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34가 독일군에게 쇼크는 주었지만 큰 흐름은 독일군의 우세였다.소련은 어떻게든 독일군이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것을 막기위해 안간힘을 쏟게 된다.1941년 10월 무렵 소련군 병력은 800만이였지만 전선이 넓었고 이 모든 병력을 모스크바 방어에 쓸 수는 없었다.예비대까지 투입하는 족족 깨지고 뱌지마하고 브랸스크에서는 120만명의 병력을 투입하며 방어하려했지만 괴멸되고 만다.순간적으로 모스크바 수비 병력이 9만명으로 떨어지는 위기 상황에 닥치게 된다.이 소식은 모스크바 시민에게 전해지고 시민들은 패닉에 빠지게 된다.





모스크바 관공서에서는 중요 문서를 불태우게 된다.시민들은 더 불안에 빠지게 된다.엔카베데 총수 베리야는 식량을 무상으로 나누어 주라는 명을 내리지만 모스크바 시민들은 서로 약탈하며 자기 몫을 챙기고 있었다.공권력은 무너지고 시내 곳곳에 방화가 일어나게 된다.엔카베네는 불손 세력을 잔혹한 방법으로 색출하여 처형한다.10월16일에는 나치당 노래가 방송을 통해 나오게 된다.방송 사고 였는데 지금도 그 이유는 모른다.사람들은 독일이 이미 들어온거 아니냐며 더더욱 멘탈이 나가며 날뛰게 된다.1941년 10월 17일 스탈린이 나선다.자신은 모스크바를 버리지 않겠다는 것이다.스탈린이 전황을 바꾼 2번의 사건이 있는데 하나가 모스크바 남겠다는 이 날 결심하고 나중에 펼쳐질 스탈린 그라드 전투 당시 명령 22호였다.















모스크바 방어 책임자 주코프는 모스크바의 모든 물적 자원과 인력을 동원 독일군에 맞써기 위한 방어 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다 동원한다.여성,청소년,노약자가 동원되어 삽으로 땅을 파게 한다.산을 하나 만들 정도로 엄청난 흙이 파내진다.거기에 방어 시설을 무진장 설치한다.만일에 벌어질 시가전을 위해 시내 곳곳을 요새화하게 된다.모든 시민들이 방어 요새 구축에 투입되다보니 날뛰는 사람도 줄어들게 된다.




웬만한 군수 공장은 동쪽으로 옮겼으나 아직 남아있는 공장에서는 방어물을 만드느라 풀가동을 하게 된다.모든 인력과 물자가 독일 진격을 막기 위해 동원된다.






독일은 방어진이 갖추어 지기전에 빨리 모스크바로 진격해야 했다.계획은 신속하게 여러 방면에서 모스크바를 쳐야 했지만 하늘이 돕지 않게 된다.길이 진흙밭이 되면서 차량 움직임에 제동이 걸린다.보로디노 쪽이 그나마 양호했다.이 길로 부대들이 몰리면서 교통 체증이 벌어지게 된다.때리기 좋게 일렬로 진격하게 된다.이곳은 나폴레옹의 프랑스군도 진격에 실패한 곳이였다.독일의 일부 사단은 여의치 않아 차를 버리고 보병처럼 싸우게 된다.










독일군은 보급도 어려워진다.진흙으로 트럭이 잘 안움직이게 된다.소련군은 곳곳에서 독일의 보급로를 노리면서 독일군은 식량까지 부족해 진다.10월25일에는 비행기가 빵을 공급해 줄 정도였다.남부 역시 진흙에 고전하고 있었다.구데리안은 므첸스크에서 한 펀치 얻어 맞고 진흙 장군을 만나게 된다. 카투코프는 상부에서 잘막는다며 모자이스크로 불러들여 독일군을 괴롭히게 된다.소련의 이런 진흙을 라스푸티차 라고 한다.소련같은 저개발 국가는 도로보다 철도망을 우선시 했다.물자 운송은 철도가 짱이였다.도로가 후순위다보니 비포장도로가 많고 라스(~가 없다)푸트(길)이차 (길이 없어진 상태)가 잘 생기는 것이였다.




















우리나라가 6.25 때 육사 생도가 투입해서 북한군 남진을 막으려 했듯 소련군 역시 사관생도들이 투입된다.목표는 모자이스크 방어선을 구축하기 전까지 독일군 진격을 막는 것이다.5일을 버티라 했으나 무려 12일 동안 독일군을 붙잡고 늘어지며 방어선 구축에 힘을 보태게 된다.민병대도 애를 쓰게 된다.징집 안된 남자들이 민병대를 자처 하며 정규군이 방어라인을 잡을 때까지 나가서 싸우며 희생하게 된다.거의 70%의 인원이 작살나게 된다.이 시기들어서는 소련군이 끝까지 항전하는 사례가 많아진다.독일군이 소련군 포로 대하는 방식이 매우 안좋았다.어차피 잡히면 죽는다며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것이였다.결국 독일의 태풍작전을 10월31일에 잠시 멈추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