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전체 글292 프로이센 vs 나폴레옹 일찍이 프리드리히 대왕은 프로이센에 위기가 올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여전히 독일은 분열되어 있었고 서로 각자의 이익대로 움직였기 때문이다.프리드리히 대왕은 그래서 죽기 전에 우리나라 고려 태조가 죽으면서 남긴 훈요 10조같은 유훈을 남겨 후세에게 경각심을 준다.정말 큰 위기가 들이닥친다.나폴레옹이 움직인 것이다.프로이센은 선전 포고 후 병력을 대대적으로 소집하고 선전포고문을 나폴레옹에게 전달하기 위해 애쓴다.하지만 나폴레옹은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프로이센은 나폴레옹 군대를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치고 박고 싸우고 있었다.그 사이 나폴레옹은 프로이센 영토로 한발 한발 가고 있었다.어디서 막을지 프로이센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나폴레옹 군대는 튀링어발트 산지를 넘어버린다.우리나라로 치면 탄금대정도 되는 곳이다.안막.. 2025. 3. 6. 프로이센군의 특징 프랑스가 주었던 하노버땅을 다시 거두어들여 영국에 주자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격분한다.당시 프로이센은 머리가 많이 굵어져 있었다.러시아와 폴란드를 나누어 먹어서 그 세력이 만만치는 않았다.프랑스에게 이런 굴욕을 당할 이유가 없던 것이다.여론도 들끓게 된다.빌헬름 3세는 당시 최강 육군 전력의 프랑스에게 선전포고를 한다.프로이센은 육군을 동원하면 최대 15만 정도 동원이 가능하다고 보았고 좀 버티면 러시아군도 자신들을 도울 것으로 생각한다.이런 자신감은 괜히 나온것이 아니였다.프로이센은 여러 외침을 많이 받았는데 그 중 북유럽 강국 스웨덴도 있었다.프로이센은 일찍부터 방어하기 좋은 지형이 아니고 주변 열강에 둘러싸여 있다보니 속전속결이 몸에 밴 군대였다.1679년 스웨덴이 침공하자 재빠르게 .. 2025. 3. 4. 프로이센 성장 영국은 앵글인(Angles) 와 땅(land) 가 합쳐져서 잉글랜드라 불린다. 프랑스는 프랑크족의 나라이다.근데 독일은 독특하게 언어에서 나온다(도이치) 즉 도이치어를 쓰는 나라라는 것이다.여러 제후국으로 흩어져 있었고 많을 때는 300여개의 제후국으로 이루어진 나라였다.이들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느슨한 끈으로 묶여 있었다.중앙에서 뭔가 타이트한 관리가 아니고 거의 제후국 마음대로 외교도 하고 이런 식이였다.이들은 제국 의회라는 공통 협의체 하에 여기서 투표해 황제도 선출하기도 한다.물론 제후국 다 하는 것은 아니고 선제후 직함을 가진 제후가 다음 황제를 선출할 수 있는 투표권이 있었다.여기는 지리적으로 유럽 중앙에 있다보니 별의별 민족이 섞일 수 밖에 없었다.그러니 단지 독일어(도이치어)를 쓴다는 문화를.. 2025. 3. 3. 마지막 황제 푸이 2부 푸이가 6살 되던해에는 신해혁명이 일어나게 된다.여기저기서 봉기가 일어나더니 청 전역이 들끓게 된다.이를 주도한 인물이 쑨원이였다. 그는 삼민주의를 앞세워 민심을 얻게 된다. 청 황실은 위안스카이를 앞세워 군대로 이들을 진압하려 한다.민중은 많이 모였지만 군대와 맞써는 것은 쉽지 않았고 쑨원은 위안스카이와 타협을 하게 된다.위안스카이에게 대총통 자리를 주게 된다.중화민국이 탄생하고 국기도 만든다. 5민족을 뜻하는 오색기를 만들게 된다.청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푸이는 황제 직위는 잃었으나 자금성에 그대로 살게 된다.자금성 안에서만은 여전히 황제인 것이다.황제를 없애버리게 될 경우 민심 동요를 우려한 조치였다.하인도 시녀도 그대로 두고 중화민국 예산의 1/17 정도를 품위 유지비 조로 황제에게 준.. 2025. 2. 20. 마지막 황제 푸이 1부 누르하치가 후금 세력을 결집하고 홍타이지가 대청국을 세우게 된다.청은 힘이 점점 커지면서 전성기를 맞는다.하지만 1839년과 1857년 2차례에 걸친 아편전쟁으로 청은 맛탱이가 가기 시작한다.막대한 배상금뿐 아니라 여러 항구를 개항하게 된다.영국과 프랑스군 철수를 위해 끼어든 러시아에게 대가로 만주 일부 땅까지 빼앗기게 된다. 청은 아편전쟁을 교훈삼아 서양문물을 대거 수용하기로 한다. 핵심은 군사력을 현대화 시키는 것이였다. 이를 양무운동이라고 한다.공친왕과 이홍장이 이 일에 적극 나서게 된다.이 때 청 황제가 동치제였다.서양의 총포와 군함도 수입하고 무기 공장도 건설하고 해군력도 증강하게 된다.당시는 증기선으로 군함을 움직이려면 석탄이 많이 필요했고 이를 운반하기 위해 철도도 대폭 건설한다.이 시기가 .. 2025. 2. 20. 스티브 잡스 2부 스티브잡스는 쓰러지지 않고 넥스트스텝이라는 컴퓨터 회사를 차린다.