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벌거벗은 세계사/AD_1200_149920 명나라 황제들 2부 소원절은 태자를 오래 살게 하려면 이룡불상견 (二龍不相見)이라며 아들과 황제인 아버지가 만나면 안된다는 말을 하게 된다.가정제는 이를 찰떡같이 믿고 아들을 보지 않는다.이름도 부르지 않앗다고 한다.영원할 줄 알았던 소원절은 도사임에도 80세의 나이에 죽게 된다.그 뒤를 이어 도중문이 등장하게 된다.이 양반은 황제를 상대로 부적을 팔고 약도 팔게 된다.기정제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 불로장생을 꿈꿨는데 이를 이용하게 된다.도중문은 불로장생 약을 만들게 된다.거기에 들어가는 재료가 수천명의 어린 궁녀에게 나오는 생리혈이였다.생리혈이 순수해야 한다며 궁녀들은 아침이슬만 뽕잎만 먹었다고 한다.영양실조로 죽은 궁녀가 수두룩 했다.여기에 여러 물질을 첨가해 불로장생약이라며 황제에게 받치게 된다.참다못한 궁녀들이 .. 2024. 10. 13. 명나라 황제들 1부 명나라의 큰 과제는 주변 이민족의 침입에 대비하는 것이였다.1000녀간 멈추었던 만리장성을 보수하고 증축하여 이들 북방 민족침입에 대비하게 된다.산해관을 시작으로 가욕관까지 6000여 km에 이르는 방벽을 완성하게 된다.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게 되자 명나라는 점차 안정되고 홍치제에 이르러서 전성기를 맞게 된다.홍치제는 법을 중시하고 능력있는 대신들을 기용하고 부정부패를 방지하고 경제를 부흥시킨다.인구도 늘고 쌀 생산량도 늘어 나라 재정이 튼튼해진다.역사는 이 시기를 홍치중흥 (弘治中興)이라 말한다홍치제가 죽고 1505년 그의 아들 정덕재가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된다.어렸을 때 매우 총명했다고 전해지는데 황제일을 하는 것은 다른 것이였다.14살에 재위하다 보니 놀기를 매우 좋아했다.특히 전쟁 놀이를 매우 좋아.. 2024. 10. 13. 영락제와 자금성 2부 영락제는 환관을 공포정치의 수단으로 삼게 된다.환관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기원전 14세기 갑골문자가 있는데 이 문자는 해석하면 왼쪽은 고추고 오른쪽은 고추절단기를 의미한다.처음에는 적군 포로를 거세시킨게 환괸의 시초였다.영락제는 환관으로만 구성된 정보기관 동창을 구성하게 된다.동창은 황제의 이름으로 여러 정적을 감시하고 외국도 감시하는 오늘날 국정원같은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게다가 체포와 형벌 권한이 있었다.특히 붉은 자수 신발이란 것이 있는데 이는 불에 달군 쇠신발을 죄인에게 신겨서 고문하는 잔혹한 형벌이였다.이렇게 환관 권한이 막강해지자 사람들은 출세의 길로 환관을 선택하게 된다.모집요강은 일단 10대,20대의 젊은 남자였다.문제는 시험에 응시하려면 먼저 고추를 잘라야 했다.떨어지면 고추도 떨어지고.. 2024. 9. 18. 영락제와 자금성 1부 중국은 중화사상으로 한족이 천하의 유일한 문명의 중심이라 생각한다.주변국은 모두 오랑캐였다.그러다가 오랑캐 중 하나인 몽골에게 나라가 통째로 넘어가게 된다.14세기 이르러 몽골은 왕위 계승 전투와 부패한 관리 게다가 자연재해까지 겹치며 민심은 흉흉해져 갔다.여기저기서 민란이 일어나고 이들 난이 홍건적의 난이다.이들 홍건적 중에 군계일학인 세력이 있으니 남경을 중심으로 한 주원장 세력이였다.그는 남다른 용맹과 지략으로 주변 반란세력 마저 평정하며 1인자가 된다.주원장은 이길 때마다 취두부로 잔치를 벌였다고 전해진다.누군가 버린 상한 두부를 한 번 튀겨서 먹어보더니 주원장은 그 깊은 맛에 반했다고 한다.1인자가 된 주원장은 마침내 1368년 황제에 즉위하고 대명나라를 건국하고 호를 홍무제라 하게된다.북경의 .. 2024. 9. 18. 합스부르크 왕가 2부 막시밀리안 1세 눈에 프랑스를 견제할 나라로 스페인이 들어오게 된다.스페인왕가와 겹사돈을 맺게 된다.스페인 측도 나쁘지 않은 결혼이였다.오스트리아가 스페인을 먹을 수도 있었지만 거꾸로 스페인이 오스트리아를 먹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스페인 왕가가 잇달아 사망하게 된다.유일하게 남은 스페인 상속녀 후아나는 남편 펠리페 1세가 죽자 정신이 나가버린다.결국 스페인은 합스부르크 펠리페 1세와 후아나의 아들 카를 5세가 먹어버리게 된다.합스부르크 왕가가 스페인을 물려받아 합스부르크가는 대제국을 이루게 된다.이렇게 결혼이 중요했다.후사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왕국의 운명이 결정되었다.이런 이유로 신부 아버지는 신랑의 불임여부를 테스트 했다고 한다.장인어른이 고른 여성을 신랑될 사람에게 보내어 임신이 되는지 떠보았다고.. 