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전체 글512 진주만 공습과 독일의 위기 1941년 12월 5일~6일 소련군은 독일군에게 총반격을 실시하게 된다.독일군은 모스크바 진격은 무리라 보고 쉬는 상태였는데 소련군은 재빠르게 펀치를 뻗으며 독일 진영으로 공격을 가하게 된다.병력은 독일이 많아 보이는 듯 하지만 이는 후방에 길게 늘어진 병력도 포함한 것이였다.독일군은 기갑사단을 너무 진격시켜놨다.보병이 옆에서 카바를 쳐주어야 하는데 너무 돌격 위주로 가다보니 방어선 여기저기에 구멍이 있었다.소련군 보병이 전선의 틈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차량화 부대들은 이리저리 기동하며 연료와 탄약을 낭비하게 된다.결국 장비를 버리고 몸만 빠져나오는 참극이 벌어지게 된다.남쪽 지역도 마찬가지로 독일군은 쓸려나가게 된다.후방은 더 혼란에 빠진다.소련군 수백만이 쳐들어 온다며 소문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 2026. 3. 23. 목함지뢰,에이스의 죽음 독일군은 소련군 방어선을 뚫지 못하고 이제 조금씩 밀리는 형국이 전개된다.남쪽 북쪽 모두 튕겨나온다.독일군 2기갑사단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돌파구를 마련하게 된다.일부 부대가 힘키라는 곳으로 전진하고 이 길에 소련군 방어선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다.여기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20km 정도였다.독일 선전에는 이 시기 크렘린궁을 보았다고 했느데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크렘린궁을 폭격에 대비해 위장해서 잘 안보였고 이 곳은 고지대도 없었다.독일군은 지원군을 더 부르기 위해 퇴각한다.하지만 이곳은 독일 기갑사단이 진격을 멈춘 종점이 된다.훗날 그 지점에 대전차 장애물이 세워지고 소련은 이를 기념하게 된다.힘키로 지원군이 왔으나 전진은 하지 못한다.목함지뢰가 곳곳에 매설되어 있었다.금속탐지기로 탐지가 어렵게 지.. 2026. 3. 23. 오르샤 회의와 충격군 독일은 현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오르샤 회의를 개최한다.독일 총참모총장 할더가 참석한다.모든 고급 지휘관들이 이 회의에 참석하게 된다.여기서 멈추고 방어 모드에 들어가야 하나 더 돌진해 모스크바로 진격해야 하느냐를 결정해야 했다.현장 지휘관들은 보급이 엉망이라며 방어를 해야 한다.주장한다.하지만 방어 모드는 애초에 옵션에 없었다.오직 공격이였다.모스크바를 점령하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느냐가 의제였다.할더는 이제 다왔다.실패한다는 것은 너희들의 의지가 나약해서야 라며 지휘관들을 질책하기에 이른다.독일군은 정보도 실패하고 있었다.막타만 치면 소련군이 붕괴할 것이라 본 것이다.하지만 소련군은 예비대를 계속 늘리고 있었다.독일이 모스크바 공략으로 방향을 정한 것은 앞선 역사의 교훈 때문이였다.독일은 1차대.. 2026. 3. 22. 코스모데 먄스카야 독일의 보급은 일단 큰 곳은 철도로 하고 간선은 차와 말로 운반하는 시스템이였다.뱌지마가 철도 교통의 핵심이였다.철도 교통의 문제는 독일의 기차폭과 소련의 기차폭이 다르다는 것이였다.철로를 사람이 직접 독일 기차에 맞게 맞추고 있었다.철도를 고정하는 못을 빼고 레일을 들어올리고 폭을 맞춘후 레일을 설치하고 다시 못을 박는 식이였다.모든 것은 수동이여서 더딘 상황이였다.소련 기차를 그대로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으나 독일군은 초기에 신나서 소련 기차를 다 때려부수는 대형 실수를 하고 있었다.독일군은 현대화된 이미지로 영화나 이런데서 많이 나오지만 실상은 트럭의 부족분 상당분을 말이 담당하고 있었다.말이 태어나면 등록제를 통해 언제든지 징발이 가능한 체계를 만든다.서유럽 말은 덩치가 상당히 커서 거대한 짐 나르.. 2026. 3. 22. 열병식과 맥주홀 독일군이 주춤하는 사이 소련군은 병력을 보충하고 방비를 강화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된다. 소련은 10월부터 극동에 배치되어있던 군사들을 빼내 모스크바로 집결시키게 된다.소련은 이미 첩보를 통해 일본이 소련 극동 쪽으로 기어 올라오지 않고 남쪽 태평양 쪽으로 진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여자 치마폭에 놀던 조르게가 이와 같은 첩보를 스탈린에게 전달한다.나치가 소련을 치려 한다고 보고를 올렸을 때는 쌩까더니 이번에는 조르게를 믿게 된다.독일공군은 1941년 7월부터 모스크바를 향해 폭격기를 날리며 공격을 했다.조명탄을 투하하고 소이탄과 고폭탄을 쏘면서 폭격을 극대화했다.