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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AD_1200_1499

합스부르크 왕가 1부

by senamu 2024.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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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경 스위스 아르가우 지역에 말단 귀족인 합스부르크 가문이 있었다.합스부르크 가문은 신성로마제국(962년~1806년) 에 속해 있었다.신성로마제국은 과거의 로마 제국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신성한 왕권을 천명하며 세워진 제국이였다.하지만 로마와 다르게 수많은 영주와 제후들이 있는 분열된 국가 였다.황제 선출도 일부 유력가문이 그들만의 리그로 투표를 치루어 선출하고 교황의 인증을 받는 식이였다.황권은 이런 제후와 영주 틈바구니에서 약해져 있었다.

12세기 중엽 합스부르크가문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편에 서서 정적을 막아주게 된다.1211년에는 프리드리히 2세와 사돈을 맺고 여기저기 금품을 살포하게 된다.이런 힘은 합스부르크가의 위치였다.중간 길목에 서서 중계무역으로 부를 축적하더니 주변 지역을 결혼도 하면서 땅도 넓어지게 된다.이 당시에는 영주끼리 결혼하여 자신의 땅을 넓히는 사업이 유행이였다.대가 끊기면 그 지역을 상속받는 것이 관례였다.합스부르크가는 백작 가문이 된다.신성로마제국은 20년동안 황제자리가 비어있었다.이 시기가 바로 대공위시대이다. 제후들의 알력다툼이였다가 그들은 적당한 허수아비 황제 될 놈을 찾게 된다.적당히 정통성은 있지만 좀 부려먹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가 바로 합스부르크가의 루돌프 1세였다.황제 오를 당시 그의 나이는 55세로 곧 죽을 사람으로 여겨졌다.당시 유럽 평균수명은 30이였다.제후들이 생각하기에는 욕심없는 노인이라 생각한 것이다.이 때부터 합스부르크가 역사의 전면에 떠오르게 된다.

루돌프는 힘없는 늙은이가 아니였다. 오스트리아 지역을 힘으로 뺏은 후 그의 아들에게 오스트리아를 넘겨 준다.그리고 가문의 뿌리를 오스트리아로 옮기게 된다.하지만 1291년 루돌프 1세가 죽고 그의 아들이 조카에게 암살당한다.황제 자리까지 다른 가문에 내주게 된다.스위스 지역에는 반란이 일어나 신성로마제국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이 때 벌어진 전투가 젬파흐 전투이다.이 전투에서 용맹한 스위스군을 보고 교황청은 감탄하게 된다 16세기초 부터 교황청은 스위스 근위대가 지키게 되고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합스부르크가는 힘을 잃게 되고 역사에서 잠시 멀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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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후들은 자기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기 위해 선제후를 만들고 여러 특권을 만들어 낸다.이 당시 합스부르크가는 황제의 사위 가문이였으나 이 선제후에 끼지 못하게 된다.가문에는 위기감이 감돌게 된다.여기서 묘한 일이 일어난다.합스부르크 가문이 위조 문서를 들고와 자신들의 가문은 선제후 위에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과거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합스부르크가를 공작이 아닌 대공작 지위를 인정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당시 문서는 금인장이 있어야 효력이 있었는데 이것도 있었고 더군다나 1156년 9월 17일에 이와 같은 문서가 작성됬다는 역사적 기록까지 등장하자 합스부르크 가문은 단숨에 선제후 위 서열로 급이 확 올라가게 된다.현대에 와서 이 문서를 조사해보니 금인장은 어디서 떼가지고 덧 붙인 것임이 밝혀지게 된다.

부정한 방법이였지만 어째든 합스부르크가는 위세가 커지게 된다. 합스부르크가의 알브레히트 2세는 헝가리제국 외동딸과 결혼하게 되고 동유럽 지역을 차지하게 된다.이 때부터 합스부르크가는 전쟁이 아닌 결혼으로 왕국을 키우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이런 자신감은 오스트리아에서 자주 보이는 문장  AEIOU 에 잘 나타나게 된다.오스트리아가 세계의 통치자라는 것이다.

결혼으로 세를 불리는 방법은 이제 족보를 꼬이게 하는 시작이 된다.그 시작이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안 1세였다.부르고뉴 상속자 마리와 결혼을 하여 그 지역을 먹어버린다.음모인지 마리가 말타다가 사고로 사망하자 부르고뉴를 상속받게 된다.막시밀리안은 프랑스 동쪽의 부르타뉴를 탐내게 된다.그 곳 상속녀 안과 결혼하여 그 지역을 취하게 된다.막시밀리언은 결혼만으로 땅을 불린것이 아니였다. 전쟁도 했는데 안과 결혼식을 전쟁치르느라 못 가자 신랑 대리인을 보내 결혼하게 된다.이를 아주 눈에 가시로 보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프랑스 왕 샤를 8세였다.오스트리아가 자꾸 프랑스 영토를 넘보는 것을 불괘하게 여기게 된다.막시밀리언은 자신의 딸 마르게리타를 샤를 8세에게 던져 주며 분노를 잠재우려 한다.하지만 샤를 8세는 딸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부르타뉴로 쳐들어가 무력으로 점령한 후 막시밀리안 아내 안과 결혼하게 된다.정략결혼으로 프랑스를 먹어보려 한 막시밀리안 꿈은 물거품이 되고 이 후 프랑스와 합스부르크가는 원수지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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