절치부심하며 새 제품 개발에 몰두한다.사람들은 스티브 잡스가 뭘 내놓을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3년후 1988년 컴퓨터를 출시하나 2200여만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흥행에 대참패하게 된다.하지만 회심의 한방이 있었다.스타워즈 감독 조지 루카스가 이혼 비용이 필요하자 자신의 회사 일부를 매물로 내놓았고 잡스는 이 회사 사람들의 예술과 기술을 결합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게 된다.바로 인수해 버리고 이름을 픽사로 바꾼다. 여기서 세계 최초 3d 애니매이션 토이스토리가 탄생하게 되고 흥행에 성공해 거의 1조원의 수입을 챙기게 된다.한편 애플은 위기였다.잡스가 나간 후 본래하던 사업말고 이상한 잡제품을 내놓으며 헛발질을 계속하고 있었다.게다가.. 2025. 1. 30. 스티브 잡스 1부 스티브 잡스는 시리아 출신 친부 잔달리와 언어 치료학을 전공하던 조앤 시블 사이에서 1955년 2월 2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다. 하지만 부모는 출신 성분도 종교가 달라 결혼이 어렵게 된다. 조앤 시블은 잡스를 몰래 출산하고 입양을 보내기로 결정한다.아이의 미래를 생각해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에게 입양 보내려 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고등교육도 제대로 못받은 잡스부부에게 입양된다.친모는 잡스를 이런 가정에 보내는 게 못마땅 했지만 잡스부부는 아이를 반드시 대학에 보내겠다며 설득하고 마침내 입양된다.잡스 부부는 좋은 사람이였다.잡스에게 입양된 사실을 알려주며 사랑으로 키운다.한번은 친구가 친부모가 널 버렸다며 놀리게 되고 이 사실을 안 부모는 "우리가 널 특별히 선택한 거란다" 라면서 잡스를 위로한다.잡스는.. 2025. 1. 30. 코카콜라 3부 코카콜라가 탄생할 무렵 강력한 라이벌이 생기게 된다. 바로 펩시콜라이다.1893년 칼렘 브랜드 햄이 만든다.펩시는 소화효소인 펩신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한다. 코카콜라를 따라잡기 위해 애를 쓰게 된다.니클송이라는 cm송을 만들어 코카콜라에 대항한다.게다가 대공황으로 어려워졌을 때 파격적인 가격 정책을 펼친다.당시에 코카콜라 값이 5센트였는데 펩시는 같은 값에 용량을 2배로 늘려 판매한다.소련은 코카콜라가 미국 문화의 상징이라며 거부하고 있었다.하지만 1959년 소련에서 열린 미국전시 박람회에서 미국 대통령 닉슨이 소련의 흐루쇼프를 펩시 부스에 데려오게 된다.그리고 흐루쇼프가 펩시를 한잔 딱 들이키고 이게 포착되어 대서특필된다. 펩시는 매출신장의 효과를 보게 된다.펩시는 코카콜라를 따라잡기 위해 이슈를 만들.. 2024. 12. 25. 코카콜라 2부 코카콜라가 인기를 끌자 여기저기서 짝퉁들이 생겨나게 된다.병공장이 너무 많다보니 병자체가 통일이 안되었었다.비슷한 로고도 판을 치게 된다.코카콜라는 병을 통일해서 짝퉁에 대항하기로 한다.500달러에 디자인 공모전을 열게 된다.조건은 단순했다.어두운 곳에 만져도 코카콜라 병인 것을 알아야 했고 깨진 조각으로도 코카콜라 병인 것을 알 수 있어야 했다.이런 디자인 조건을 만족하는 병 디자인이 채택되게 된다.1916년 채택된 것으로 디자이너들은 코코아 열매 모양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이와 더불어 신비주의 마케팅도 펼친다.콜라 제조법이 비밀이라며 단 몇 명만 알고 있고 이들은 비행기도 같이 타지 않아 만약의 사고에 대비한다는 둥 뜬소문이 퍼지게 된다.지금도 그 비법이 담긴 노트나 제조법은 애틀란타 콜라 박.. 2024. 12. 25. 코카콜라 1부 1861년 시작된 남북전쟁으로 많은 미국인이 사망하게 된다.85만여명이 사망하고 100만여명의 부상자가 생기게 된다.당시에는 항생제같은 것이 없어서 부상을 당하면 세균간염을 피할 수가 없었다.유일한 해결책은 외과수술로 신체 일부를 잘라내는 절단술이였다.하지만 대책없이 외과수술을 하다보니 휴유증은 피할 수 없었다.수술 후 생긴 신경계통의 이상으로 절단술 받은 사람들은 칼로 베는듯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휴유증 치료를 위해 각종 약이 성행하게 된다.이를 통칭하여 매약이라 부르게 된다.성분은 알 수가 없었다.심지어 모르핀이나 아편같은 마약성 진통제도 아무 꺼리김없이 사용하게 된다. 법적 규제도 없었으므로 이런 매약은 퍼져나간다.1885년 남부 애틀란타에서 매약의 일종인 프렌치 와인 코카가 출시된다.이게 오늘날 .. 2024. 12. 25. 이전 1 2 3 4 ··· 30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