하지만 10월 시점부터는 독일 공군의 힘이 빠지면서 공세 수위가 낮아지게 된다.설상가상으로 영국은 독일 공군의 암호를 깨고 독일 공군의 공.. 2026. 3. 22. 모자이스크 방어선 T-34가 독일군에게 쇼크는 주었지만 큰 흐름은 독일군의 우세였다.소련은 어떻게든 독일군이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것을 막기위해 안간힘을 쏟게 된다.1941년 10월 무렵 소련군 병력은 800만이였지만 전선이 넓었고 이 모든 병력을 모스크바 방어에 쓸 수는 없었다.예비대까지 투입하는 족족 깨지고 뱌지마하고 브랸스크에서는 120만명의 병력을 투입하며 방어하려했지만 괴멸되고 만다.순간적으로 모스크바 수비 병력이 9만명으로 떨어지는 위기 상황에 닥치게 된다.이 소식은 모스크바 시민에게 전해지고 시민들은 패닉에 빠지게 된다.모스크바 관공서에서는 중요 문서를 불태우게 된다.시민들은 더 불안에 빠지게 된다.엔카베데 총수 베리야는 식량을 무상으로 나누어 주라는 명을 내리지만 모스크바 시민들은 서로 약탈하며 자기 몫을 챙.. 2026. 3. 17. 카투코프 와 므첸스크 전투 우수한 T-34 전차는 바르바로사 작전 초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급하게 만들어져서 일선에 배치되다 보니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꾸역꾸역 800여대가 배치되었느나 대다수 전차는 주행 한 번도 못한채 배치되어 있었다.각 부대는 그냥 수령만 해놓고 있었다.교범도 늦게 나오는 바람에 어떻게 움직이는 지도 몰랐다.막상 전쟁이 터지니 활용을 하겠다고 전차를 몰고 나가지만 운영 미숙으로 독일군에게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만다.1941년 10월이 되자 소련군은 T-34를 좀 다루게 될 줄 알게 된다.4기갑사단이 가다가 므첸스크에서 T-34를 만나게 된다.독일은 전차를 유기적으로 운용하며 T-34를 유도해서 격파하려 하나 소련군은 쉽게 걸려들지 않고 있었다.독일군과 싸우는 법을 조금씩 터득한 것이다.소련군 전차는 거꾸.. 2026. 3. 17. T-34 전차 소련군은 T-34라는 명전차를 가지고 있었다.17기갑사단은 신나게 전진하다가 T-34를 처음 접하게 된다.독일군은 T-26 소련 경전차만 보유한 질떨어지는 나라라 생각하고 있었다.37mm 포로 그냥 날릴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T-34는 모두 튕겨낸다.독일군 전차 2개를 때려 부수고 독일군은 큰 쇼크에 빠지게 된다.T-34는 독일전차가 수집장갑이였던 것과 다르게 경사 장갑이였다.이러면 포탄이 장갑을 때렸을 때 수직 장갑으로 치면 70mm 이상의 효과를 볼 수 가 있었다.경사장갑에는 탄을 뾰족한 것보다 뭉퉁한 것이 효과적이였다.하지만 탄이 뭉퉁하면 공기 저항으로 탄이 잘 날아가지 못한다.그래서 사람들은 생각한다.날아갈 때는 뾰족한채로 날아가다가 부딪히면 탄이 뭉퉁해지면서 장갑을 부수는 탄(피모철갑탄)을 개발.. 2026. 3. 15. 태풍 작전 1941년 가을 시점 독일은 북부와 남부가 어느 정도 평정되었다고 보고 다시 중부 집단군을 모스크바로 향하게 한다.남부에 있는 부대는 부산 이남에서 올라와야 해서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전선도 길고 진격은 여의치 않았다.독일군은 모스크바가기전 소련군을 양익포위로 일단 잡아먹고 다시 팔을 뻗어 모스크바를 공략하는 태풍작전을 시작한다.독일의 다음 목표가 모스크바라는 것은 소련도 알고 있었다.키예프가 떨어지면서 많은 수의 포로가 잡히면서 시간을 벌게 된다.그 사이 소련은 민간인을 대거 동원 참호를 구축하고 방어 시설을 만들게 된다.예비군도 총동원된다.18세부터 45세 남자들은 필수 인력 빼고 전부 전장으로 가게 된다.소련은 전쟁이 장기화되면 될 수록 병력이 불어나고 있었다.문제는 늘어나는 병력을 어떻게 통제하느.. 2026. 3. 15. 쇼스타고비치 와 타냐 일기 독일의 빠른 진격과 레닌그라드 고사 작전으로 레닌그라드에는 물자가 부족해진다.식량창고가 독일군 공격에 잿더미가 되며넛 레닌그라드 상황은 나날이 악화된다.발트해와 라도가 호수로 물자를 공급할 수 있었으나 발트해쪽에서는 공급처가 없었고 라도가 호수는 변변한 접안 시설이 없어서 물자를 나룻배로 옮기다 보니 양이 제한적이였다.레닌그라드에 갖힌 시민은 200만명이였다.식량은 하루에 1000여톤이고 물자나 탄약 이런것이 많이 부족했다.독일 공군은 수시로 순찰하면서 물자가 집적되면 폭탄을 퍼부었다.41년 9월 8일에는 대형 식량 창고가 독일 공군 폭격에 불타버린다.고의적으로 소이탄을 투하했다.목재로 만들어진 건물인데다가 기름까지 았어서 피해는 더 컸다.그나마 있던 식량마저 불타버리게 된다.레닌그라드 시민들은 식량창고.. 2026. 3. 15. 이전 1 2 3 4 ··· 52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