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은 기세를 몰아 키예프로 압박을 가하게 된다.키예프는 매우 중요한 도시로 예전부터 요새로 둘러진 곳이였다.소련군은 지류의 다리를 모두 끊어 키예프로 오는 독일군을 저지하게 된다.기갑부대가 갈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자 독일군은 보병에게 후속임무를 맡기고 남쪽 대각선 방향으로 턴하여 남은 소련군을 섬멸하기 위해 추격적을 벌이게 된다.바둑에서 말하는 축몰이를 하며 소련군을 포위섬멸하기 위한 기동을 한다.




독일이 축몰이를 성공하려면 뭔가 다른 부대가 팔을 뻗어주어야 하는데 그 역할은 동맹국이 해주어야 했다.루마니아는 발목잡혀 못오고 있고 의외로 헝가리가 전격전을 벌이며 축을 완성시켜준다.헝가리는 없는 살림에 전차를 싹싹 긁어모아 독일군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게 된다.우만 포위에 성공하고 소련군은 위기에 몰리게 된다.






우만포위전에서 독일의 영웅이 나타나게 된다.미하일 비트만은 적전차 138대를 격파한 명장이였다.1914년 라인라트에서 태어나 초등교육을 마친후 아버지와 농사를 짓게 된다.1934년 군에 입대하더니 1937 나치 친위대가 되고 친위대 안에서 최정예인 히틀러 경호부대(LAH) 중사가 된다.폴란드전에서 장갑차소대에 실전을 겪고 독소전쟁 때는 돌격포 포대장으로 참여하게 된다.돌격포는 포탑이 없어서 자체가 낮고 포가 회전이 안되었다.비트만의 돌격포는 전차부대에 배속되어 탱크 잡는 역할을 맡게 된다.우만에서 수색을 하다가 17대의 소련전차를 마주하게 된다.비트만 돌격포는 숨어서 소련전차를 한대 때리고 도망가고 다시 때리고 도망가고 이런식의 전술로 소련전차 7대를 격파하게 된다.소련군은 독일의 대규모 기갑부대가 왔다며 착각하고 도망가게 된다.








아돌프 히틀러 경호부대(LAH)는 처음 시작은 미미했다.보디가드 부대가 점점 몸집을 불리더니 그리스전역에서 대활약하게 된다.그 전까지 육군내에서 LAH는 건달 조직으로 인식되며 격떨어진다며 소외받고 있었다.히틀러는 그리스 전역 승리 후 부대 사열을 받고 여기서 SS 부대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치하하게 된다.총통이 직접 거명한 부대를 다른 부대들이 무시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괴벨스는 선전을 통해 SS 에 힘을 실어주게 되고 SS 는 위상이 수직 상승하게 된다.전공을 세우더라도 SS를 우선 보도하는 등 일종의 특혜를 주게 된다.







우만에 갖힌 소련군은 각자 도생의 길로 접어들며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하지만 적지 않은 소련군이 투항하고 포로가 된다.거의 10만이 넘는 인원이였다.독일군 손실은 만명으로 포위전은 성공이라 볼 수 있으나 상당수 소련군이 사방으로 빠져나가면서 포위 섬멸은 하지 못하게 된다.이 시기 북부집단군과 중부집단군은 수십만을 잡은것과는 대조적이였다.히틀러는 분노하게 된다.히틀러는 이 곳을 상당히 중시했다.우크라이나 서부는 곡창지대이고 동부 돈바스는 자원의 보고로 앞으로의 전쟁에 필요한 거대한 보급창고였다.









히틀러는 생각한다.모스크바를 점령해도 소련이 무너지느냐는 장담 못한다는 것이다.과거 나폴레옹은 모스크바로 무리하게 진격하면서 옆구리를 비워두게 된다.옆구리를 강타당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패퇴했다.장군들 생각은 달랐다.장군들은 교통을 보게 된다.모스크바가 모든 교통의 허브인데 여기를 장악하면 소련의 물류망이 마비되어 소련이 무너진다고 본 것이다.클레우비츠 전쟁론도 거론한다.전쟁론에 따르면 전쟁을 가장 빨리 끝내려면 국민의 의지를 완전히 꺽을 수 있는 곳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바로 거기가 적의 심장 수도였다.하지만 이런 주장은 히틀러의 명령 앞에 무시된다.히틀러 말대로 폴란드부터 유럽 여러 나라를 석권했기 때문에 명분은 히틀러가 윈이였다.훗날 구데리안은 이 결정이 아쉬웠다고 주장하기도 한다.히틀러 말대로 중부집단군이 애초에 모스크바에서 크게 우회전하여 우크라이나 석권을 위해 차출되게 된다.


히틀러가 그러면 판단미스를 한 것이냐 여기에 반론을 펴는 학자가 있다.미국의 저명한 군사학자 글렌츠는 당시 군대 배치나 상황을 보았을 때 모스크바로 진격하면 독일군 옆구리가 강타당해 독일군이 포위 섬멸 될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된다.이 포위를 안당하려면 우크라이나 지역을 잠재울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독일 경제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독일은 소련 침공 전 거의 헐떡 대면서 연명하고 있었다.계속된 전쟁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다.패전국에서 압수한 자원으로 다시 경제를 돌리며 한 숨 돌리고 다시 전쟁하고 계속 반복이였다.게다가 300만이나 병력을 차출하면서 본국에서 군수공장이나 경제활동을 할 인구가 부족했다.독일은 이 당시 국가 총동원에는 부정적이였다.1차대전 때 총동원했다가 국민의 거센 저항을 받았고 나치의 정치적 기반 중 하나가 산업가와 자본가였기에 이들에게도 가혹한 요구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탄약생산량은 프랑스전에서보다 더 떨어지고 있었다.원래 소련 침공전에는 많은 물자를 소련으로부터 충당했으나 이제 그거는 물건너 갔다.루마니아에서 들여오는 석유와 스웨덴에게서 공급받는 철광석만으로 연명하기에는 부족했다.이 상황에서 자원의 보고인 우크라이나 차지는 필수였다.



히틀러와 장군들 시각차는 경제문제에서 갈리게 된다.독일 일선 장군들은 경제에 무지했다.하지만 여기서의 큰 문제는 목표가 오락가락 했다는 것이다.분명히 소련을 무너뜨리려면 겨울이 오기전에 전쟁을 끝내야 했고 그러면 단기 결전이였다.근데 우크라이나를 노린다는 것은 장기전을 염두에 둔 목표였다.모스크바를 무너뜨린다고 소련이 주저 앉을 지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소련 체제가 강압적이긴 하지만 수도 떨어진다고 깨질 나라는 아니였다.소련은 이 당시 모스크바를 포기하고 수도를 옮길 생각까지 하게 된다.독일이 단기결전을 목표로 우크라이나로 중부집단군을 우회전 안시키고 진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 지는 사학계의 논쟁으로 남게 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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