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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AD_1200_1499

영락제와 자금성 2부

by senamu 2024.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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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제는 환관을 공포정치의 수단으로 삼게 된다.환관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기원전 14세기 갑골문자가 있는데 이 문자는 해석하면 왼쪽은 고추고 오른쪽은 고추절단기를 의미한다.처음에는 적군 포로를 거세시킨게 환괸의 시초였다.영락제는 환관으로만 구성된 정보기관 동창을 구성하게 된다.동창은 황제의 이름으로 여러 정적을 감시하고 외국도 감시하는 오늘날 국정원같은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게다가 체포와 형벌 권한이 있었다.특히 붉은 자수 신발이란 것이 있는데 이는 불에 달군 쇠신발을 죄인에게 신겨서 고문하는 잔혹한 형벌이였다.이렇게 환관 권한이 막강해지자 사람들은 출세의 길로 환관을 선택하게 된다.모집요강은 일단 10대,20대의 젊은 남자였다.문제는 시험에 응시하려면 먼저 고추를 잘라야 했다.떨어지면 고추도 떨어지고 시험도 떨어지는 그야말로 도박이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관 경쟁률은 높았다.마취도 없이 수술을 했음에도 그 성공률이 매우 높았다고 전해진다.이 시술은 아무나 못하고 도자장이라는 사람이 맡았다고 한다.잘라낸 부위는 도자장이 높은 선반에 보관했다.높은 신분 상승을 바라며 고추를 높은 곳에 올려 놓은 것이다.나중에 환관이 높은 지위에 오르면 원래 고추를 찾아 증명하기도 하고 만일 보관상 실수로 없어지면 새로 사기도 했다고 한다.죽을 때는 고추와 같이 뭍혀 온전한 상태로 하늘나라로 갔다고 한다.환관은 궁정 전반의 모든 일에 관여했다.자녀 복을 불러온다는 의미로 고양이도 많이 키우고 이를 담당하는 환관도 있었다.이 고양이들은 지금도 자금성 곳곳에 살고 있다.

환관은 심지어 외교업무도 담당하게 된다.정화가 그 대표적 위인이다.이 양반은 이슬람교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명나라에 패하면서 강제로 거세가 되고 환관이 된다.정화는 그 후로 영락제 편에 서서 대활약한다.영락제는 그에게 함대를 주어 원정을 떠나게 한다.이 목적은 다른 나라와 조공무역을 하기 위함이였다.게다가 아직 건문제 행방이 묘연해 그를 찾으려고 이 함대를 구성했다는 목적도 있다고 한다.함대의 규모도 엄청났다.콜럼버스 함대보다 87년이나 앞섰고 함의 규모 자체가 달랐다.아프리카,아시아 여러나라들과 조공무역을 하는데 성공하고 어마무시한 조공품이 명나라로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이중에는 기린도 있었다.전설 속의 동물로 여겨졌던 기린이 들어오자 영락제는 감탄하게 된다.조선에서도 이를 축하하기위해 사절단을 파견한 기록도 존재한다.전설의 동물이 영락제 시기에 나타난 것은 황제로써는 하늘의 명분을 얻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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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은 조선에서도 이루어졌다.바로 공녀였다. 조선의 천민과 노예 신분이 아닌 13세~25세 양갓집 규수가 그 대상이였다. 이 공녀제도는 원나라부터 시작되어서 명나라한테도 이어진다.태종 이방원 때 가장 많이 보냈다고 알려져 있다.그 중 빼어난 미모의 권현비가 나타난다.악기도 잘다루고 하니까 영락제의 총애를 업고 황후 다음 서열까시 신분이 상승하게 된다.황후가 죽자 황후 대행이 되게 된다.몽골 정벌 때도 영락제는 권현비를 데리고 출정하게 된다.하지만 권현비는 죽게 되고 영락제는 크게 슬퍼하게 된다.

권현비가 죽고 4년후 이 죽음이 독살이라는 의혹이 퍼지게 된다.조선의 여미인이 권현빈을 시기해 독살했다는 것이다.영락제는 화가나서 여기에 연루된 궁녀와 환관 100여명을 능지처참 해버린다.이 일이 여기서 끝나면 좋겠지만 10년후 이 일은 또 수면에 떠오른다.여미인을 고발한 명나라 여씨가 동성애와 문란한 성생활로 궁지에 몰리게 된다.이대로 끝나면 아무일 없을 수도 있었으나 여씨는 황제의 처벌이 두려워 여씨와 그의 애인 어씨는 자살해버린다.여기에 영락제는 수상하다며 추궁을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여씨가 여미인이 권현비를 죽였다는 누명을 씌웠다는 것을 알아버린다.제대로 빡친 영락제는 여기에 연루된 2800여명의 환관과 궁인을 죽여버린다.이 일이 어여의 난이다.여기에 모든 신하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하지만 세월이 흘러 영락제는 노쇄해진다.

대학살 후 자금성에 불이 난다.상공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벼락이 떨어지고 불이 난것이다.영락제 치세에 큰 스크래치가 가게 된다.이 일을 기점으로 신하들은 조목조목 영락제의 실정에 대해 성토하기 시작한다.결국 영락제는 건강이 악화되고 이 몸으로 몽골과 전쟁나갔다가 전장에서 죽게 된다.그는 죽었으나 건축물인 자금성은 지금까지 남아있게 된다.지금도 각종 국가 귀빈이 오면 초청되는 장소가 된다.수백년간 꽁꽁 숨겨있다가 20세기 초 궁궐이 박물관이 되면서 자금성은 일반 시민에게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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