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벌거벗은 세계사95 산업혁명 2부 산업화로 모두가 그 열매를 따먹을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이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바로 하층노동자들이였다. 하루 14~16시간 강도높은 노동을 하면서 돈도 적게 받았다.휴식 시간도 더럽게 짧았다.이 당시에는 안전에 대해서도 거의 신경을 안써서 노동자들은 사고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었다.신체 일부가 기계에 끼기도 하고 또한 면가루가 공장 여기저기 날리면서 폐에도 안좋은 영향을 미쳤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들게 된다.하층민들이 모이는 밀집지대가 생기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이스트엔드이다.지금은 그래비티 천국이고 뱅크시가 활동도 하는 아주 핫한 곳이지만 산업혁명 당시에는 하층 노동자들이 모여사는 곳이였다.일 좀달라고 하는 노동자들은 넘쳐나고 자본가들은 그들.. 2024. 8. 18. 산업혁명 1부 13세기부터 유럽에서는 양털을 이용한 모직물을 옷감으로 사용한다.공유지나 초원같은 경작 가능한 토지를 통합하고 거기에 울타리를 쳐서 양들을 키우기 시작한다.이 양들 털을 깍아 옷감을 만든 것이다.하지만 변화가 시작된다.영국이 대항해 시대에 동인도회사를 만들고 동양으로 시장을 개척하면서 인도산 면제품이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인도산 면제품은 값도 싸고 입기도 편하고 더군다나 세탁도 매우 편리했다.사람들이 양모를 쓸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이렇게 되자 기존 양모산업에 종사한 사람들이 이러다 죽는다며 시위를 하기 시작한다.시위 가담자 중 일부는 인도산 면옷을 입은 사람을 잡아다가 옷까지 찢어버린다.영국의회는 1721년 면 수입을 금지한다.하지만 이미 사람들은 인도산 면에 푹 빠져 있었고 1736년 맨체스터법으로 .. 2024. 8. 18. 합스부르크 왕가 2부 막시밀리안 1세 눈에 프랑스를 견제할 나라로 스페인이 들어오게 된다.스페인왕가와 겹사돈을 맺게 된다.스페인 측도 나쁘지 않은 결혼이였다.오스트리아가 스페인을 먹을 수도 있었지만 거꾸로 스페인이 오스트리아를 먹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스페인 왕가가 잇달아 사망하게 된다.유일하게 남은 스페인 상속녀 후아나는 남편 펠리페 1세가 죽자 정신이 나가버린다.결국 스페인은 합스부르크 펠리페 1세와 후아나의 아들 카를 5세가 먹어버리게 된다.합스부르크 왕가가 스페인을 물려받아 합스부르크가는 대제국을 이루게 된다.이렇게 결혼이 중요했다.후사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왕국의 운명이 결정되었다.이런 이유로 신부 아버지는 신랑의 불임여부를 테스트 했다고 한다.장인어른이 고른 여성을 신랑될 사람에게 보내어 임신이 되는지 떠보았다고.. 2024. 8. 11. 합스부르크 왕가 1부 10세기경 스위스 아르가우 지역에 말단 귀족인 합스부르크 가문이 있었다.합스부르크 가문은 신성로마제국(962년~1806년) 에 속해 있었다.신성로마제국은 과거의 로마 제국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신성한 왕권을 천명하며 세워진 제국이였다.하지만 로마와 다르게 수많은 영주와 제후들이 있는 분열된 국가 였다.황제 선출도 일부 유력가문이 그들만의 리그로 투표를 치루어 선출하고 교황의 인증을 받는 식이였다.황권은 이런 제후와 영주 틈바구니에서 약해져 있었다.12세기 중엽 합스부르크가문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편에 서서 정적을 막아주게 된다.1211년에는 프리드리히 2세와 사돈을 맺고 여기저기 금품을 살포하게 된다.이런 힘은 합스부르크가의 위치였다.중간 길목에 서서 중계무역으로 부를 축적하더니 주변 지역.. 2024. 8. 11. 여왕 마고 2부 순조롭게 진행되던 결혼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피로연이 한창이던 8월 20일 신교 군사 제독인 콜리니가 누군가의 암살 시도로 총상을 입게 된다.신교도들은 동요하게 된다.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배후 세력으로는 두 인물이 유력하다.앙리 드 기즈와 카트린 왕비였다.앙리 드 기즈는 자신의 아버지가 콜로니에게 죽어 복수심에 불타있었고 카트린 왕비는 자신의 아들 샤를 9세가 콜리니 제독을 친아버지처럼 따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사태가 심상치 않자 앙리 드 기즈,카트린 왕비,샤를 9세는 만나서 대책을 논의하고 여기서 신교도들이 우릴 치기 전에 선수를 치자고 모의하게 된다.마고는 이 사실을 모르고 엄마 카트린을 찾아가게 된다.