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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미국 남북 전쟁68

게티즈버그 전투 신임인 북군 미드 사령관은 열심히 남군을 추격해 턱 밑까지 오게 된다. 북군 추격을 감지한 로버트 리는 북군과 결전을 치르기로 하고 흩어진 병력을 캐시타운으로 집결하라고 명한다. 캐시타운을 보니 사우스마우틴을 방패삼아 싸우면 해볼만하다는 결론을 낸다.  집결전에 절대 북군과 전투하지 말라는 명도 내린다. 북군은 지형분석관 워렌과 회의를 거쳐 결전지를 점찍는데 거기가 파이프크릭이라는 곳이였다. 남북군 모두 현 상태에서 유리한 곳에서 전투를 치를 궁리를 하고 있었다.남군은 약탈한 말,양,노새,돼지등 가축 수만마리를 이끌고 집결하기 시작한다. 이러다 보니 북쪽에 있던 이월장군은 캐시타운에 빨리 가기위한 최적 경로를 선택한다. 그 길의 길목에 게티스버그가 있었다. 남군 대다수는 보급이 열악해 맨 발로 행군.. 2024. 4. 24.
로버트 리 다시 북으로 1863년 중순 이 시기 남부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였다. 남부는 빅스버그가 포위되자 로버트 리의 북버지니아 군을 동원하여 이를 풀려고 한다. 그러나 로버트 리는 반대한다. 압도적 카리스마로 다시 북진할 것을 계획한다. 어차피 북으로 올라가 워싱턴 D.C.를 위협하면 자연스레 빅스버그에 포위된 병력의 압력도 완화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방법이 남군으로써는 유일한 대안이였다. 보급 상황도 열악하고 병력도 열세인 상황에서 먼저 움직여 상대를 치는 것이다. 북부를 완전 굴복은 불가능하고 북부에 위협을 줄만한 행동을 하여 협상 테이블에 앉히려는 포석도 생각한다. 더군다나 메릴랜드와 펜실베니아는 곡창지대로 궁핍한 보급의 남군이 털어 먹을 수 있.. 2024. 4. 23.
빅스버그 포위전 북부로써는 미시시피강 남쪽과 북쪽을 장악하고 이제 남은 것은 중간의 빅스버그와 허드슨 요새였다. 이곳을 장악하면 미시시피강은 완전히 북부 통제하에 둘 수 있었다. 남부 역시 이 지역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미시시피강은 강이 구불거려 배로 공격할 경우 속도를 늦추어야 했다. 이 지역의 고지대에 남부는 해안포를 집중 배치한다. 특히 남부에는 휘파람딕이라는 강력한 대포가 있었다. 이 대포는 포탄이 날아가는 소리가 휘파람 부는 것 같다고 붙여진다. 적에게는 공포의 휘파람 소리였다. 북부는 강상해군의 철갑함으로 이 지역을 공격하려 했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빅스버그 남군 방어 사령관은 존 C. 펨버턴이였다. 이 양반은 북부 펜실베니아 출신이고 그랜트와 같은 학교 선배 였다. 그런데 펨퍼턴의 아내가 남부 출신이.. 2024. 4. 22.
밥은 어떻게 먹지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야전에 밥차가 보급되어 편하게 병사들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남북전쟁에서는 병사들이 식기를 들고 다니면서 직접 요리를 해먹어야 했다. 남부 남자들은 요리를 터부시해서 흑인 노예가 해주는 음식만 받아 먹는다. 남자들끼리 있다보니 요리하기가 참 어려웠다. 단백질이 부족해 다람쥐도 잡아 먹는다. 이 시기 건빵도 보급된다. 썩을 까봐 수분을 싹 뺀 하드택이 보급된다. 지금 건빵은 크기가 손가락 한마디 정도지만 그 당시에는 손바닥 만했다. 수분이 없어 돌처럼 딱딱해 치아분쇄기라는 별명이 붙는다. 병사들은 인근 농가에서 포도주를 구해와 하드택과 포도주 설탕을 넣어 요리를 해 먹기 시작한다. 남북전쟁에 PX 도 있었다. 그 이전 부터 셔틀러라는 종군상인이 운영되고 있었다.. 2024. 4. 22.
맥클레런 해임과 번사이드 실책 북부의 링컨은 앤티텀 전투가 승리로 끝나자 선언문을 발표한다. 강한 어조로 1863년 1월 1일 까지 탈퇴한 남부주들이 연방에 복귀하라고 한 것이다. 기한 내에 복구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문구도 포함시킨다. 링컨이 군 통수권자로 반란군의 항복을 권유하고 경계주에 대해 반란군에 붙지 말 것을 경고한다. 대외적으로는 유럽의 남부지지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문구도 포함한다. 이 선언으로 흑인들도 자유인 신분으로 군인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한편 로버트 리는 아직 도망중이였고 링컨은 확실한 쐐기를 박기 위해 맥클레런에게 편지를 써서 공격을 군유한다.맥클레런은 움직이지 않고 자신은 앤티텀 전투 영웅이라며 아내에게 편지를 써서 링컨을 비난한다 맥클레런이 공격에 나서지 않는 것에 언론도 맥클레런을 비난.. 2024. 4. 22.
