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역전다방/미국 남북 전쟁68 스톤월과 스튜어트의 활약 남부 수도가 떨어질 위기에 처하는데 이 때 남부의 구세주가 나타난다. 바로 스톤월 잭슨이다. 스톤월 Stone Wall로 돌담벼락이란 뜻이다. 원래 이름은 토머스 조너던 잭슨이다. 얼마나 잘 싸우는지 돌벽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스톤월은 남부 셰넌도어계곡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그는 버지니아 군사학교를 졸업한 포병교관 출신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육군참모총장인 조지 마셜도 이 학교 출신이다.스톤월은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미연방군 무기고를 털어 휘하 여단과 민병대를 무장시키고 훈련시킨다. 1차 불런전투(매너서스전투) 에서 여단이 사단급으로 확장된다. 이 지역은 남부의 곡창지대일 뿐아니라 북부의 수도 워싱턴 D.C를 공격할 수 있는 주요 루트도 될 수 있는 곳이였다. 셰넌도어 계곡의 중요성을 안 북부는 이.. 2024. 4. 17. 리치먼드로 좀 빨리 가라 링컨이 빨리 좀 남부 수도 리치먼드로 진격하라고 맥클레런을 압박하지만 맥클레런은 너무 신중했다. 남군을 정찰하게 되고 남군이 북군을 속이기 위해 통나무를 대포인 척하고 기만작전을 펼친 것을 알게 된다. 존스턴군은 북군의 병력이 남군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눈치 까고 병력을 뒤로 뺀 것이다. 여론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뭐하냐는 비난이 쏟아지게 된다. 맥클레런은 이 전쟁은 몇 년은 걸릴 것이라고 응수한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여론은 그를 굼벵이 맥이라며 다시 비난한다. 여론은 남부 스파이가 아니냐며 나중에 남부 영웅이 되어 대권을 넘보는 것이냐는 원색적인 비난도 가한다. 성화에 못 이긴 맥클레런은 수도에 45000여명의 방어 병력을 남기고 1862년 3월 1일 포토맥군 10만을 출항시킨다. 4월 2.. 2024. 4. 16. 수류탄과 열차포 테츠하우 라는 폭탄이 있었다. 어거는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 당시에 사용되었던 폭탄인데 수류탄의 원형이라고 보면 된다. 후에 윌리엄 케첨이 케첨 수류탄을 만들고 특허를 낸다. 케첨 수류탄은 뇌관이 딱딱한 물질에 닿으면 뇌관이 눌리면서 안에 있는 화약이 터지는 방식이였다. 무조건 뇌관이 땅에 닿아야 폭발하므로 이를 위해 뒤에 꼬리 날개를 달게 된다. 하지만 실전에 사용시 불발률이 높았다. 상대편이 담요를 준비해 수류탄을 받은 다음 다시 상대 진영으로 던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주로 육군보다 북군 해군이 많이 애용하게 된다. 남군도 수류탄을 만든다. 레인스 형제는 Bomb Broters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뭐든 잘 만들고 이러저러한 폭발물을 많이 개발해서 붙여진 별명이였다. 이 형제가 레인스 수류탄을 만.. 2024. 4. 16. 정찰 열기구 1783년 열기구가 발명되고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이를 정찰용으로 활용한다. 그 후 기상학 과학자이자 항공 비행사인 다테우스 로우는 기구를 활용하여 대서양 횡단을 시도한다. 다테우스는 링컨 앞에서 직접 기구 사용법을 시연한다. 미연방은 이를 활용한 부대를 조직해서 전투에 활용하기로 한다. 산업혁명으로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석탄 사용이 증대된다. 용광로에도 이런 증기 기관이 사용된다. 용광로의 코크스를 구울 때 가스가 발생함을 발견하고 이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가스의 주성분은 수소와 메탄이였고 이들 기체에는 불이 잘 붙었다. 이 가스를 모아 도시가스로 공급하기 시작한다. 19세기 초부터 이런 가스를 공급하기 위해 대량의 배관을 깔기 시작한다. 가스를 이용해 워싱턴 D.C 등의 대도시에는 전기 없이도 가.. 2024. 4. 16. 뉴올리언스 함락 미시시피강 끝 쪽에 남부 최대 항구 도시 뉴올리언스가 있었다. 뉴올리언스는 오늘날에는 재즈 클럽도 많고 동화 개구리 왕자의 모티브가 되기도 한 아주 유서 깊은 도시였다. 북부가 미시시피강을 통제하려면 이 항구를 반드시 손에 넣여야 했다. 남부도 이를 잘 알고 들어오는 길목에 세인트필립 요새와 잭슨 요새를 강화하여 북부 공격을 막으려 한다. 두 요새 사이에는 쇠사슬도 설치하여 배가 진입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도 마련해 둔다. 