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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AD_1200_1499

잉글랜드 헨리 8세

by senamu 2024.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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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1년 잉글랜드 왕국에서 헨리 8세가 태어난다. 이 당시 영국은 힘이 약했고 로마 가톨릭이 영국인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헨리 8세 아버지 헨리 7세는 리처드 3세를 몰아내고 새 왕조를 열었는데 이 왕조가 튜더 왕조 였다. 헨리 8세는 어려서부터 영특했다. 외국어,천문학,신학등 다방면에서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첫째형이 있어서 왕위 계승 서열 2위였다.헨리 7세의 첫째 아들은 당시 강대국 스페인 공주 캐서린과 결혼했다. 정략결혼이였다. 불행하게도 형은 일찍 세상을 떠다고 후계자가 헨리 8세가 된다. 형수가 혼자 남게 되자 헨리 7세는 서둘러 형수와 헨리 8세를 결혼시킨다. 결혼 당시 영국은 스페인으로부터 결혼 지참금을 받는데 이 액수가 한 우리나라 돈 420억 정도 되는데 이 돈을 주기 싫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형수캐서린은 자신이 초야를 안치루었다며 아서 튜더 와의 결혼을 취소하고 헨리 8세에게 간 것이다. 교회법에는 이혼이 없는데 성적 결합이 없으면 결혼이 취소 가능했다고 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도 이들의 결혼을 승인한다.

튜더 왕조 연지 얼마되지 않아 왕권을 좀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아들이 절실했는데 캐서린은 아들을 낳지 못한다. 3남3녀가 태어나긴 하지만 다 죽고 1516년 태어난 딸 메리만 살아남는다. 훗날 이 아이가 피의 메리로 불리는 영국 최초 여왕이 된다. 부부사이는 멀어지고 헨리 8세는 앤 불린이라는 캐서린의 시녀와 눈이 맞아 버린다. 앤 불린은 프랑스어와 라틴어에 능통하고 예술분야에 조예가 깊었다. 당시에 잉글랜드 시녀는 명문가 출신의 교육받은 여성만 될 수 있었다고 한다.프랑스 궁정생활 했다며 프랑스식을 고집하기도 한다. 어째든 헨리 8세는 이런 앤 불린이 마음에 들었다. 앤 불린은 정식 결혼을 요구한다. 교회법에 의거 이혼은 되지 않았다. 고민한 헨리 8세는 성경구절 레위기 20장 21절 구절을 갖다 붙여서 캐서린과 결혼을 무효와 시킨다. 그와 동시에 앤 불린과 결혼한다. 

로마 가톨릭 교황은 펄쩍뛴다. 골치아픈 헨리 8세는 이 기회에 잉글랜드 교회 수장이 되기로 한다. 원래 교회는 교황이 대빵이였는데 자신이 스스로 교황과의 관계를 끊고 영국 교황이 된 것이다.이게 수장법이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반역의 죄로 다스리게 한다.캐서린이 수녀원 안간다고 버티자 빈털터리인 채로 궁에서 쫒아낸다. 수장법으로 잉글랜드 국교회가 성립되고 교황은 헨리 8세를 파문해 버린다. 종교개혁이 되어버린 것이다. 점차 개신교 신학을 수용해 여성도 사제가 되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10년 넘게 헨리를 보좌한 토머스 울지를 교황에게 혼인 무효 허가를 못 받아낸 구실을 붙여 해임하고 그 뒤 후임인 토머스 모어를 앉히나 이 양반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로 앤 불린 대관식에 안가서 헨리 8세의 눈밖에 나게 된다. 결국 런던탑에  갖히고 처형된다. 헨리 8세의 오른팔로 토머스 크롬웰이 낙점된다. 헨리 8세는 아들을 원했으나 앤 불린은 딸을 낳고 만다. 이 아이가 엘리자베스 1세이다. 1536년에 아들을 임신하나 하필 이때 헨리 8세가 마상 시합하다가 낙마하고 이 충격으로 유산하게 된다. 이 사산일은 공교롭게 캐서린 장례식일과 같았다고 한다. 이 시기에 부실 수도원을 정리한다며 수도원 재산과 토지를 몰수하여 국고에 귀속시킨다. 이 과정 속에서 불만을 품은 세력들이 나타나고 헨리 8세는 군대를 동원 강제 진압하고 주동자들을 반역죄로 처벌한다. 본보기를 삼겠다며 반역자들 사지를 찢어 전시하는 만행도 저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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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불린이 아들도 못 낳자 실망한 헨리 8세의 바람기가 또 도지기 시작한다. 앤 불린의 시녀인 제인 시모어가 눈에 들어온다. 제인 시모어는 보란듯 헨리 8세 그림이 새겨진 목걸이를 걸고 다녔고 앤 불린이 이를 목격 불륜 사실을 눈치채게 된다. 핸리 8세는 제인 시모어와 결혼을 위해 앤 불린에게 간통죄및 근친상간이라는 말도 안되는 누명을 씌우고 참수한다.그리고 참수 다음날 제인 시모어와 약혼하고 결혼한다. 제인 시모어는 아들을 낳지만 그녀는 산후 후유증으로 죽는다.

