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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독소전쟁

쇼스타고비치 와 타냐 일기

by senamu 2026.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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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빠른 진격과 레닌그라드 고사 작전으로 레닌그라드에는 물자가 부족해진다.식량창고가 독일군 공격에 잿더미가 되며넛 레닌그라드 상황은 나날이 악화된다.발트해와 라도가 호수로 물자를 공급할 수 있었으나 발트해쪽에서는 공급처가 없었고 라도가 호수는 변변한 접안 시설이 없어서 물자를 나룻배로 옮기다 보니 양이 제한적이였다.

레닌그라드에 갖힌 시민은 200만명이였다.식량은 하루에 1000여톤이고 물자나 탄약 이런것이 많이 부족했다.독일 공군은 수시로 순찰하면서 물자가 집적되면 폭탄을 퍼부었다.41년 9월 8일에는 대형 식량 창고가 독일 공군 폭격에 불타버린다.고의적으로 소이탄을 투하했다.목재로 만들어진 건물인데다가 기름까지 았어서 피해는 더 컸다.그나마 있던 식량마저 불타버리게 된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식량창고가 불탄 소식을 듣고 절망에 빠지게 된다.하루 배급량은 더 줄어들고 그 양은 한끼에 39g 이였다.무게로는 영양가 없는 초코파이 정도 였다.그나마 줄서서 먹어야 했고 배급표는 사람들 목숨과 같아서 옷 안쪽에 꼬매어 신주단지 모시듯 하게 된다.벽지에 풀을 뜯어내 키셀이라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고 목공풀인 아교를 끓여서 죽을 써먹기도 한다.설탕 식량 창고가 불이 나자 사람들이 달려들어 흙을 캐내 그걸로 허기를 채우기도 하는 비극적 삶이 계속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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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그라드의 희망은 실리셀부르크 앞에 라도가 호수였다.추운 날씨에 이 호수가 꽝꽝 얼면 그 위로 트럭이 달릴 수 있던 것이다.물자를 레닌그라드에 내리고 노약자나 병자들을 다시 도시 밖으로 빼내게 된다.문제는 춥기는 한데 어중간할 데 이다.살얼음이 생기면서 얼음에 배도 못가고 트럭도 다닐 수 없는 시기에는 보급할 방법이 전혀 없어 보릿고개를 겪게 된다.식수도 문제였다.수도는 끊기고 얼음을 깨서 먹는데 이것도 영양분 부족으로 힘이 없어서 깨기 힘들었다.

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이들을 매장도 못하게 된다.매장할려면 땅을 파고 들어가야 하는데 이러다가 픽픽 쓰러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였다.결국 날이 풀릴 때 한꺼번에 모아 처리하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물도 모자라다 보니 배설물 처리도 문제였다.영양분이 부족한 상태여서 전염병까지 창궐하게 된다.아사자와 병사자가 쏟아지게 된다.일부에서는 카니발리즘(식인행위)까지 벌어진다.엔카베데는 이를 엄격히 색출하려 하나 배고픔에 장사없었다.식인행위는 최근에도 있었다.1972년 안데스 산맥에 추락한 럭비팀이 식인을 하면서 생존한 사실이 있다.

레닌그라드에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였다.올가 베르골츠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 라디오 방송을 계속한다.추도와 격려의 시를 방송하면서 시민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게 된다.레닌그라드는 900일 동안 봉쇄되는데 이 기간 동안 베르골츠의 목소리로 힘을 얻은 시민들이 많았다.봉쇄가 풀리자 베르골츠는 레닌그라드 참상을 알리는데 애를 쓰게 된다.베르골츠를 비롯 다수의 문필가들은 레닌그라드의 이런 극한 상황이 오히려 자유를 준다는 역설적 상황을 언급하게 된다.삶은 고달프지만 서슬퍼런 중앙정부의 통제에 벗어났다는 것이다.

레닌그라드 봉쇄 초기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 쇼스타코비치도 레닌그라드에 있었다.모든 시민이 동원되어 독일과 맞써야 해서 쇼스타코비치도 의용소방군으로 책무를 지게 된다.영국과 미국에서 이런 쇼스타코비치 행동에 감격하여 언론에서 대서특필되게 된다.여론은 소련을 도와야 하는 거 아니냐며 호의적으로 바뀌게 된다.스탈린은 쇼스타코비치 같은 훌륭한 작곡가를 잃을 수 없다며 빼내고 쇼스타코비치는 안전한 곳에서 레닌그라드 실상을 다룬 7번교향곡을 만들게 된다.

레닌그라드에서는 어린이들도 많이 비극의 희생량이 된다.사라예보 참상을 담은 즐리타 일기 처럼 레닌그라드 참상을 담은 타냐의 일기가 있었다.타냐는 1930년도에 태어났고 1941년 레닌그라드 봉쇄 당시에는 겨우 11살이였다.가족중 남자는 모두 전쟁터로 나가고 노약자와 애들 엄마만 남았는데 이들 역시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게 된다.사람이 죽을 때마다 그 날짜를 기록하고 나중에는 엄마가 마지막에 죽고 타냐만 남게 된다.타냐는 물자를 공급하러온 트럭에 태워져 후방으로 빠지게 된다.하지만 몸은 이미 쇠약해져 있었고 2년 후인 1943년 죽게 된다.훗날 레닌그라드 봉쇄가 풀리고 시집을 간 맏언니가 타냐가 살던 아파트로 와서 유품을 정리하게 된다.유품 중에 타냐의 일기가 있었고 사람들은 레닌그라드 비극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성지로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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