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1년 12월 5일~6일 소련군은 독일군에게 총반격을 실시하게 된다.독일군은 모스크바 진격은 무리라 보고 쉬는 상태였는데 소련군은 재빠르게 펀치를 뻗으며 독일 진영으로 공격을 가하게 된다.병력은 독일이 많아 보이는 듯 하지만 이는 후방에 길게 늘어진 병력도 포함한 것이였다.독일군은 기갑사단을 너무 진격시켜놨다.보병이 옆에서 카바를 쳐주어야 하는데 너무 돌격 위주로 가다보니 방어선 여기저기에 구멍이 있었다.소련군 보병이 전선의 틈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차량화 부대들은 이리저리 기동하며 연료와 탄약을 낭비하게 된다.결국 장비를 버리고 몸만 빠져나오는 참극이 벌어지게 된다.남쪽 지역도 마찬가지로 독일군은 쓸려나가게 된다.후방은 더 혼란에 빠진다.소련군 수백만이 쳐들어 온다며 소문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다.패닉에 빠져 전방으로 가야하는 보급품 뒤로 빼야 하는 보급품이 엉키면서 난리가 나게 된다.







뒤숭숭한 전선에 동쪽에서 빅뉴스가 터진다.일본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한 것이다.독일 육군은 뻥치게 된다.아니 우리를 도와 소련 동쪽을 쳐야지 뭔 짓이냐며 아연실색하게 된다.히틀러는 생각이 달랐다.아우가 큰일을 해냈다며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참모들은 미국이 독일을 치지도 않았는데 뭐하러 선전포고를 해서 적을 늘리냐며 만류하지만 소용 없었다히틀러는 진주만 공습이 크게 성공했다며 상황을 낙관하고 있었다.이때까지 히틀러는 소련 정도는 제압이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미국이 일본과 싸우면서 소련을 도와주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독일이 유리한 것 아니냐는 희망회로를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독일은 영국,미국,그리고 소련까지 또 다시 양면전쟁 늪에 빠지고 있었다.처칠은 진주만 공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미국이 참전하라며 구애를 펼쳤는데 일본이 그 고민을 덜어준 것이다.처칠은 혹시 미국이 유럽을 버리고 일본을 우선시 할까봐 그걸 걱정하게 된다.스탈린도 기뻐한다.일본이 소련 동쪽 옆구리를 칠 일이 없게 된 것이다.










전선에 있는 독일군 지휘관들이 여기저기서 퇴각 요청을 하자 히틀러는 총통 지령 39호를 발령 독일군에게 방어모드로 전환하라는 명을 내리게 된다.전선에 튀어나온 곳을 버리고 뒤로 물르게 된다.소련군은 기세 좋게 밀어는 붙이나 독일은 나름대로 기동 방어를 하며 소련군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고 있었다.겨울은 독일군에게 치명타였지만 소련군도 마찬가지였다.혹자는 소련군이 독일군을 몰아낸 것은 동장군 덕 아니냐 하며 평가절하하기도 한다.로코숍스키는 겨울만 아니였으면 독일군을 진작에 때려 눕혔을 거라며 자신들의 힘으로 독일군을 몰아냈다고 주장한다.문제는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선이 왔다갔다 하면서 둘 다 적이 보급을 못하게 청야 작전을 실시했다는 것이다.전선 중간지대에 사는 주민들 중 남자는 징집되고 여자들은 집을 잃으면서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다.




독일 수뇌부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독일 육군 총사령관 브라우히치가 낙마한 것이다.브라우히치는 전부터 심장이 좋지 않았다.12월이 되자 잘하면 판이 깨질 수 있다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히틀러는 브라우히치의 속도 모르고 갈구고 조롱을 일삼게 된다.브라우히치는 갈굼에 불리한 보고를 누락하게 되고 이게 또 히틀러를 더 열받게 하게 된다.총참모장 할더가 전면에 나서게 되고 브라우히치는 사임하게 된다.히틀러는 누굴 후임자로 하지 하다가 전속 부관인 슈문트 대령이 이 고민을 덜어준다.현 독일 육군을 구할 뿐은 히틀러라고 아부를 떤 것이다.히틀러는 기뻐하며 육군 총사령관을 덥석받고 받자마자 모든 독일군 퇴각 중지라는 명을 내리게 된다.









브라우히치는 덕망있는 장교였는데 심장병을 이유로 사임한다니 말들이 많았다.12월 초순 많은 수뇌부들이 잘리게 된다.히틀러가 직접 작전을 통제하는 식이 되버린다.중간에 주요 지휘관들이 없어지면서 명령체계는 단순해 졌다.명령은 초고속으로 나갈 수 있었으나 한 번 잘못된 지시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히틀러는 까라면 까는 충직한 사냥개 스타일의 지휘관을 원하고 있었다.장교들이 의지가 부족하다며 깡을 보여주라며 무대포식 지휘를 내리고 있었다.일선에 장교들은 이게 의지만 가지고 될 일이냐며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대세는 기울고 있었다.장교들의 말대로 후퇴했다고 해서 대세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독일은 소련을 너무 쉽게 봤다.그 전까지의 서유럽을 평정한 군사적 성과가 독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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