북부는 뉴올리언스해군 원정대를 데이비드 패러것으로 임명하고 육군 병력도 18000명을 투입해서 뉴올리언스를 치기로 한다. 패러것은 9살에 해군에 입대하여 1812년 전쟁에도 참가한 해군 경력만 50여년이나 되는 베테랑이였다. 박격포로 무장한 스쿠너선을 다량 투입하여 요새를 공략하기로 한.. 2024. 4. 15. 미시시피강 주변 전투 1862년 2월과 4월 사이 육상에서는 남군과 북군이 교착 상태에 있었다. 북군은 남군의 숨통을 끊기 위해 미시시피강을 장악하여 봉쇄작전을 완성해야 만 했다. 율리시스 그랜트는 자신의 상관인 헨리 할렉에게 공격을 건의하나 거절 당한다. 헨리 할렉이 그랜트를 질투한 것이다. 하지만 링컨은 전세가 답답하자 공격을 닥달하고 그랜트는 중요한 거점인 남부의 헨리 요새를 치기로 한다. 이전 전투로 육해군 합동 작전의 중요성을 알았던 그랜트는 강상해군과 함께 헨리 요새를 치기로 한다. 하지만 악천후로 육해군 합동작전은 물건너 가고 오직 해군의 포격으로 헨리 요새를 탈환한다. 그랜트는 헨리 요새를 점령하자 그 기세를 몰아 도넬슨 요새도 치기로 한다. 상관에게 통보만 하고 바로 실행해 버린다. 이것이 그랜트의 장점인데 .. 2024. 4. 15. 철갑선의 최후 최초의 철갑선 전투가 끝나자 언론은 흥분한다. 그러나 서로 대등한 철갑선이여서 남부와 북부 철갑선의 활약은 미미했다. 1862년 5월 북부군이 노퍽을 탈환한다. CSS 버지니아가 북군 손에 들어가는 것을 염려한 남부 해군은 CSS 버지니아를 자침시켜 버린다. USS 모니터 운명도 비참했다. 운영하다 보니 문제가 드러난다. 남부군이 제임스 강의 언덕을 요새화하고 강 아래로 포격이 가능해지자 USS 모니터가 위 상면 장갑이 공격에 노출된 것이다. 이 상부가 취약한 것이 USS 모니터의 아킬레스건이였다. 더군다나 군함끼리의 싸움은 USS 모니터가 유리했으나 고지에 요새를 공격할 수는 없었다. 회전 포탑을 가져서 오로지 수평 공격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위에 요새를 공격하려면 포를 고각으로 올리고 포격해야 하는데.. 2024. 4. 15. 세계 최초 철갑선 전투 남군의 CSS 버지니아를 위시하여 5대 군함이 북부의 햄프턴 로드 지역으로 공격하러 간다. 이상하게 생긴 배가 출현하자 북부의 버틀러 진지에서 CSS 버지니아를 포격한다. 그러나 깡통 소리만 들리고 포탄이 튕겨나간다. USS 컴벌랜드가 CSS 버지니아 시야에 들어오고 CSS 버지니아가 포격을 가한다. 컴벌랜드 우현에 구멍이 생기고 CSS 버지니아는 그대로 앞으로 들이받아버린다. 컴벌랜드는 포탄을 쏘면서 격렬히 저항한다. 들이받았는데 이게 다시 빠지지 않게 된다. 잘못하면 컴벌랜드와 버지니아가 동시 침몰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첫 출항에 철갑선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침몰 직전 간신히 빼내는데 성공한다. 겁에 질린 USS 콩그레스는 배에 있는 짐을 싣고 도망간다. CSS 버지니아 포격하여 USS 콩그.. 2024. 4. 9. 서양 최초의 철갑선 노퍽이 왜 중요한 항구이냐면 일단 부동항이고 만이라서 파도가 잔잔하다. 햄프턴 로드라는 구부러진 만도 있어서 육상에 해안포만 잘 배치하면 군항을 방어하기도 쉬웠다. 그런데 남북전쟁발발전 조짐이 좋지 않음을 느낀 당시 노퍽해군기지 사령관 찰스 스튜어트 맥컬리는 어떻게 하지 고민을 하게 된다. 잘못하면 군항이 전부 남부로 넘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행한 예측은 맞았고 남부 민병대가 노퍽 해군 기지를 공격하자 어쩔 수 없이 노퍽 기지 사령관은 군함을 적의 손에 넘길 수 없어서 군함을 불살라 버린다. 남부해군이 노퍽을 보니 시설이 완전히 전소된 것은 아니었다. 특히 USS 메리맥은 위에 부분만 타고 엔진은 멀쩡했다. 기왕 위에 다시 만들 것을 위를 철골 구조물을 덧 씌우기로 한다. 철골 구조물을 만들고.. 2024. 4. 8. 포트 로얄 전투 북군은 전쟁 초기 중요한 해군기지인 노퍽을 잃는다. 북부는 해군을 재정비하고 남부를 말라죽이기 위해 해상봉쇄를 위한 계획을 세운다. 봉쇄전략위원회가 조직되고 구체적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보면 알겠지만 미국 영토가 워낙 넓어 전 지역을 봉쇄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방법은 주요 해군 기지는 북부에 두고 남부 중요 지역에 거점을 만드는 것이였다. 그래서 노퍽 밑에 작은 섬과 미시시피강 남단에 작은 섬을 북부가 먼저 선점한다. 다음 타겟으로 남부의 주요 항구인 찰스턴과 서배너를 치고 중간 보급소를 만들기 위해 포트 로열을 치기로 한다. 북군 총사령관 윈필드 스콧과 북군 포토맥군 사령관 조지 맥클레런의 봉쇄에 대한 의견이 달랐다. 맥클레런은 자기가 돋보이고 싶어서 남부의 수도 리치먼드를 공략하기를 원했다. 맥클레런.. 2024. 4. 8. 이전 1 2 3 4 5 6 7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