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련은 독일이 침공하자마자 우크라이나 지역의 군수공장 2500여개 정도를 동쪽으로 옮기기 시작한다.1930년대 소련은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급변했고 콤비나트 라고 하는 공업지역을 이 지역에 대규모 배치했었다.이들이 고스란이 독일에게 넘어가는 것은 막아야 했다.공장뿐 아니라 공장근로자와 그들 가족까지 모두 소개시키는 명을 내리게 된다.이동 인원만 해도 2500여만명이였다.










자포리자는 콤비타트의 핵심지역이였다.자포리자에는 대규모 댐이 지어지게 된다.돈바스에 나오는 풍부한 자원을 댐에서 나오는 전기를 이용해 가공한 것이다.전기를 많이 쓰는 마그네슘과 알루미늄의 상당수가 여기서 만들어 지고 있었다.독일군이 빠르게 진격해오나 드네프르강이 자연 방어 시설이 되며 독일군은 속도가 줄어들게 된다.1941년 8월 18일 소련군은 자포리자 지역의 댐을 폭파해서 공장 철수 시간을 벌게 된다.예고 없는 댐 파괴로 많은 아군과 주민들이 수몰된다.독일군은 불어난 물에 도하를 하지 못하고 그사이 소련은 화차를 동원 공장을 뜯어 이주 시키게 된다.










우크라이나 지역 공업지역은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지역이였다.소련은 이 지역 공업단지를 건설하면서 많은 기계들을 외국에서 사온다.그 돈은 우크라이나 농산물을 팔아서 얻은 돈이였다.농산물을 너무 많이 팔아 이 지역에 대기근이 발생하게 된다.우크라이나 지역은 곡창지대로 굶을 수 없는 지역인데 식량을 구경도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정말 피같은 공장이였다.철수를 한꺼번에 하다보니 병목상태가 발생하고 공장기계들을 어떤 건물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 맨땅에 그냥 얹어 놓고 공장을 돌리게 된다.눈비 맞으며 기계를 돌리게 된다.남자들은 모두 군대에 징집되어 여성 노동자들이 대거 투입되고 허와벌판에 공장을 옮기다 보니 살 집도 없어 움막을 지으며 살게 된다.










아조우스탈 쪽은 소련이 공장을 다 뜯기도 전에 독일군이 들이닥치게 된다.들고 갈 수 없으니 모조리 파괴하는 지침이 내려지게 된다.뜯어진 공장은 우랄산맥 뒤편으로 가게 된다.소련 엔진니어들은 전혀 연관성이 없는 공장을 붙여 전차 생산 공장으로 만들게 된다.1943년 되면 T-34 전차가 쏟아져 나오게 된다.공장이 풀가동 되던 시기와 소련군이 독일군을 역전하는 시기는 상당히 일치한다.소개 과정은 거의 1년 넘게 진행된다.




독일의 소련 침공은 물과 기름과 불이라 할 수 있는 세나라 미국,영국,소련을 하나로 뭉치게 한다.미국과 영국 역시 겉으로 내색은 안하나 서로 섞일 수 없었다.미국은 자유경제를 추구하나 영국은 식민지가 많아 블록경제를 선호하고 있었다.영국이 먼저 소련에 한 발 물러서는 입장을 보이게 된다.처칠은 공산주의가 싫지만 독일이라는 적을 부수기 위해 소련과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게 된다.미국은 처음에는 중립이였다가 독일이 파리를 먹고 영국마저 무너지며 안된다며 조심스럽게 무기대여법을 지정 간접 참전을 하게 된다.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미국은 큰일났다며 소련을 지원해 주기로 한다.문제는 반대 세력이였다.공산주의자들과 파시스트들이 서로 물어 뜯으면 둘다 힘빠지는 데 좋은 거 아니냐는 세력과 고립주의를 주창하는 세력도 많았다.루스벨트는 이런 반대를 의식 제한적으로 소련을 지원하기로 방침을 정하게 된다.아무래도 영국과 동일하게 지원할 수는 없었다.루스벨트는 스탈린에게 얼마 지원해주면 되냐며 조심스럽게 묻고 스탈린은 전투기 6000여대등 막대한 청구서를 들이밀게 된다.예상보다 큰 청구서에 루스벨트는 당황하고 소련이 지는 거 아니냐며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1941년 7월말 루스벨트 특사 해리 홉킨스가 영국 방문길에 소련을 들러 상황을 살피게 된다.스탈린은 홉킨스에게 이번 전쟁의 분수령은 1942년이 될 것이고 그 때 독일과 소련 중 물자를 많이 가진 놈이 이긴다며 적극적인 지원을 호수하게 된다.미군이 파병에서 소련 땅에서 독자적으로 싸우는 것도 허가하게 된다.스탈린은 외국군대에 반감을 가진 사람이였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자존심을 버리게 된다.스탈린은 미국을 비행기 태우면서 치켜 세우고 파병은 빼고 물자를 달라고 명확히 요구하게 된다.





홉킨스는 스탈린과 면담을 끝내고 루스벨트와 처칠이 있는 프린스 오브 웨일함으로 가게 된다.거기서 스탈린의 생각을 양국 정상에게 전달하게 된다.두 정상은 홉킨스의 보고를 토대로 서신을 만들고 모스크바에서 3국 회담을 하기로 뜻을 모으게 된다.실제로 세 정상은 모스크바에서 만나게 되고 미국은 빵빵한 물자 지원을 약속하게 된다.스탈린은 우리도 힘을 내어 독일군을 저지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독일은 외교에 빵점이였다.군사적으로 승리에 도취된 나머지 외교를 소흘히 하게 된다.일본은 태평양을 노리고 둘은 주축국으로 묶여 있었다.소련과 미국이 그렇다고 사이 좋은 것은 아니였다.러시아가 혁명이 일어나고 소련이 탄생하게 된다.소련은 소련내 미국 자산을 국유화하며 낼름 먹어버리고 빚까지 안갚겠다고 버티게 된다.윌슨 정부는 화가 나 단교를 선언하기에 이른다.하지만 1933년 루스벨트가 집권하자 상황이 반전된다.미국은 슬슬 기어오르는 일본을 제어할 파트너로 소련을 선택하고 당시 대공황 시대여서 물건을 팔 시장으로 소련을 낙점하며 외교 관계가 복원된다.하지만 소련에서 대숙청 및 대규모 기아 사태가 벌어지자 여론이 악화되며 두 국가의 관계는 냉각된다.독소불가침 조약이 맺어지자 미국의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된다.하지만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상황은 조금씩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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