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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AD_1200_1499

오스만 제국과 커피 2부

by senamu 2024.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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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만 제국에 카페가 발달하자 이제 고급스러워진 카페도 등장하게 된다.농사지을 땅이 부족한 베네치아는 무역이 예로부터  발달했는데 이런 베네치아인에게 오스만 제국은 큰 상권이 있는 기회의 땅이였다.오스만 제국 도처에 카페를 접하게 되고 여기서 커피 맛을 알게 된다. 오스만 제국은 자유로운 무역이 허용되는 개방적 국가였다.베네치아 상인들은 커피가 돈이 되겠다 싶어 예멘으로 향하고 이 커피를 수송할 항구가 바로 모카이다.베네치아인들은 커피가 비싸자 자체 생산하려 시도하게 된다.오스만제국도 이런 낌새를 알아차린다.자기들만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커피를 한 번 더 가공한다.커피에 싹을 못 트게 하기 위해 원두를 땡볕에 말리거나 뜨거운 물에 익혀버리기 시작한다.이게 로스팅의 시초이다.

베네치아 상인을 통해 커피는 유럽으로 가게되고 베네치아인도 오스만식으로 커피를 즐기기 시작한다.베네치아에 플로리안이라는 카페가 탄생하게 된다. 이 지역은 카사노바가 여자 꼬실 때 자주 이용한 카페였다.여러 유명 인사도 이 카페를 애용하게 된다. 커피는 베네치아를 넘어 로마로 넘어가게 된다.커피는 이슬람교인 오스만 제국에서 온 음료였으므로 일부 사람들에게는 악마의 음료로 여겨졌다.이교도의 음료인데다가 마시면 악마에게 영혼을 뺏긴다는 소문도 퍼지게 된다.이 소문의 중심에는 성직자가 있었다.커피로 인해 자신들의 입지가 흔들릴 것을 염려한 것이다.결국 커피가 교황의 귀에 들어가고 클레멘스 8세는 커피를 음미해 본다.그는 유레카를 외치며 이런 좋은 음료를 이교도만 마시면 손해다라며 커피에 세례를 내리게 된다.물론 세례를 내렸다는 것은 설이지만 교황이 직접 커피를 공인해 버리자 커피는 유럽으로 빠르게 전파되게 된다.

대항해 시대는 커피를 전세계로 퍼뜨리게 된다.1600년대 중반에는 네덜란드 상인이 커피를 수입하기 시작하고 1700년대 초 영국은 무역선이 한번에 1300톤 커피를 수입하기 시작한다.유럽 여러나라들이 커피에 목을 메는 이유는 수요는 넘치고 돈이 되기 때문이였다.당시 커피 1g은 은 1g의 가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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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오스만 제국은 귀족과 관료 힘 강해지고 술탄 힘 약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오스만의 술탄 무스타파는 이 위기를 타파해보고자 유럽 원정을 떠나게 된다.1683년 7월 14일 군대 이끌고 빈으로 향하게 된다.오스만 제국이 침입하지 합스부르크 왕 레오폴드 1세는 도망가게 된다.오스만군은 압도적 전력에도 불구하고 부유한 도시인 빈을 고스란히 차지하기 위해 60여일동안 빈을 포위하고 농성을 하게 된다.합스부르크 황제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유럽 여러 지역에 도움을 청한다.빈이 무너지면 유럽 전체가 날아가기 때문에 유럽 국가들은 연합군을 조직하게 된다.10만 정도가 빈을 구하러 온다는 소식이 무스타파에게 들리고 무스타파는 서둘러 빈을 공격한다.하지만 패하게 되고 오스만군은 황급히 퇴각하게 된다.

오스만군이 서둘러 퇴각하면서 보급품인 커피를 두고 가게 된다.이 커피를 콜시츠키라는 사람이 받아서 빈에 카페를 열게 된다.하지만 오스트리아인에게 오스만식 커피는 맛이 없었다.여기에 크림과 꿀을 타게 되고 이 커피가 바로 비엔나 커피의 기원이 된다.특히 아인슈패너는 한마리의 말이 이끄는 마차라는 뜻으로 마부들이 즐겨 마신 커피라 불려지게 된다.오스트리아도 커피가 대유행하게 된다.참고로 오스트리아에는 아이스 커피가 없다고 한다.이 전투로 탄생한 음식이 또 있다. 바로 크루아상이다.빈전투 승리를 기념한 빵으로 오스만 상징을 빵으로 만든 것이다.이 빵이 프랑스로 전해져 세계적인 빵으로 거듭나게 된다.빈전투 패배를 기점으로 오스만제국은 점점 힘을 잃고 커피 장악력도 잃게 된다.1690년대에는 네덜란드 상인이 커피 묘목을 오스만제국으로 부터 빼오는데 성공하게 된다.이를 네덜란드 식민지인 자바와 자카르타로 가서 대량 생산하기 시작한다.이런식으로 제국주의 열강들은 커피 묘목을 자신들 식민지에 퍼트리게 된다.커피 주산지가 오스만에서 유럽과 신대륙으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오스만제국이 쇠퇴해도 커피 풍습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게 된다.튀르키예에 커피 문화가 스며들어 커피점까지 탄생하게 된다.또한 커피로 결혼도 하는 풍습도 있다고 한다.신랑 어머니가 신부를 탐색하다가 마음에 들면 신부측과 합의하에 만남을 정하게 된다.장소는 신부집이고 이 때 만남을 신부측은 거절 할 수가 없다.청혼 받은 여성은 커피를 타서 신랑측 식구들에게 대접하게 된다.커피타는 실력으로 신부를 평가했다고 한다.신부는 신랑이 마음에 안들면 커피에 소금을 듬뿍타서 거절의사를 표현하고 마음에 들면 설탕을 탔다고 한다.이 전통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유럽국가들이 식민지에 퍼뜨린 커피로 커피는 전 세계적 기호식품이 되게 된다.그리고 커피를 생산하는 적도지역 부근이 띠를 이루고 있다하여 여기를 커피벨트라 부르게 된다.특히 미국에서 만들어진 아메리카노는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큰 인기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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