 이동한다.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장교 경험이 있다니까 바로 북군 연대장이 된다. 시겔은 독일 이민자들의 히어로였고 독일 이민자들은 그를 추앙하며 노래까지 만든다. 노래 내용은 반란군을 쳐부수러 행진한다는 것이고 한가지 걱정은 맥주 못 마시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양반은 나중에 1862년 북군 포토맥군 11군단장이 되는데 이 군단은 독일 이민자들로 구성된 부대였다. 

1861년 8월 10일 윌슨스 크릭 전투가 벌어진다. 미주리주 방어 사령관 스털링 프라이스와 아칸소에서 지원나온 맥클로치가 합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라이언이 먼저 움직인다. 시겔은 후방을 치기 위해 움직인다. 이 전투는 매너서스 전투 20일 정도 후에 벌어진 전투이다. 그러나 남군은 강했다. 남군이 다시 공세로 돌아서고 하도 죽은 사람이 많아서 피의 언덕(bloody hill)이 생긴다. 북군은 잘 방어하다가 라이언은 3번째 총탄을 맞고 죽는다. 이 라이언이 남북 전쟁에서 죽은 최초의 장성이다. 지휘관을 잃자 북군은 퇴각한다. 이 기세를 남군이 몰아 북군을 섬멸해야하는데 매너서스 전투처럼 추격을 안한다. 북군에게 우리 저력을 보여줬다며 맥클로치가 자기네 주로 돌아간다. 프라이스군은 싸울 동력을 잃게 된다. 이 전투는 북군이 졌지만 미주리주는 이 후로 계속 국지전과 게릴라전이 계속된다. 결국 많은 미주리 지역이 북군 통제하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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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위에는 존 C.프리몬트 라는 북군 서부방면군 사령관이 있었다. 프리몬트는 대표적 정치 군인이였다.

군경력은 거의 전무했다. 이 양반은 남북 전쟁전 원정대를 이끌고 서부길을 개척한다. 거기서 매입한 토지에서 금이 나오고 떼부자가 된다. 정치질을 잘해서 대중에게도 인지도가 상당했다. Great Man 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윌슨스 크릭전투에서 북군이 깨지고 있을 때 그는 사령부에 앉아 장교들과 사치 행각을 한다. 이것이 문제가 되서 감사를 받고 있었다.

프리몬트는 또 노예 해방 선언이 포함된 계엄령을 선포하고 대중들을 선동한다. 링컨이 볼 때 저 놈이 뭔대 감히 대통령처럼 구는 거냐 했을 것이다. 프리몬트는 노여워하는 대통령을 달래기 위해 아내를 보낸다. 그리고 바로 철회 명령을 내린다. 결국 철회하나 이번에는 노예 해방론자가 불만을 갖자 링컨은 적당한 선에서 프리몬트와 타협한다. 링컨은 저 날뛰는 프리몬트를 제어할 필요가 있었다.

프리몬트는 목아지가 날아가느냐 마느냐 기로에 서나 운좋게 구세주가 나타난다. 켄터키는 분위기 상 남군에게 붙을 상황이였다. 가만히 둬도 남군에 붙을 텐데 레오니다스 포크라는 남군 장군이 켄터기 주의 콜럼버스라는 도시를 군사적 요충지라는 이유로 점령한다. 이 양반도 프리몬트 못지않은 정치 군인이다. 포크는 심지어 미 성공회 주교였다. 목사님이 군대를 이끈 것이다. 목사가 군대를 이끄는 것은  뭔가 신의 군대라는 느낌을 줄 수 있고 많은 남부 지역의 대중적 지지를 얻기 위한 포석이 깔려있었다. 노예제도를 종교적으로 합리화도 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포크가 군사적 요충지를 장악한다며 켄터키의 콜럼버스를 친 것이다. 테네시 주지사는 켄터키 연방 탈퇴를 위해 애썼는데 뒤통수를 맞게 된다. 남부 대통령 데이비스에세 철군을 요청하나 포크는 요지부용이였다. 그러나 이 지역은 전방은 물론 후방도 뻥뚫린 지역으로 군사적 가치가 무의미한 지역이였다. 이런 정치 군인들이 판치는 이 지역에 참 군인 하나가 나타난다. 제대로 군사 요충지인 파두카와 스미스 랜드를 먹은 북군 인물이 있었다. 그가 바로 율리시스 그랜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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