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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AD_1200_1499

영락제와 자금성 1부

by senamu 2024.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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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중화사상으로 한족이 천하의 유일한 문명의 중심이라 생각한다.주변국은 모두 오랑캐였다.그러다가 오랑캐 중 하나인 몽골에게 나라가 통째로 넘어가게 된다.14세기 이르러 몽골은 왕위 계승 전투와 부패한 관리 게다가 자연재해까지 겹치며 민심은 흉흉해져 갔다.여기저기서 민란이 일어나고 이들 난이 홍건적의 난이다.이들 홍건적 중에 군계일학인 세력이 있으니 남경을 중심으로 한 주원장 세력이였다.그는 남다른 용맹과 지략으로 주변 반란세력 마저 평정하며 1인자가 된다.주원장은 이길 때마다 취두부로 잔치를 벌였다고 전해진다.누군가 버린 상한 두부를 한 번 튀겨서 먹어보더니 주원장은 그 깊은 맛에 반했다고 한다.1인자가 된 주원장은 마침내 1368년 황제에 즉위하고 대명나라를 건국하고 호를 홍무제라 하게된다.북경의 몽골 수도를 버리고 남경으로 도읍을 옮겨 버린다.

주원장은 정권을 잡고 재위기간 31년 동안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대규모 숙청 사업을 하게 된다.여기에는 개국공신도 얄짤없었다.거의 10만여명이 제거된다.그 숙청방법도 매우 잔인했다.요참(허리 끊어 죽이기),거혈(사지 찢어 죽이기),능지(살을 한점씩 포떠서 죽이기)등 잔인한 과거 형벌이 동원되었다.이 중에는 개국공신 호유용도 있었다.명나라 초기 재상이였는데 위상이 점점 높이자 권력을 남용하게 된다.이는 황제의 눈을 거슬리게 되고 결국 산으로 끌려가 모기에게 뜯어 먹히는 형벌을 받고 죽는다.주원장은 자식 농사에도 힘써서 슬하에 26명의 아들을 둔다.이들에게 군사를 맡기고 변방으로 보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게 한다.이를 번왕이라고 한다.여기에 예외가 한명 있었으니 장남이였다.적장자 상속제도에 따라 황위는 장자에게만 상속되는 것이 원칙이였다.근데 첫째가 갑자기 죽자 그의 어린 아들이 황제자리에 앉게 된다.

주원장의 손자 건문제가 황위에 오르게 된다.그는 삼촌들이 국경에서 번왕행세를 하면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게 된다.가장 위협이 되는 것은 북경을 책임지는 연왕이였다.일단 건문제는 약한 삼촌 번왕부터 제거하기 시작한다.그리고 연왕을 역모죄를 씌워 제거하려는 계책을 준비한다.연왕도 이런 낌새를 눈치채고 미친 짓을 하게 된다.한 여름에 춥다고 하질 않나 길거리를 마음대로 활보하고 도둑질도 하며 정신나갔음을 어필하게 된다.여기에 건문제는 속아 넘어간다.하지만 연왕이 일부러 그런다는 것이 뽀록나고 이 뽀록난 사실을 연왕도 알아차린다.체포작전이 수행되기 전 연왕은 선수를 쳐서 남경으로 군사를 밀고 들어간다.정난의 변이라는 내전이 발생하고 1402년 7월 연왕은 쿠테타에 성공하게 된다.문제는 건문제의 생사를 확인 못한 것이였다.황후의 시체는 찾았으나 핵심은 찾지 못한 것이다.이런 찝찝한 상황에서 연왕은 황제가 되고 이 사람이 바로 영락제이다.영락제는 자신처럼 누군가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며 번왕 자리를 없애고 자신의 측근인 어사를 파견해 중앙 집권을 이룬다.

영락제도 아버지 주원장 못지 않은 숙청을 단행한다.견문제 측근인 전적이 죄를 묻는 자리에서 자꾸 부당함을 성토하자 영락제는 그의 아들 6명을 데려다 놓고 위협한다.하지만 전적은 황제로 인정못하겠다며 뜻을 굽히지 않는다.영락제는 그의 귀와 코를 베어 삶아버리고 그것을 6아들에게 먹으라고 준다.그래도 뜻을 굽히지 앉자 6아들 모두를 죽여버린다.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고 전적도 죽는다.방효유도 영락제를 인정하지 않았다.그는 신망이 매우 두터운 학자였다.영락제는 그를 손에 넣고 싶어했다.그에게 자신을 황제로 인정하는 즉위서를 쓰라고 한다.이 양반은 즉위서 대신 燕敵簒位(연적찬위 : 연왕이 황위를 찬탈함)을 쓴다.분노한 영락제는 그의 입을 찢어버린다.9족을 숙청하게 된다.아버지 쪽 4족 어머니 쪽 3족 처가 2족 그리고 친구,제자까지 연관된 873명을 하늘나라로 보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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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제는 수도 남경을 자신의 정치적 근거지인 북경으로 옮기려 하게 된다.하지만 문제가 있었다.북경은 생산력이 약해 식량이 부족했다.그러자 다른 곳에서 식량을 끌어오기 위해 대운하를 건설하게 된다.자신의 권위를 드높이게 하기 위해 자금성 축조도 계획하게 된다.축조기간은 14년 10만명의 장인과 100만명의 노동자가 동원되었다.이들은 가혹한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렸다.자금성에는 거대한 흰돌이 많이 쓰였다.문제는 이 돌의 채석장이 자금성으로 부터 50km 나 떨어져 있다는 것이였다.이를 운반하기 위해 겨울에 물을 뿌려 빙판으로 만든 후 썰매 타듯 돌을 옮기게 된다.적으로부터 성을 보호하기 위해 최고 수준의 해자와 벽도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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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년 자금성은 완공되고 기념식이 열린다.자금성은 980여개 건물과 9천여개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자금성은 크게 외조와 내정으로 구분된다.외조는 태화전(황제의 공식 업무 장소),중화전(회의실),보화전(연회및 과거 시험장소)가 메인 건물이다.내정은 궁궐에 기거하는 사람들 숙소로 구성되어 있었다.성 곳곳은 용으로 장식되어 황제의 권위를 더했다.그리고 이 자금성은 약간의 경사가 있어서 물에 잠기지 않게 했다. 게다가 배수 시설도 잘 되있어서 지금까지 큰 자연재해 속에서도 한 번도 침수당한 적이 없다고 한다.외조의 태화전의 사자상과 내정의 사자상은 귀의 모양이 다르다 내정의 사자상은 귀를 막고 있는데 이는 여기서 들은 것을 듣지 말라는 황제의 경고 메세지가 담겨 있다고 한다.가장 어두운 공간도 존재했다. 냉궁이 바로 그곳이다.여기는 황제에게 버림받은 후궁이 갇히는 곳이였다.이 곳은 모든 출구가 막혀있고 작은 창문만 있었다고 한다.여기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수많은 원혼이 떠도는 곳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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