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4년 동서교회의 분열로 기독교는 혼란을 겪게 된다.이런 와중에 서쪽에서 세력을 키우던 이슬람교의 셀주크 왕조가 예루살렘을 먹어버린다.예루살렘은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의 성지였다.기독교에게는 예수의 무덤이 있는 곳이고 유대교에게는 최고의 성지인 통곡의 벽이 있는 곳이다.또한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하마드가 하늘의 계시를 받았다는 바위의 돔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셀주크 왕조는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기독교인들에게 순례를 오지 말라고 한다. 더불어 기독교의 수호자인 비잔티움 제국까지 위협을 가하게 된다.비잔티움은 서유럽국가에게 도움을 청한다.서유럽 입장에서도 이슬람 세력 확장은 경계 대상이였다. 비잔티움이 무너지면 칼은 서유럽으로 향할 것이 뻔했다.
교황 우르바노 2세는 좋은 기회로 여긴다. 비잔티움을 이슬람으로 부터 지키고 이 기회에 분열된 동서 교회도 화합하고 자신의 권위도 높여보자며 군대를 모집하기로 한다.1095년 남부 프랑스에서 개최된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우르바노는 대중앞에 서서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자며 지지를 호소한다.청중들은 감동하고 "데우스 로 불트"(신이 그것을 원하신다) 며 너도나도 십자군에 동참한다. 이 글귀는 마조레 대성당의 거룩한 문 앞에 새겨져 있기도 하다.교황이 모든 유럽을 다 돌아다닐 수는 없으므로 선교사들이 이 문제를 해결한다. 선교사들이 십자군 모병에 적극 나선다.그 중 모병에 탑은 은자 피에르 라는 사람이였다.신의 메세지를 받았다며 군중을 홀려 많은 백성들이 생계마저 버리고 입대하게 된다.
유럽각지에서 모병한 병사가 10만에 이르게 된다.1096년부터 1099년 까지 1차 십자군 전쟁의 서막이 오르게 된다.이들은 무장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무기는 농기구 였고 옷차림도 남루했다.거의 거지꼴 이였다.예루살렘 위치도 몰라 물어물어 행군하게 된다.우여곡절끝에 비잔티움 제국 국경에 다다른다.비잔티움 국경 수비대는 웬 거지 집단이 와서 십자군이라고 하니까 경계하게 된다.어째든 도우러 왔다니까 통과되고 비잔티움의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하게 된다.비잔티움 황제 알렉시우스 1세는 이들 민중 십자군을 보고 경악한다.거지 꼴인 이들이 자신의 제국에 두면 사고를 칠 것 같아 서둘러 배를 마련해 나가 싸우라고 등을 떠민다.이들의 결과는 뻔했다.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거의 다 죽게 된다.
민중 십자군과 다르게 유럽의 기사와 귀족들로 구성된 원정대도 도착한다.이 들은 갑옷으로 무장하고 제대로된 무기도 갖추고 있었다.비잔티움 황제는 뭔가 될것 같다며 안심하지만 한 편으로 이들이 딴 마음을 먹을 까봐 걱정한다.그래서 원정군의 비용을 대줄테니 획득한 땅을 내놓으라는 딜을 제안하고 십자군은 수락한다.
십자군은 이슬람 세역이 있는 니케아로 간다.성벽이 견고해 뚫지 못하다가 십자군은 잔인한 방법을 사용한다.이슬람인들의 머리통을 성안으로 던진 것이다. 니케아 사람들은 하얗게 질리게 되고 십자군은 승리를 목전에 둔다.하지만 비잔티움 황제는 미리 손을 써서 니케아와 협상을 비밀리에 벌여 니케아를 자기 땅으로 해버린다.십자군과 비잔티움의 신뢰관계가 바스러 지게 된다.십자군은 화가 나고 땅이나 먹자며 안티오키아로 가게 된다.8개월 공격에도 진전이 없자 돈으로 성벽을 지키는 사람을 사서 안티오키아를 함락 시킨다.8개월 동안 헐벗은 십자군은 재물을 차지하기 위해 여기 사람들을 학살하기 시작한다.이 안에는 소수의 기독교인도 있었으나 이들도 참살당한다.종교보다 돈이 우선이였다.
안티오키아가 점령당하자 이슬람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슬람군은 이 성을 포위해버린다.약탈은 끝나고 십자군은 독안에 갖힌 쥐가 된다.밥도 떨어지자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그 때 롱기누스 창이 성안에서 발견된다.이 창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릴 때 로마 병사가 예수를 찌른 창이였다.롱기누스 창은 갖는 사람이 세계를 정복한다는 전설이 있다.나폴레옹도 이를 찾으려 애썼고 히틀러는 손에 넣기도 한다.하지만 2차대전 패전으로 롱기누스 창은 오스트리아로 넘어가게 된다.롱기누스 창을 등에 엎은 십자군은 성 밖으로 나아가 이슬람군과 싸우고 승리한다, 포위가 풀리자 배고파서 사방을 돌아다니며 식량을 약탈하게 된다.1098 12월 마라 라 불리는 마을 발견하고 식량이 없자 사람을 잡아 먹는다.십자군 내부에서도 이에 대해 반대해서 시체를 못 먹게 불태우기도 하나 소용 없었다.더군다나 이슬람인들이 재물을 안 뺏기려고 금화를 먹었다는 소문이 일자 시체의 배를 가르고 금화를 찾으려 혈안이 되기도 한다.신의 비호로 이들은 이슬람인들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하게 된다.거의 8천에서 2만에 이르는 마라 시민이 살해된다.
배를 채운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진군하기 시작한다. 1099년 6월 예루살렘에 도착 이슬람군과 전투를 벌이게 된다.식인까지 한 군대여서 그런지 십자군은 이슬람군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탈환한다.여기서도 대규모 학살을 하게 된다.이슬람측 기록에는 7만여명이고 십자군 기록에는 1만여명으로 되어있다.성 십자가도 발견한다.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를 발견한 것이다.십자군은 본래 목적을 달성하자 자기들 끼리 이해 관계에 따라 분열된다. 서로 자기 잘났다고 나라를 세우게 된다.예루살렘에는 이제 순례객이 모여들기 시작한다.예루살렘은 점점 대도시로 번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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