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분류 전체보기298

기독교의 시작 2부 여러가지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 인식에는 기독교와 유대교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유대교와 달리 이들 종교는 탄압의 대상이 된다. 기독교의 교리는 평등사상이 있었다. 로마 제국의 계급 사회를 깨고 하나님의 나라인 평등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모든 민족도 동일하다는 인식도 한다. 도저히 당시 로마로써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남녀평등도 강조한다. 로마인들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게 너무 강조된 나머지 독신을 이상적 삶으로 추구한다. 로마에서는 결혼을 장려하고 가부장을 중시하는 사회였다. 결혼을 해야 애가 나오고 이 애가 커서 군인도 하고 농민도 하고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 편견을 가지기도 한다. 기독교에서 빵은 내 몽이고 내 피는 포도주라며 행해지는 성.. 2024. 3. 30.
기독교의 시작 1부 내란 극복 후 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는 팍스로마나 라는 새로운 시대를 개막하게 된다. 땅도 커지고 살기좋은 로마가 된다. 아우구스투스는 신경써서 82개의 신전을 복구한다. 당시 로마는 일상이 종교였고 한 사람이 수많은 신을 섬기고 있엇다. 영토도 넓어지면서 그 지역 신들도 받아들여 각양각색의 신이 생기게 된다. 신이 너무 많으니까 종합선물세트처럼 모든 신을 모으는 신전인 판테온도 생기게 된다. 이런 여러 신과 더불어 반드시 섬겨야하는 신이 있었다. 바로 로마 황제와 그의 가족들이였다. 아우구스투스는 아버지 카이사르를 신으로 모시는 신전을 로마 곳곳에 건립하기도 한다. 한편 지금의 이스라엘 영토에서는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유대교를 믿고 있었는데 이 유대교는 하느님을 유일신으로 섬긴다. 따라서 로.. 2024. 3. 30.
칭기스칸 2부 칭기스칸은 금을 치려한다. 금나라는 당시 최강국이였고 경제도 매우 왕성한 나라였다. 치기가 쉽지 않은 나라였다. 그러나 타타르족을 이용 한 짓을 생각하면 가만 둘 수 없었다. 먼저 금을 치기전 배후인 서하를 먼처 친다. 칭기스칸은 서하 격파 후 많은 재물 얻고 서하 왕은 딸을 받치게 된다. 이제 금나라를 치러간다. 금나라는 칭기스칸 군대와 싸우는 법을 알고 있었다. 높은 성에서 굳건히 방어전을 펼친다. 몽골군은 포위한 후 제비 만마리와 고양이 천마리를 요구한다. 금나라는 뭔 일인지 알아내기 위해 포로를 심문하고 포로는 식량으로 쓸려고 그럴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금나라는 이 요구를 들어준다. 그러나 이는 함정이였다 이들 동물에 불을 붙여 다시 성 안으로 돌려 보낸다. 육상과 공중에서 동물들이 날뛰며 .. 2024. 3. 28.
칭기스칸 1부 1162년 11월 12일 테무진(칭기스칸)이 탄생한다. 아버지 이수게이가 메르키트 부족장 부인을 약탈해서 그 부인과 결혼을 하여 낳은 아들이다. 당시 약탈혼은 흔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테무진 잉태 당시 태몽을 꾼다. 게르(몽골 천막 집)에 빛이 들어오더니 그 빛이 어머니 뱃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와 더불어 이 아이는 나중에 세계를 호령할 꺼야라는 음성도 들렸다고 한다. 태어날 때도 핏덩이를 꼭 쥐고 태어났다고 한다. 테무진이 태어난 그 때는 몽골 초원은 혼란 그 자체 였다. 크게는 나이만,메르키트,커레이트,타타르 족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그 외 잡 부족들로 분열되어 있었다. 동쪽에는 금나라가 있었는데 같은 유목민을 경계해야겠는지 몽골부족을 통제하려 한다. 그 앞잡이로 타타르를 낙점한다.테무진은 이들 부.. 2024. 3. 28.
50달러 율리시스 그랜트 북군에는 율리시스 그랜트가 있고 남군에는 로버트 리가 있다. 거의 남북전쟁의 쌍벽이다. 이 둘은 훗날 전차 이름에도 붙을 정도로 명성을 떨친다. 특히 율리시스 그랜트는 남북전쟁이 끝나고 1869년 대통령에도 오른다. 현 미국 50달러 지폐에 그랜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그만큼 미국인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어린시절 그랜트는 내성적이였고 거의 존재감이 없었다. 오죽하면 Ulyssess 라는 이름을 Useless 즉 쓸모없는 그랜트라고 불릴 정도이다. 그러던 그가 오하이오 하원의원의 추천을 받아 미육사에 입학한다. 지금도 미육사는 들어갈 때 연방 주의원이나 주지사등의 추천과 성적이 우수해야 들어간다고 한다. 입학 후도 별 두각없이 조용히 지낸다. 그러다가 1848년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보급 장교로 복무.. 2024. 3. 27.