국모 자리가 비자 이번에는 해외에서 클레페 공국의 앤 공주를 데려오기로 한다. 신부의 얼굴이 궁금해 궁정 화가 한스 홀바인에게 신부 그림을 그려오라고 지시한다. 그림을 본 헨리 8세는 흡족해하면서 버섯발로 마중을 나간다. 그러나 그림과 실물이 달라 왕은 대노하게 된다. 주선을 추진했던 오른팔 토마스 크롬웰은 참수당한다. 이런 와중에 클레페 공국의 앤 공주는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눈물어린 편지를 보내고 이를 중간에 인터셉터한 헨리 8세는 감동한다. 리치몬드 궁과 연금을 지급하고 종종 궁정에도 초청해 고민도 털어 놓는다. 그러나 둘은 여사친으로 남게 된다. 시녀 킬러인 헨리 8세는 이번에는 클레페 앤 공주의 시녀를 눈독들이게 된다. 거의 딸 벌인 10대의 캐서린 하워드였다. 문제는 캐서린 하워드가 남자 문제가 아주 복잡했다는 것이다. 헨리 8세 시종과도 바람피고 왕실로 자기 애인도 데려오고 뭐 거의 막나간다. 헨리 8세는 격노하여 캐서린 하워드와 주변 남자를 모두 참수한다. 캐서린은 사형 전날 처형대로 쓰일 나무 받침대를 구해서 느낌이 어떨까라며 고민했다고 전해진다.

이제 6번째 아내 캐서린 파가 등장한다. 그녀는 이전에 2명의 남편과 사별한 경험이 있었다. 현명하고 이해심이 많았다. 헨리 8세 때문에 꼬여버린 족보를 중간에서 잘 정리한다. 이런 노력 덕분으로 1544년 헨리 8세는 왕위 계승법을 제정해서 두 딸을 공주로 인정하고 왕위도 이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다.

이렇게만 보면 헨리 8세는 화려한 여성 편력의 소유자로만 보인다. 하지만 헨리 8세는 잉글랜드 국교회를 만들어서 오늘날 까지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헨리 8세는 해군에 큰 관심을 보인다. 군함도 직접 설계할 정도 였다. 당시는 갈고리로 함선끼리 붙어서 백병전을 벌였는데 이를 탈피 대포를 발전시킨다. 해군청도 신설한다. 이런 이유로 헨리 8세는 영국 해군의 아버지라 불린다. 게다가 훗날 왕이 되는 딸 엘리자베스 1세가 대영제국으로 가는 기틀을 만들게 되는데 그 근원이 되는 해군력을 이 때 부터 다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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