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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독소전쟁

목함지뢰,에이스의 죽음

by senamu 2026.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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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은 소련군 방어선을 뚫지 못하고 이제 조금씩 밀리는 형국이 전개된다.남쪽 북쪽 모두 튕겨나온다.독일군 2기갑사단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돌파구를 마련하게 된다.일부 부대가 힘키라는 곳으로 전진하고 이 길에 소련군 방어선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다.여기서 모스크바까지의 거리는 20km 정도였다.독일 선전에는 이 시기 크렘린궁을 보았다고 했느데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크렘린궁을 폭격에 대비해 위장해서 잘 안보였고 이 곳은 고지대도 없었다.독일군은 지원군을 더 부르기 위해 퇴각한다.하지만 이곳은 독일 기갑사단이 진격을 멈춘 종점이 된다.훗날 그 지점에 대전차 장애물이 세워지고 소련은 이를 기념하게 된다.

힘키로 지원군이 왔으나 전진은 하지 못한다.목함지뢰가 곳곳에 매설되어 있었다.금속탐지기로 탐지가 어렵게 지뢰를 나무로 만든 것이다.원래는 TNT 를 200g 채워서 밟으면 사람이 죽게끔 되어 있었다.하지만 폭약 부족으로 75g 정도만 넣게 되고 이게 의외의 효과를 불러온다.적군의 발목을 날려 버린 것이다.독일군이 폭약이 많았다면 그냥 다 터트리고 전진하면 되었지만 그렇기에는 싸울 물자도 모자랐다.사람이 비스듬히 꼬챙이로 찔러가며 확인하고 전진해야 하는데 이러면 전진이 더디어 지고 바로 소련군 먹잇감이 될 것은 뻔했다.보급도 오지 않는 마당에 마냥 전진하는 것도 무리였다.

믿었던 독일 공군도 초반보다 약화되어 있었고 겨울이라는 악천후에 개점휴업 상태가 된다.독일 4군은 열악한 환경에도 전선을 돌파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짜내보나 소련의 역공에 주저 앉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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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불운은 계속된다.독일 공군의 상징인 우데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우데트는 공군 조종사로써 출중한 에이스였다.초창기 괴링과 같이 독일 공군 창설의 주역이였다.하지만 나이가 들어 조직을 관리하는 위치에 가게 되자 적성에 안맞아 스트레스를 이빠이 받고 있었다.동부전선에서 독일공군이 힘을 못쓰자 비난은 우데트에게 가고 괴링은 일처리를 이따구로 하냐며 갈구기 시작한다.우데트는 술로 괴로움을 달래다가 자살에 이르게 된다.독일은 우데트를 자살로 할 수 없었다.신무기를 테스트하다가 죽은것으로 사건을 덮게 된다.장례식은 성대히 치루어 진다.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1941년 11월 20일 묄더스가 폭격기를 타고 귀환하는데 악천후로 사망하게 된다.묄더스는 독일 공군 최초로 적기 100여기를 잡은 에이스 오브 에이스였다.두 에이스가 거의 같은 시기에 하늘로 가게 된다.

소련의 주코프는 드디어 때가 왔다고 판단한다.독일의 공세가 멈추고 이제 소련군이 반격을 가할 차례가 온 것이다.독일의 악재는 소련에게는 호재였다.주코프는 5개 야전군을 동원 독일에게 공세를 가할 작전을 마련하게 된다.1942년에 주코프의 활약을 담은 선전영화가 만들어진다.주코프의 활약에 스탈린은 자신이 밀리는 거 아니냐며 경계하게 된다.하지만 2차대전이 끝나자 스탈린은 주코프를 토사쿠팽하고 47년 선전영화에서는 주코프를 뺀다.

주코프의 반격은 제한적이였다.독일군이 힘이 빠졌더라도 완전히 독일군을 격파하기에는 소련군의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제한된 곳에 공격을 가하고 모스크바로 부터 100~150km 정도 독일군을 밀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된다.이러면 한 번도 물러서지 않고 전진했던 독일군은 정점에 오른 후 내리막이 시작되는 것이고 소련은 바닥에 있다가 치고 올라가는 상황이 전개된다.이런 상황은 레닌그라드쪽과 우크라이나 쪽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독일은 공세 한계점에 이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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