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스칸은 금을 치려한다. 금나라는 당시 최강국이였고 경제도 매우 왕성한 나라였다. 치기가 쉽지 않은 나라였다. 그러나 타타르족을 이용 한 짓을 생각하면 가만 둘 수 없었다. 먼저 금을 치기전 배후인 서하를 먼처 친다. 칭기스칸은 서하 격파 후 많은 재물 얻고 서하 왕은 딸을 받치게 된다. 이제 금나라를 치러간다. 금나라는 칭기스칸 군대와 싸우는 법을 알고 있었다. 높은 성에서 굳건히 방어전을 펼친다. 몽골군은 포위한 후 제비 만마리와 고양이 천마리를 요구한다. 금나라는 뭔 일인지 알아내기 위해 포로를 심문하고 포로는 식량으로 쓸려고 그럴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금나라는 이 요구를 들어준다. 그러나 이는 함정이였다 이들 동물에 불을 붙여 다시 성 안으로 돌려 보낸다. 육상과 공중에서 동물들이 날뛰며 성안을 불태운다. 죄없는 동물을 폭탄으로 쓴 것이다.
금나라와의 전쟁이 마무리되고 서요는 쫄아서 그냥 칭기스칸의 속국이 된다. 옆나라인 호레즘 왕국이 눈에 들어온다. 이 호레즘 왕국은 당시 문명도 엄청 발달했고 실크로드 중심국가로 엄청 부유했다. 보기에도 딱 가지고 싶은 나라였다. 칭기스칸은 호레즘과 교역을 해보자며 접근한다. 사실은 호레즘 전투능력을 염탐하기 위해서 였다. 호레즘은 이를 간파하고 사신을 모두 죽인다. 칭기스칸은 이번에는 화해하자며 접근한다. 두번째 사신도 다 죽자 1218년 칭기스칸은 직접 말을 타고 호레즘으로 간다.
몽골군은 변화무쌍하게 병력을 운영했다. 합쳐지고 분열하면서 적을 교란하고 무찔렀다. 이미 호레즘도 이를 잘알아 버티기 작전에 돌입한다. 칭기스칸은 성을 공격하면서 항복하면 살려는 드린다며 회유책도 쓴다. 몇몇 도시는 힘없이 굴복하기도 하고 어떤 도시는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메르브,헤라트,나샤푸르 이런 도시가 특히 저항이 심했다. 특히 나샤푸르에서 전투중 칭기스칸 사위가 전사하는 일이 벌어진다. 화가 난 칭기스칸의 아들은 이 지역에 숨쉬는 모든 동물과 사람을 살해한다. 수도까지 진군한 몽골군은 사신을 잡아 죽이는데 일조한 이날축이라는 사람을 붙잡는다. 눈과 귀에 끓는 은을 부어서 죽여 버린다.
호레즘 국왕은 겁에 질려 백성들 버리고 도주한다. 몽골군은 국왕을 찾아 여기저기 뒤지다가 러시아까지 가게 된다. 러시아는 화들짝 놀라고 군대를 5~8만 정도 모아 몽골군에게 간다. 당시 몽골 추격군은 2만 정도였는데 러시아군이 오니까 그럼 한번 붙어보지하고 싸우게 된다. 여기서 유럽과 몽골군이 첫 전투를 벌이는데 이 전투가 칼카강 전투이다. 러시아는 군세만 믿고 덤볐다가 대패한다. 몽골은 잡힌 지휘관들을 예우한다며 멍석을 말아 자무카 죽인 방식으로 말로 밟아 죽여버린다. 호레즘 국왕은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가 이름없는 지역에서 쓸쓸히 최후를 맞이한다.