앤티텀 전투 북군은 버지니아군 사령관에 존 포프를 앉힌다. 남아있는 북군을 모아 북쪽에 진을 치게 된다. 맥클레런을 로버트 리가 몰아내긴 했으나 북쪽과 남쪽으로 북군이 남아있는 위험한 상태였다. 로버트 리는 활로를 뚫어야 했다. 맥클레런 성향을 파악한 로버트 리는 남쪽의 맥클레런은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북쪽으로 활로를 뚫기로 한다. 혹시 포프와 맥클레런이 합류하여 리치먼드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각개격파하기로 하고 포프로 병력을 집중시킨다. 1862년 8월 20일부터 30일 까지 제2차 불런(매너서스) 전투가 벌어진다. 여기서 북군이 패하게 된다. 로버트 리는 이 기회에 워싱턴 D.C. 병참선을 치기로 한다. 방어력이 강한 수도보다 뒷 배후를 침으로써 북군에 압박을 가하고 리치먼드에 있는 북군을 약화시키기.. 2024. 4. 19.
북부 채권 판매 지폐 발행에 비해 채권 발행이 비교적 안정적인 자금 조달 방법이다. 전쟁이 나면 인플레가 나기 마련인데 여기에 돈까지 풀면 경제를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문제는 채권을 누군가는 사주어야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북부는 남부 탈퇴로 면화 수출도 막히자 채권 팔기는 더 어려워 진다. 유럽 입장에서는 면화를 수출하는 남부 채권이 오히려 더 매력적일 수 있었다. 또한 전쟁 승패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판에 채권 사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채권을 살 경우는 남부와 북부 모두 사서 위험을 회피했다.이런 판국에 유대계 금융 재벌 출신인 로스차일드 가문의 미국 대리인 어거스트 벨몬트가 나선다. 벨몬트는 열성 민주당원인 동시에 연방 주의자였다. 그는 연방을 돕는다며 북부 채권을 직접 구입한다. 유럽에서 자신의 인맥을 동원 .. 2024. 4. 18.
남부 그레이백 남부도 북부와 마찬가지로 지폐를 만든다. 안타깝게도 남부는 북부에 비해 공업이 덜 발달되었다. 그레이백으로 불리는 흑백으로 인쇄된 지폐를 만들게 된다. 위조지폐가 성행하자 도안을 계속 바꾸어 가며 지폐를 발행한다. 엉망진창이였다. 세금도 나중에는 현물로 요구하는 지경에 이른다. 희한한 사건도 발생한다. 새뮤얼 업햄이라는 필라델피아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있었다. 어느날 그는 신문에 실린 그레이백 발행 소식을 보게 된다. 그는 신문사로 달려가 5달러 이미지를 인쇄한 원판을 구하게 된다. 문제는 이 원판이 실제 지폐 크기와 똑같았던 것이였다. 이걸 딱 본 업햄은 사업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구입한 원판으로 지폐를 인쇄하여 기념품으로 판매한 것이다. 위조지폐가 아니고 기념품이라는 문구를 밑에 넣는다. .. 2024. 4. 17.
북부 그린백 남북전쟁 직전에 미연방정부는 국가 부채가 많았다. 제임스 뷰캐넌 시절 절정에 달해 다음 대통령 링컨이 정권을 잡고보니 부채는 3배 가량 늘어나 있었다. 남북전쟁을 치루어야하는 북부로서는 돈을 어디서 구해야 했다. 방법은 두가지 였다. 세금을 걷거나 채권을 판매하는 것이였다. 의회는 채권을 승인하면서 소득세 부과를 승인한다. 오늘날 소득세 부과는 자연스러운 것이나 그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자본주의 핵심이 사유재산인정이므로 소득세는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영국은 나폴레옹과 전쟁을 치르면서 전비 마련을 위해 일시적으로 소득세를 부과한 적이 있었다. 당시 연방정부 세금은 각종 인허가세와 관세였다. 하지만 주요 수출품인 면화에 대한 관세와 남부가 수입하는 공산품에 세금을 메길 수 없는 상황이 오자 소득세를 부.. 2024. 4. 17.
현존하는 기업들 남북전쟁 속에서도 이 특수를 이용해 돈을 벌고 오늘날 까지 살아남은 기업들이 있었다. 아메리카 익스프레스는 남북전쟁 당시에 우편서비스를 담당했다. 미국은 땅덩이가 넓어서 지역마다 우편물 배달 업체가 성행했다. 아메리카 익스프레스는 여러 주에 900개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우편을을 취급했다. 주기적으로 선거할 때 전방 군인들의 부재자 투표함을 날랐고 전사자들의 시신도 운구해 주면서 떼돈을 번다. 이것이 기반되어 오늘날 미국인 지갑 속 필수품인 신용카드 회사로 거듭나게 된다. 의류 브랜드 Brooks Brothers 는 기성복 사업을 하고 있었다. 링컨이 재선을 성공하고 취임식 당일 입었던 코트를 특별히 제작하기도 한다. 남북전쟁 시에는 군복을 대량 생산해 떼돈을 번다. 이 회사는 불량 군복 납품 비리도 저질.. 2024.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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