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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AD_0300_0599

프랑스 와인 2부

by senamu 2024.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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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380년 테오도시우스황제가 기독교를 국교화하게 된다.기독교에서는 포도주를 예수의 피로 빵을 살로 매칭시키면서 와인을 신성시하게 된다.395년 로마는 서로마,동로마로 두동강이 나게 된다.서로마에 게르만족이 몰려오면서 프랑크 왕국이 세워지고 곳곳에 수도원과 교회가 건립되게 된다.여기서 만들어진 수도원이 와인 양조의 선봉장이 된다.수도원은 성찬식에 사용할 와인을 직접 생산해야 했고 또 먹고 살기 위해 와인을 전략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하게 된다.이렇게 와인이 수도원을 중심으로 발달하다가 843년 후계자 문제가 생기게 되고 프랑크왕국은 세개로 분열된다.이 찢어진 프랑크 왕국이 프랑스,독일,이탈리아가 되게 된다.

한편 교황권은 십자군 전쟁실패로 권위가 바닥에 떨어지게 된다.14세기에는 교황이 프랑스의 아비뇽에 잡혀들어가게 된다.이때 교황만 아비뇽으로 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제단도 아비뇽으로 오게 된다.그들은 미사에 쓸 와인을 구하러 프랑스를 돌아다니게 된다.그러다가 부르고뉴 지방의 와인이 최고라는 것을 알게 된다.그 중심에 시토 수도회가 있었다.교황의 입맛도 사로잡게 된다.

시토 수도회는 와인에 진심이였다. 끊임없이 연구를 계속하게 된다.변질된 포도로 식초도 만들고 비누,향신료도 제작하게 된다.와인에는 풍미를 위해 달걀 흰자도 첨가하는데 이 때 남은 노른자로 만든 음식이 바로 에그타르트가 된다.로마네 콩티라고 최고의 와인으로 평가받는 와인이 있다.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죽기 전 꼭 마셔야 할 와인으로 극찬받은 와인이다. 1945년산 로마테 콩티는 한 병에 3000만원이라고 한다.최근에는 그 값어치가  6억6천만원으로 치솟았다고 한다.이것보다 비싼 와인도 존재한다.2019년 스페이스X 에 실려 우주에서 숙성된 와인은 그 값이 13억원이라고 한다.

와인을 만들때 중요한 것은 그 주변 환경이다.이를 떼루아라고 한다.흙의 맛까지 보며 땅에 등급을 나누고 관리하기 시작한다.인접한 곳이라도 토질에 따라 와인의 맛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그러면서 지역별로 와인이 발달하기 시작한다.특히 샹피뉴는 독특한 와인을 생산하게 된다.이 지역은 프랑스 북부로 상대적으로 추웠다.춥다보니 포도 껍질이 얇게 되고 다른 지역에 비해 와인이 묽게 된다.그래서 이 지역은 포도 껍질을 벗겨 화이트 와인을 생산하게 된다.문제가 있었다.와인이 겨울에 발효가 중단되었다가 봄이 되면서 다시 발효가 되고 이 때 탄산이 생겨 오크통이 터지게 된 것이였다.17세기 돔 페리뇽이라는 수도사가 이 문제를 해결한다. 코르크 마개를 만들어 탄산가스 압력을 버틴 것이다.이게 바로 샴페인의 탄생이다.샹파뉴 와인만 샴페인이라 불릴 수 있고 나머지 지역에서 생산된 탄산 와인은 그냥 스파클링 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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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와인이 유명해지는 계기가 생기게 된다.1851년 세계박람회가 영국에서 시작되고 1855년 프랑스에서 2회 대회를 개최하기로 한다.프랑스는 영국과 차별화를 두어야 한다며 비장의 카드로 보르도 와인을 꺼낸다.이 지역은 영국에게 아픔이 있는 땅이였다.원래 이 지역은 아키텐 공국 영토였는데  프랑스 왕과 아키텐 공국 공주 엘레오노르가 결혼하면서 프랑스 땅이 된다.그러다가 엘레오노르가 잉글랜드왕에게 재혼하면서 잉글랜드 땅이 된다. 이 지역 와인 수출 세금은 당시 잉글랜드 전체 세금보다 많은 지역이였다.프랑스도 잉글랜드도 놓칠 수 없는 알짜배기 땅이였다. 결국 두 나라는 전쟁을 하게 되고 이게 백년이나 이어진다. 그 후 잔다르크 등장으로 프랑스가 승리하면서 보르도는 프랑스 영토가 된다.이 지역 와인을 영국 메길려고 들고 나온 것이다.