몽골군이 강한 것은 일단 말을 달리면서 뒤로 돌아서 활 쏘는 것이 가능했다. 적에게 도망가는 척해서 적을 유인해 갑자기 뒤를 돌아 화살을 날린 것이였다. 퇴각하면서 마름쇠 같은 것도 뿌려 적에게 타격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보급도 필요 없었다. 저 먼거리를 원정할 수 있던 것도 보급이 필요가 없어서였다. 육포같은 것을 말안장에 넣고 씹어먹으면서 전투를 한것이다. 육포가 말안장에 있으면 이게 잘 다져져서 스테이크 처럼된다. 이게 햄버거 안 패티의 기원이 된다. 병사 하나당 말도 한 대여섯마리도 끌고 다녔다. 말이 지치면 다른 말로 교대해 가면서 전투를 벌인다. 기동력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법률도 몽골군 강함을 뒷받침한다. 전투중 999명이 쓰러지고 한명이 살아남아 그 전투를 이겼다해도 전우와 같이 남지 않아서 이 병사도 처형당한다. 개인보다 전우의 단합을 이렇듯 강조한다.
호레즘을 정벌하자 복기하던 중 속국이였던 서하가 군대를 보내라는 명을 듣지않은 사실을 안 칭기스칸은 서하를 치러간다. 이 때 나이가 65세였다. 서하를 치러가던 중 말이 부족하다며 야생마를 몸소 잡으러가다가 낙마하는 사고가 발생한다.결국 칭기스칸은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칭기스칸은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다. 결국 무덤 위치도 비밀에 붙여진다. 무덤 조성에 참여한 인부 역시 모두 죽임을 당한다. 후대에 무덤을 찾으려 기를 썼지만 아직도 못찾고 있다.
칭기스칸이 죽자 셋째 아들이 칸직을 승계하고 칭기스칸 자손들은 세계 정복 시작한다. 독점적 실크로드 완성과 세계정복이라는 목표로 동서로 정복전쟁을 벌인다. 유럽으로 진군하여 헝가리 국왕 벨라 4세에게 항복 권유한다.
갑작스런 침공에 놀란 폴란드와 헝가리는 서둘러 연합군 조직하고 리그니츠 전투 발생한다. 기세 좋게 중기병대 중심으로 선제 공격을 가하자 몽골군은 도망가기 시작한다. 기만 전술이였다. 갑자기 뒤로돌아 화살을 쏘기 시작한다. 화살에 독까지 발라져 있었다. 유럽연합군은 박살나고 지휘관 목을 잘라 창에 걸고 죽은 병사 귀를 잘라 자루에 넣었다. 그 수가 헤아릴 수 없었다. 유럽은 공포에 질린다. 몽골군은 여세를 몰아 유럽을 휩쓸어 버린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빈까지 갔다가 갑자기 퇴각을 시작한다. 1241년 우구데이칸이 과음으로 40대 초반에 사망한 것이다.
그 후로 여러 칸을 거쳐 쿠빌라이칸에 이르러 남송을 정벌하여 천하를 다 얻는다. 이젠 동서 사방으로 한 나라의 통치아래 교역로가 연결된다. 실크로드를 모두 연결한 것이다. 역참이라는 것을 우구데이 칸 때에 처음 건설 시작하여 쿠빌라이 시절 절정을 이르게 된다. 역참은 여행자들이 잠시 쉬기도 하고 국가 행정의 통신 업무도 수행하는 중추 시설이였다. 우리말 중에 한참 걸린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역참 사이의 거리를 의미한다. 또한 중국에서는 오늘날 기차역에 역참의 참자를 사용한다. 몽골은 자신들이 지배자라고 해서 자신들 문화를 강요하지 않는다. 종교적 자유,그리고 모든 민족의 고유한 전통을 유지하며 살아가게 한다. 몽골 지배 체제에 저항만 안하면 모든 자유가 보장된 것이다. 이런 자유 속에 마르코폴로는 동방견문록을 작성하고 동양의 신비를 서양에 알리게 된다. 오늘날 지금 세계도 이루지 못한 세계 통합을 몽골은 그 시절 이루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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