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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미국 남북 전쟁

스톤월과 스튜어트의 활약

by senamu 2024.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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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수도가 떨어질 위기에 처하는데 이 때 남부의 구세주가 나타난다. 바로 스톤월 잭슨이다. 스톤월 Stone Wall로 돌담벼락이란 뜻이다. 원래 이름은 토머스 조너던 잭슨이다. 얼마나 잘 싸우는지 돌벽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스톤월은 남부 셰넌도어계곡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그는 버지니아 군사학교를 졸업한 포병교관 출신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육군참모총장인 조지 마셜도 이 학교 출신이다.스톤월은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미연방군 무기고를 털어 휘하 여단과 민병대를 무장시키고 훈련시킨다. 1차 불런전투(매너서스전투) 에서 여단이 사단급으로 확장된다. 이 지역은 남부의 곡창지대일 뿐아니라 북부의 수도 워싱턴 D.C를 공격할 수 있는 주요 루트도 될 수 있는 곳이였다.

셰넌도어 계곡의 중요성을 안 북부는 이곳을 공략하기 위해 뱅크스를 보낸다. 뱅크스는 1862년 3월말에 셰넌도어 북쪽을 점령하는데 성공한다. 작은 승리를 거둔 후 남군이 별거 아니라며 안심하게 된다. 스톤월을 격파하기 위해 서쪽에서 프리먼트 군이 온다. 스톤월이 본색을 드러낸다. 프리먼트 군을 재대로 두들기더니 북쪽에서 안심하고 있던 뱅크스군도 격파한다. 스톤월은 종횡무진하며 북군을 깨부수기 시작한다. 스톤월군은 1일 최대 50km 속도로 더군다나 산악지역을 마구 잡이로 휘저으며 북군을 유린한다. 독일 기갑부대 진격 속도가 42km, 칭기스칸 기병 진격 속도 134km 이니까 걸어서 이 정도 속도가 나오니 걷는 기병 (Foot Calvalry) 라고 불려진다. 48일간 1000km 를 이동하며 북군의 3개 군단을 박살낸다.스톤월이 역량있는 지휘관이라는 소리도 있지만 병사들을 너무 혹사시킨 평도 듣는다. 이런 기동속도가 나온 것은 보급도 최소화 했기 때문이다. 셰넌도어 주민들이 스톤월군에게 보급을 해준 것이다. 스톤월이 북군을 두드리니 북군으로써는 리치먼드로 진격하기가 어려웠다.

 

북군의 맥다월군이 맥클레런과 합류하기 위해 리치먼드로 가야하는데 스톤월이 뒤를 계속 괴롭히니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맥클레런은 병력우위에도 맥다월군이 오면 치기로 하고 기다린다. 링컨도 그랬지만 남부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는 수도가 위기에 처했다며 리치먼드를 지키는 존스턴군에게 공격 명령을 내린다. 존스턴은 아직 때가 아니라며 움직이지 않으나 대통령이 계속 갈궈서 어쩔 수 없이 북군의 좌측을 뚫으러 간다. 세븐 파인지 전투가 벌어지고 여기서 방어선 돌파에 실패한다. 더군다나 존스턴은 부상으로 이탈하게 된다. 이 때 구원 투수로 로버트 리가 등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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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명의 구원자가 남부에 나타난다. 바로 J.E.B 스튜어트이다. 그는 전차의 제식명에 사용될 정도로 빼어난 활약을 한 기병대장이다. 기병을 이끌로 북군 뒤로 가서 보급로를 공격한다. 북군 철도를 공격하고 북군이 가지고 있던 말과 물자까지 마구잡이로 약탈한다. 뒤를 이렇게 치는 동안 겨우 1200여명 중 1명만 전사할 정도로 출중한 성과를 거두게 된다. 후방이 교란되자 북군은 발목이 잡히고 로버트 리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리치먼드 방어를 강화한다.

 

로버트 리는 셰넌도어에서 활약한 스톤월 사단까지 부른다. 있는 병력 없는 병력을 한 곳으로 집중시킨다. 가만히 있는 북군을 병력의 열세에도 먼저 친 것이다. 맥클레런은 놀라고 남군 수가 생각보다 많은 것 아니냐며 후퇴한다. 이런 오판에는 북군의 정보역량의 문제도 한 몫한다. 정보에 무지했던 당시 수준에서 북군은 탐정 사무소가 제공하는 정보를 맹신한다. 이 탐정 사무소가 바로 핑커튼 이다. 이 회사는 링컨이 선거운동 할 때 경호를 맡기도 한 업체이다. 아무튼 한 판 제대로 붙어서 북군을 섬멸하려 했던 로버트 리는 맥클레런이 쭉 빠지자 당황한다. 공격은 느린 맥클레런군이 도망칠 때는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고 질서정연하게 후퇴한 것이다.

로버트 리는 공세적 지휘관이였다. 맥클레런군을 격파하기 위해 맬번힐까지 쫒아간다. 화력전이 벌어지고 북군의 강력한 포격으로 로버트 리는 물러나게 된다. 로버트 리는 맥클레런과 다르게 공세적 지휘관이였다. 그랜트와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이 리치먼드 공세에서 북군은 18000여명 남군은 19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전투 결과로 보면 맥클레런의 승리라고도 볼 수 있으나 전략적으로 보면 북군의 패배이다. 압도적 전력으로 리치먼드를 손에 넣지 못하고 도망간 것이다. 맥클레런은 링컨에게 남군을 섬멸했다며 승전 전보를 보낸다.지원이 더 있었으면 완벽한 승리를 거두는 건데 나 정도니까 이 정도 했다며 자랑한다.링컨은 빡이 친다. 전쟁을 빨리 끝낼 찬스를 허공으로 날린 것이다. 링컨은 분노를 삼키며 맥클레런 휘하 군대를 줄이는 절차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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