2024. 8. 11. 합스부르크 왕가 1부 10세기경 스위스 아르가우 지역에 말단 귀족인 합스부르크 가문이 있었다.합스부르크 가문은 신성로마제국(962년~1806년) 에 속해 있었다.신성로마제국은 과거의 로마 제국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신성한 왕권을 천명하며 세워진 제국이였다.하지만 로마와 다르게 수많은 영주와 제후들이 있는 분열된 국가 였다.황제 선출도 일부 유력가문이 그들만의 리그로 투표를 치루어 선출하고 교황의 인증을 받는 식이였다.황권은 이런 제후와 영주 틈바구니에서 약해져 있었다.12세기 중엽 합스부르크가문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편에 서서 정적을 막아주게 된다.1211년에는 프리드리히 2세와 사돈을 맺고 여기저기 금품을 살포하게 된다.이런 힘은 합스부르크가의 위치였다.중간 길목에 서서 중계무역으로 부를 축적하더니 주변 지역.. 2024. 8. 11. 오스만 제국과 커피 2부 오스만 제국에 카페가 발달하자 이제 고급스러워진 카페도 등장하게 된다.농사지을 땅이 부족한 베네치아는 무역이 예로부터 발달했는데 이런 베네치아인에게 오스만 제국은 큰 상권이 있는 기회의 땅이였다.오스만 제국 도처에 카페를 접하게 되고 여기서 커피 맛을 알게 된다. 오스만 제국은 자유로운 무역이 허용되는 개방적 국가였다.베네치아 상인들은 커피가 돈이 되겠다 싶어 예멘으로 향하고 이 커피를 수송할 항구가 바로 모카이다.베네치아인들은 커피가 비싸자 자체 생산하려 시도하게 된다.오스만제국도 이런 낌새를 알아차린다.자기들만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커피를 한 번 더 가공한다.커피에 싹을 못 트게 하기 위해 원두를 땡볕에 말리거나 뜨거운 물에 익혀버리기 시작한다.이게 로스팅의 시초이다.베네치아 상인을 통해 커피는 유.. 2024. 6. 23. 오스만 제국과 커피 1부 먼 옛날 에디오피아에 살던 목동 칼디는 염소를 돌보고 있었다. 그런데 염소들이 잠도 안자고 미친듯 날뛰는 염소 무리를 발견하고 여기에 대한 조사를 하기 시작한다.목동은 한 붉은 열매를 보고 이 열매가 염소를 미치게 한 것인가하는 의문을 품는다.바로 이 열매가 커피 나무다.이 나무는 아라비카 품종으로 오늘날 세계 커피 생산량의 70%정도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품종이다.커피작물은 재배 환경이 까다롭다. 적도 인근에다가 고지대여야 하고 비도 많이 내려야 한다.오늘날 커피 생산지가 적도에 몰려있는 이유이다.이런 조건을 딱 만족하는 조건이 당시에는 바다 건너 예멘이였다.커피가 예멘으로 전파되고 이슬람 신도들은 메카로 성지 순례갈때 이 커피를 필수품으로 달고 다니게 된다.특히 수피(신과 합일되는 것을 지상의 최고 가.. 2024. 6. 22. 메디치 가문 2부 부를 이루자 이제는 권력을 탐하게 된다.이탈리아는 크게 5 부분으로 조각나 서로 잘났다며 대립하고 있었다.피렌체 정부는 전쟁을 위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막대한 자금만이 강한 용병을 구할 수 있었다.전쟁 수행을 위해 채권을 발행하고 흥행을 위해 이율을 100%라는 파격적 조건을 내세운다.메디치 가문은 수천억을 들여 정부에게 돈을 꿔준다.정부는 전쟁을 위해 막대한 세금도 시민에게 부과했는데 메디치 가문이 돈을 빌려줘 세금이 줄어들게 된다. 백성들은 메디치를 연호하고 메디치 가문은 권력에 바짝 다가 서게 된다.순탄할 것 같은 메디치 가문에 적이 나타난다.1430년대 피렌체에서 권력 잡고 있던 알비치 가문이 메디치 가문 경계하기 시작한 것이다.코시모가 피렌체를 장악하려 한다며 알비치 가문은 여론전을 편다 여.. 2024. 6. 8. 메디치 가문 1부 유럽에 대표적 가문 3개가 있다.로스차일드,합스부르크,메디치 가문이다.메디치 가문은 원래 평민 집안이였다.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무젤로에서 조반니 더 메디치가 태어나고 25살에 은행업을 선택한다. 당시 은행은 예금과 대출 후 이자처리 그리고 외환 거래까지 오늘날과 별 차이 없는 업무였다.원거리에 돈을 옮겨 주는 계좌 이체 서비스도 존재했다.조반니는 은행업과 자본금을 모으기 위해 로마로 가서 친척의 은행에서 직원으로 취직한다.여기서 업무를 배우고 나중에 이 은행을 인수해서 피렌체로 귀환한다.동업자와 함께 피렌체에 은행을 개업한다.피렌체는 중세유럽에서 은행업이 가장 발달한 곳이였다.조반니가 은행업에 전념하는 동안 교회는 3조각으로 분열되어 있었다.필리프 4세가 강력한 힘으로 교황청을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기면.. 2024. 6. 8. 이전 1 2 다음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