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의 큰 과제는 주변 이민족의 침입에 대비하는 것이였다.1000녀간 멈추었던 만리장성을 보수하고 증축하여 이들 북방 민족침입에 대비하게 된다.산해관을 시작으로 가욕관까지 6000여 km에 이르는 방벽을 완성하게 된다.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게 되자 명나라는 점차 안정되고 홍치제에 이르러서 전성기를 맞게 된다.홍치제는 법을 중시하고 능력있는 대신들을 기용하고 부정부패를 방지하고 경제를 부흥시킨다.인구도 늘고 쌀 생산량도 늘어 나라 재정이 튼튼해진다.역사는 이 시기를 홍치중흥 (弘治中興)이라 말한다
홍치제가 죽고 1505년 그의 아들 정덕재가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된다.어렸을 때 매우 총명했다고 전해지는데 황제일을 하는 것은 다른 것이였다.14살에 재위하다 보니 놀기를 매우 좋아했다.특히 전쟁 놀이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1507년에는 표방을 만들게 된다.중국에서 볼 수 없는 표범,사자,기린,타조등을 데려와서 동물원을 만들게 된다.장덕제가 특히 표범을 좋아해서 이 동물원 이름이 표방이 된다.여기에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게 된다.맹수 한마리당 240명의 병사가 투입되면서 관리 비용이 엄청나게 된다.장덕제는 호랑이와 싸우려고 덤벼들기도 하면서 기행을 일삼게 된다. 자금성이 불이 난 적이 있었는데 멋지다며 박수 친 일화도 있다.
표방은 이슬람 출신 친위대 우영에 의해 변질되게 된다.우영은 이슬람 여자가 중국 여자 보다 예쁘다며 황제에게 간언하고 황제는 이를 실천한다.동물로 가득한 표방을 이슬람 여자로 채우게 된다.간신과 환관도 황제에게 잘보이려고 서로 여자를 가져다 받치게 된다.정덕제는 기혼여성,임산부도 가리지 않았다.이렇게 여색을 탐하는 동안 환관 유근이 실권을 잡게 된다.황제를 여색에 몰두하게 하고 모든 정사를 자기가 관장한 것이다.결국 사례태감(환관 대장)에 오르게 된다.여기저기서 관리들이 유근에게 뇌물을 받쳤고 관리들은 뇌물을 백성에게서 짜내게 된다.결국 참다못한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키게 된다.민란의 원인이 유근에게 있음을 깨달은 정덕제는 그의 집을 압수수색하게 된다.어마어마한 재물이 나왔고 가짜 옥새와 허리띠(황제의 권위상징)을 발견하고 정덕재는 분노한다.게다가 부채에서 칼까지 발견되어 암살죄까지 뒤집어 쓰게 된다.유근은 능지형(3357번 칼질을 당했다고 함)을 받고 사망한다.
정덕제는 여색뿐 아니라 남색에도 빠지게 된다.미소년들을 모아놓고 마음에 들면 주씨 성을 주면서 양아들로 삼게 된다.장수 강빈도 그의 애인이였다.그는 자기와 전쟁 놀이를 하자며 정덕제를 꼬신다.정덕제는 주수라는 가상 인물을 만들고 벼슬도 준다.주수는 자기의 부캐였다.정덕제는 변방으로 가 전쟁을 즐기게 된다.황제자리가 공석이 되고 장시성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정덕제는 딱 기다리라며 군사를 이끌고 진압하러 간다.그런데 가는 도 중 수괴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재미가 없어진 정덕제는 수괴를 풀어주라 명하고 자신이 잡으러 다닌다.결국 수괴는 정덕제 손에 잡히고 정덕제는 거기서 유흥 파티를 즐기게 된다.그러다가 대운하에 배를 타고 노는데 휘청휘청 대다가 물에 빠지게 된다.그 후로 정덕제는 시름시름 앓더니 1521년 30대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문제는 정덕제에게 후사가 없었다.황후와 사이가 안 좋아 슬하에 달랑 공주 한명만 있었다.
후가가 없던 이유로 정덕제와 사천인 가정제가 황제자리에 오른다.문제가 있었다.황제 핏줄이 아니고 왕의 자손이다 보니 호칭문제가 발생한 것이다.황제의 아들이 아니고 왕의 아들이니 왕이라 불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게다가 부모 제사도 왕과 황제로 나누어 치루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게 된다.이 문제가 무려 17년간 계속된다.17년간의 논쟁 끝에 결국 황제 타이틀을 가지게 된다.하지만 불안 요소가 있었다. 아들이 없는 것이였다.불안한 가정제는 도교에 빠지게 된다.도교 이름도 짓게 된다.위에 [태생~제군] 이라 써진 한문이 그 이름이다.좋은 뜻을 다 갖다 붙여 저런 긴 이름이 된 것이다.도교 제단도 설치하고 소원절이라는 도사도 중용하게 된다.1533년 아들을 보나 바로 죽게 되고 가정제는 자신의 정성이 부족한 탓이라며 더욱 도교에 심취한다.소원절은 이런 황제에게 자신이 학과 구름을 만들 수 있다며 뻥을 친다.가뭄이 들자 비가 내릴 때까지 제사를 지낸다.언젠가는 비가 오는 것이 자연의 섭리였다. 이것을 자신이 했다며 사기를 치고 황제는 그 사탕발림에 넘어가게 된다.그에게 예부상서 직을 주고 국정을 맡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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