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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미국 남북 전쟁

50달러 율리시스 그랜트

by senamu 2024.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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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군에는 율리시스 그랜트가 있고 남군에는 로버트 리가 있다. 거의 남북전쟁의 쌍벽이다. 이 둘은 훗날 전차 이름에도 붙을 정도로 명성을 떨친다. 특히 율리시스 그랜트는 남북전쟁이 끝나고 1869년 대통령에도 오른다. 현 미국 50달러 지폐에 그랜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그만큼 미국인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어린시절 그랜트는 내성적이였고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오죽하면 Ulyssess 라는 이름을 Useless 즉 쓸모없는 그랜트라고 불릴 정도이다. 그러던 그가 오하이오 하원의원의 추천을 받아 미육사에 입학한다. 지금도 미육사는 들어갈 때 연방 주의원이나 주지사등의 추천과 성적이 우수해야 들어간다고 한다. 입학 후도 별 두각없이 조용히 지낸다.

그러다가 1848년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보급 장교로 복무하게 된다. 전쟁 후 그랜트는 결혼을 하게 된다. 전쟁이 끝나자 그랜트는 서부로 배치되게 된다. 당시 서부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은 매우 여려웠다. 이동 중 전염병이나 사고로 많이 사람들이 죽는 것이였다. 그랜트는 이런 위험성으로 홀로 캘리포니아로 간다. 가족과 떨어진 그랜트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술에 빠진다. 술 먹다 지각도 하고 근태가 상당히 안 좋아 진다. 여러 상관에게 불량한 놈으로 찍힌다. 그랜트 상관인 로버트 뷰캐넌은 불성실한 그랜트에게 제대하라고 압박하고 결국 1854년 7월 그랜트는 제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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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생계를 위해 이리 저리 다양한 사업을 시도한다. 그러나 하는 사업마다 말아 먹는다.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데 이 무렵 남북전쟁이 터진다. 전쟁당시 그랜트는 일리노이주에 있었다. 그는 장교 경험이 있다며 주지사에게 달려가 연대장 시켜달라고 조른다. 주지사는 주정뱅이라고 하던데 하면서 거절한다. 그러자 오하이오 주지사를 찾아가 같은 요구를 한다.

근데 이 지역 민병대 책임자가 바로 맥클레런이였다. 맥클레런은 그랜트와 안면이 있었다. 어떤 놈이 술먹고 군복무한다고 들은 것이다. 당연히 그랜트를 거절한다. 실패인가 싶었지만 일리노이 주지사에게 연락이 온다. 장교가 부족하니 부대 하나 맡으라는 것이다. 그랜트는 한 걸음에 달려가 이 조건을 수락한다. 그러나 이 군대는 완전 말썽꾸러기 오합지졸 부대였다. 그랜트는 여기서 잠재된 능력을 발휘한다. 솔선수범하면서 카리스마로 부하들을 잘 다스린 것이다. 주지사는 놀라고 다른 부대도 하나 둘씩 맡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술 버릇은 여전했다고 한다. 마시면 혼술하고 폭주하는 것이다. 한번은 조사관이 그랜트가 술병 꺼내는 모습을 포착한다. 근무 중 술을 먹는다고 생각했으나 마셔보니 사과주였다. 당시 사과주는 애들도 먹을 정도로 술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음료수였다. 위스키만 아니면 되었다. 그는 조사관에게 난 근무중 술 안마신다라고 한다. 현대전도 그렇지만 군대의 보급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습득한 보급 장교 경험은 그랜트에게 큰 자산이 된다. 앞으로의 전쟁에서도 그렇지만 맥클레런은 재느라고 공격할까 말까 고민할 때 그랜트는 과감한 행보로 차곡차곡 북군에 승리를 가져오게 된다.

그랜트는 파두카와 스미드랜드를 먹은 후 벨몬틀 기습 공격해 빼았는다. 거의 아마 북군의 첫 승리였다. 북군 병사는 약탈에 정신이 없었고 그러다가 포크가 북군 배를 빼앗고 그랜트를 포위한다. 그랜트는 다시 빠져나가지 뭐하며 공격하고 때마침 북부 해군이 포격으로 도와준다. 벨몬트 점령 후 콜럼버스로 가려던 그랜트 계획은 수포가 된다. 여기서 그랜트는 육해군 합동작전의 중요성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북군 장성 중 거의 유일하게 공세적 장성으로 인식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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