승승장구하던 프랑스 와인은 위기를 맞게 된다.1863년 프랑스 포도나무가 말라 죽어가기 시작한다.식물학자는 연구 끝에 진딧물을 발견하고 이를 필록세라라고 칭하게 된다.이 사건의 시초는 1년전으로 돌아가게 된다.프랑스 로크모어 지역에서 한 와인 상인이 미국 포도나무와 프랑스 포도나무를 비교하려 했던 것이 화근이였다.이 미국 포도나무에 붙은 필록세라가 프랑스 전역의 포도나무를 쑥대밭으로 만든 것이였다.거의 40%정도가 날아가게 된다. 1870년대 들어서 해결책이 나온다. 미국 포도나무 뿌리에 프랑스 포도나무 가지를 접목하는 것이였다.자존심 강한 프랑스 농민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이후로 18년 정도가 흘러서야 할 수 없이 이 방법으로 필록세라를 퇴치하게 된다.

2차대전이 시작되고 프랑스 와인은 다시 한번 수난을 겪게 된다.히틀러는 프랑스 와인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나치 수뇌부들도 고급 프랑스 와인을 즐겼다.1940년 나치는 와인 수탈을 위한 전문 부대 와인 총통을 만들게 된다.프랑스 농민들은 동굴에도 와인을 감추고 별의별 노력을 다했지만 나치는 악랄했다.히틀러는 독수리 요새 와인 창고를 만들고 여기에 50만병 정도의 와인을 보관하게 된다.

프랑스 와인은 2차대전이 끝난 후 이번에는 굴욕을 맛보게 된다.1976년은 미국 독립 200주년 이였다.영국인 스티븐 스피어리는 자신들 와인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프랑스와 미국 와인을 블라인딩 테스트하는 이벤트를 열게 된다.심사위원은 11명이였는데 9명이 프랑스 와인 전문가였다.오전에는 화이트 와인 오후에는 레드 와인을 시음하기로 한다.오전 테스트 시작전 분위기는 좋았다.농담도 오고 갔고 분위기도 좋았다.테스트가 시작되고 결과가 발표된다.상위 5위에 미국 와인이 3개나 들고 더군다나 1위까지 하지 분위기는 싸늘해진다.오후에는 싸한 분위기에서 침묵으로 테스트가 진행되게 된다.여기서도 미국 와인이 1등하자 심사위원 일부는 패닉에 빠지게 된다.시음회에 비판을 가하는 사람도 나오게 된다.프랑스는 서둘러 이 사건을 덮게 된다.하지만 2주후 미국 뉴욕타임즈에 대서 특필되고 프랑스 와인은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가게 된다.이 날 사건을 1976 파리의 심판이라고 한다.미국 어느 와인 회사는 이 사건을 두고 아직도 홍보에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 후로 정확히 30년이 흐른 2006 다시 한번 시음테스트가 진행되고 여기서 프랑스 와인은 완패하게 된다. 혹자는 말한다 미국 와인은 오픈과 동시에 강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는 반면 프랑스 와인은 오픈 후 좀 시간이 지나야 그 향과 맛이 살아난다는 것이다.시음 환경이 따서 바로 먹는 것이라서 프랑스 와인이 진것이라고 프랑스 와인 전문가는 말한다.하지만 테스트에 졌다고 프랑스 와인이 그 지위까지 잃은 것은 아니다.여전히 프랑스 와인은 세계적 명성을 가지고 있다.더 좋은 포도품종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농부들도 재배 환경을 바꿔가며 포도 생산을 해서 더 좋은 품질의 와인을 위해 지금도 불철주야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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