마고의 언니가 넌지시 너의 남편이 위험하다는 사인을 주나 카트린은 빨.. 2024. 8. 8. 여왕 마고 1부 영국과의 100년 전쟁을 승리로 이끈 프랑스의 발루아 왕조는 거의 300년간 프랑스를 이끌게 된다.16세기에는 발루아 왕조의 앙리 2세가 프랑스를 통치하고 있었다. 앙리 2세는 메디치 가문의 카트린 드 메디치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다.카트린은 명문가 출신답게 많은 교육을 받았다.프랑스에 이탈리아 문화도 전수하는 등 애를 썼으나 이방인 취급을 받아 평판은 그리 좋지는 않았다.하지만 앙리 2세와 금술은 좋았는지 많은 자녀를 낳게 된다. 1553년에 여왕 마고도 탄생하게 된다.마고가 태어나고 2년 뒤 노스트라다무스(1503~1566) 이 예언집을 발표한다.노스트라다무스는 예언집을 통해 911테러도 예언했다고 하는데 그 문장이 모호하고 은유적이라서 논란이 아직도 되고 있다.그는 의사,점성가,예언가등으로 명성을 .. 2024. 8. 8. 프랑스 와인 2부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380년 테오도시우스황제가 기독교를 국교화하게 된다.기독교에서는 포도주를 예수의 피로 빵을 살로 매칭시키면서 와인을 신성시하게 된다.395년 로마는 서로마,동로마로 두동강이 나게 된다.서로마에 게르만족이 몰려오면서 프랑크 왕국이 세워지고 곳곳에 수도원과 교회가 건립되게 된다.여기서 만들어진 수도원이 와인 양조의 선봉장이 된다.수도원은 성찬식에 사용할 와인을 직접 생산해야 했고 또 먹고 살기 위해 와인을 전략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하게 된다.이렇게 와인이 수도원을 중심으로 발달하다가 843년 후계자 문제가 생기게 되고 프랑크왕국은 세개로 분열된다.이 찢어진 프랑크 왕국이 프랑스,독일,이탈리아가 되게 된다.한편 교황권은 십자군 전쟁실패로 권위가 바닥에 떨어지.. 2024. 7. 21. 프랑스 와인 1부 최초의 와인은 현재의 조지아(그루지아)에서 발견된 8천년전 토기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토기를 발견했는데 이 토기를 조사해보니 와인에서 발견되는 주석산,포도씨등이 검출된 것이다.신석기인들이 토기를 땅에 묻고 와인을 숙성시킨 후 발효해 마셨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맨 처음에는 포도를 수확해 토기에 저장하는 것이 시초였을 것이다. 그렇게 쌓인 포도가 무게로 눌리고 그 힘으로 즙이 나오게 된다.여기에 포도 껍질의 천연 효모에 의해 포도즙이 발효가 되었을 것이다.그것을 우연히 신석기인이 마시면서 알딸딸한 기분을 느끼게 되면서 와인이 시작된 것이다.기원전 3천년경이 되면서 조지아를 넘어 와인이 수출되기 시작한다.이집트는 이 와인을 접하고서 감동하여 포도나무를 가져와 직접 재배하기 시작한다.농업.. 2024. 7. 21. 교황의 탐욕 2부 신의 권위만 내세우다가는 이제 대중을 휘어잡을 수 없게 된다.식스투스 4세 취임식 때는 로마 시민들이 돌도 던진다.식스투스 4세는 세력을 키우기 위해 자신들의 조카를 추기경 자리에 앉히게 된다.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각 종 이권사업에 몰두하게 된다.곡물 판매권을 독점에 폭리를 취하게 된다. 원래는 성직자들의 재산은 상속할 수 없었으나 이를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한다.수수료만 내면 성직도 매매하는 정책도 시행한다.이래도 부족했는지 더 큰 사업을 구상하게 된다. 매춘 산업을 번창시키게 된다.로마 인구가 10만명이였다고 하는데 매춘 장려 사업으로 매춘부가 사방팔방에서 모여들어 거의 9천명에 이르게 된다.인노첸시오 8세는 메디치 가문과 결탁하여 더욱 광폭 행보를 이어간다. 마녀사냥으로 수.. 2024. 7. 21. 교황의 탐욕 1부 초대 교황 베드로가 순교한 곳으로 알려진 바티칸 주변에서 로마 주교가 대를 이어 교황이 되도록 합의한 것이 바티칸의 시작이였다. 바티칸의 의미는 로마 원주민들이 살아오던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하게 된다. 세력을 키우던 기독교는 392년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그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 후 기독교는 서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된다.자세한 내용은AD0000- AD0299 기독교의 시작을 참조 바란다. 교황은 이 후로 신의 대리자로서 유럽의 왕을 인정하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왕은 정당성 확보를 위해 교황의 도움이 필요로 했다.이런 것은 세월이 지나면서 굳어져 갔고 교황은 왕이 마음에 안들면 대관식 날짜를 미루거나 파문이라는 것을 이용해 왕을 길들였다.결국 105대 교황 니콜라오 1세는 왕위에 자신이 있.. 2024. 7. 21. 이전 1 2 3 4 5 6 ··· 10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