경계주는 어디로? 윈필드 스콧이 주장했던 아나콘다 계획은 따라 미시시피강 장악이 매우 중요했다. 이 지역을 포함하고 있는 미주리주와 켄터키주가 매우 중요했다. 켄터기는 중립을 표방했고 북군과 남군 모두 이 뜻을 존중했다. 미주리는 남북전쟁 이전부터 내전이 발생하여 치고박고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미주리 주지사 클레이본 잭슨이 연방을 탈퇴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더군다나 민병대 5만명도 소집하겠다고 나선다. 이건 주지사 생각이고 주의원들은 연방에 붙기를 바랬다. 미주리의 남군 합류를 막기위해 북군 서북군 사령관 너새니얼 라이언이 미주리로 진군한다. 이 소식을 들은 미주리 밑에 주에 주둔하던 남군 아칸소와 인디언준주 의용군 사령관 벤자민 맥클로치가 미주리로 진군한다. 라이언 밑에는 프란츠 시겔이라는 북군 서북군 제2여단장이있.. 2024. 3. 27.
레오나르도 vs 미켈란젤로 2부 미켈란젤로는 1475년 카프레세에서 태어난다. 나중에 미켈란젤로가 유명해져 이 마을은 카프레세 미켈란젤로 마을이 된다. 레오나르도보다 23살 정도 어리다. 어렸을 때부터 로렌초 (메디치 가문)의 눈에 띄어 미술 공부할 기회를 얻게 된다. 어렸을 때 부터 메디치 가문이 수집한 여러가지 서적이나 작품을 볼 기회가 아주 많았다. 실력을 쌓던 미켈란젤로는 일생일대의 역작을 만들어낸다. 로마로 가서 피에타를 조각한 것이다. 이 피에타는 현재 바티칸 공화국 성베드로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대리석으로 옷 주름,근골격,핏줄까지 정말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다. 중세의 피에타와 비교하면 게임이 되지 않는다. 미켈란젤로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해부학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였다 어떤 사람들은 성모마리아가 너무 크고 예수를.. 2024. 3. 26.
레오나르도 vs 미켈란젤로 1부 14~16세기 전후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난다. 기존까지 사회는 신 중심이었으나 점차 인간 중심의 그리스,로마 고전문화를 부활시키련는 문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특히 이탈리아에 있는 여러 도시국가는 양모무역및 금융업등으로 많은 돈이 생겼다. 자본을 축척하게 된 가문이 생겨난다. 그 중 대표적인 도시가 피렌체였다. 돈 좀 있는 가문들은 문화와 예술에 자신들의 돈을 투자하기 시작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1452년 4월 15일에 태어난다.다빈치라는 이름은 빈치 마을에서 태어났음을 의미했다. 정상적인 가족이면 좋겠으나 유명한 공증인이었던 아버지와 일반 계층인 어머니의 사생아로 태어난다. 레오나르도는 자연을 보고 자라다가 우연히 그의 아버지가 레오나르도 그림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너.. 2024. 3. 26.
일본 전국 시대 3웅 2부 오다 노부나가는 살아 생전에 전국 통일을 보고 죽었을까? 아니다. 일전에 말했던 아케치 미쓰히데 즉 오다 노부나가에게 모욕을 당했던 장본인이 배신을 때린다. 히데요시가 원정군을 보내 줄 것을 요청하자 노부다가는 그에게 지원군을 보낸다. 그 지원군 사령관이 미쓰히데이다. 그는 오다가 있는 혼노지로 진군하여 오다 노부나가를 죽여버린다. 이 소식은 원정나가있던 히데요시에게 들어가고 이 기회를 호기로 여긴다. 재빨리 말을 달려 미쓰히데를 처단하러 간다. 가면서 노부나가가 살아있다며 자신에 합류하라고 히데요시는 거짓으로 사람들을 꼬드긴다. 결국 원래 원정군 2만에 다른 세력 2만이 불어나 4만의 병력과 미쓰히데가 전투를 벌인다. 1582년 야마자키 전투가 벌어지고 히데요시는 승리한다. 오다 노부나가에게는 3명의 .. 2024. 3. 25.
일본 전국 시대 3웅 1부 1543년 일본 규슈 남쪽에 작은 섬 다네가에 포루투칼인이 표류한다. 당시는 대항해 시대 였다. 다네가섬 영주는 포루투칼의 화승총(노끈에 불을 붙여 탄환 발사하는 총)에 위력에 놀라고 2정을 구입하게 된다. 이를 복제하여 2년만에 일본식으로 그럴 듯하게 모조품을 만드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가격도 비쌌고 날씨와 습도에 따라 불을 잘 못 붙여 발사 자체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장전에서 발사까지 과정이 까다롭고 오래걸려 그 전에 적의 공격을 받고 뒤지기 쉽상이였다. 그런데 이런 화승총을 주시한 이가 있었다. 그가 바로 현 나고야 지역의 영주 오다 노부나가 이다. 때는 전국시대로 각 지역의 영주가 서로 자웅을 겨루는 시기였다. 그 기간이 무려 100년이였다... 2024. 3. 25.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