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 직전에 미연방정부는 국가 부채가 많았다. 제임스 뷰캐넌 시절 절정에 달해 다음 대통령 링컨이 정권을 잡고보니 부채는 3배 가량 늘어나 있었다. 남북전쟁을 치루어야하는 북부로서는 돈을 어디서 구해야 했다. 방법은 두가지 였다. 세금을 걷거나 채권을 판매하는 것이였다. 의회는 채권을 승인하면서 소득세 부과를 승인한다. 오늘날 소득세 부과는 자연스러운 것이나 그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자본주의 핵심이 사유재산인정이므로 소득세는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영국은 나폴레옹과 전쟁을 치르면서 전비 마련을 위해 일시적으로 소득세를 부과한 적이 있었다. 당시 연방정부 세금은 각종 인허가세와 관세였다. 하지만 주요 수출품인 면화에 대한 관세와 남부가 수입하는 공산품에 세금을 메길 수 없는 상황이 오자 소득세를 부과한 것이다. 국민들 조세저항이 예상되나 그렇지 않았다.일반 병사 월급이 약 13달러인 시기였다. 고소득자만 세금을 내는 체계였다. 더군다나 당시 선진국이였던 영국도 했던 제도라며 정부는 무리없이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아주 손쉬운 전비 마련 방법으로 지폐를 발행해서 마구 쓰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을 미국이 독립전쟁 당시 썼다가 엄청난 인플레에 직면에 해결에 매우 어려움을 겪었었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정부가 돈을 찍어내면 안된다며 1791년 미국 제1은행을 설립하여 지폐를 발행하게 한다. 1812년 영국과의 전쟁으로 또 무분별하게 지폐를 발행한다. 무질서한 지폐발행을 막기위해 1816년 미국 제2은행이 설립된다. 1836년에는 앤드루 잭슨 7대 대통령이 제2은행을 폐지해 버린다.링컨이 정권을 잡기전 까지 이런 상환은 유지된다.
1862년 링컨 정부는 전쟁 조달을 위해 지폐 발행을 강행한다. 이전 지폐는 검은색 잉크로만 인쇄되어서 위조가 쉬웠다. 당시 사진술까지 발전해서 그냥 돈을 사진으로 찍어서 인쇄하면 위조 지폐가 되었다.위조지페 해결은 캐나다에서 나온다. 토마스 헌트가 특수 녹색 잉크를 개발한 것이다. 녹색잉크를 사용해 위조를 어렵게 한 것이다. 이 잉크로 미연방정부는 지폐를 만들고 지폐색이 녹색이라서 그린백이라 불려진다.
연방정부는 1달러 가치를 금 1.604g 또는 은 24.056g 으로 가치를 보장했다. 그렇다고 이것을 은행에 가서 금은으로 바꾸어 주는 것은 아니였다. 금과 은은 당시 국제 무역에서 통용되는 오늘날의 기축통확 같은 것이였다.이만한 가치를 연방정부 이름으로 보장한다는 일종의 증서였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그린백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린백에는 안전장치가 있었다. 바로 이 그린백으로 채권을 살 수 있는 것이였다. 당시 채권은 20년 만기에 연 6%수입을 주는 짭짤한 제테크 수단이였다. 정부는 전쟁 특수로 경제가 호전되고 세수가 증가하면서 이자를 감당할 수 있었다. 1870년 후반 그린백은 통화가치를 회복하고 이 후 재무부에서 시중의 그린백을 회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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