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중부 집단군에게 소련의 관문 같은 도시 4개가 있었다.최종적으로는 안방 모스크바를 깨뜨리는게 목표였다.독일은 민스크를 먼저 치기위해 기갑 부대로 양팔을 뻗어 소련군을 양익포위하고 그 안쪽 도시인 비아위스토크는 보병으로 포위하는 전략을 짜게 된다.한쪽팔인 2기갑부대의 출발점은 브레스트였다.여기는 1차대전 당시 러시아와 독일이 강화조약을 맺은 곳인 동시에 독일과 소련이 폴란드를 분할할 때 기점이 되는 아주 중요한 도시였다.





브레스트 양쪽에는 부크강이 흐르고 있었다.독일은 새벽 3시15분 강건너편에 준비 포격을 하게 된다.구데리안은 적이 정리되자 잠수전차를 동원 강을 도하하게 된다.정상적이라면 공병이 건너가 교두보를 확보한 후 부교를 놔야 했지만 구데리안은 이를 기다릴 사람이 아니였다.전차에 물 새는 곳을 고무로 막고 해치 위에 파이프를 달아 숨구멍을 만들고 강바닥으로 전차를 몰아 강을 건넌다.소련군은 독일 전차에 겁을 먹고 붕괴된다.





강은 건넜지만 여기에는 브레스트 요새라는 강력한 방어 타워가 존재했다.르네상스시대 부터 만들어진 요새는 성벽 높이가 10m 였고 성 주변을 해자가 둘러싸고 있었다.방도 많아 게릴라전을 펼칠 수 있는 곳이였다.독일은 여기를 깨뜨려야 모스크바로 가는 출발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독일은 1차대전에 리에주 요새를 함락시켰던 디케베르포를 생각하게 된다.그보다 구경이 큰 60cm 중박격포를 준비하여 브레스트 요새를 깨부수려는 시도를 한다.포가 하도 커서 크레인으로 장전을 해야 했다.이 포 뿐만 아니라 여러 대의 포가 브레스트 요새를 때리게 된다.탄막이 형성되자 공병들이 폭탄을 쥐고 요새 밖을 공격하게 된다.이무렵 이 지역을 관할한 소련군 28군단은 훈련을 한다며 주변 사단을 불러들인 상태였다.브레스트 요새 자체 수비 병력과 이들이 합세하여 완강한 저항을 하게 된다.독일군 화력에 소련군은 무너지지만 소련군 9000여명 정도는 브레스트 요새에 숨어 끈질기게 버티게 된다.브레스트 요새 항전은 나중에 영화로 제작되게 된다.








독일이 여기를 확보해야만 중요한 이유가 더 있었다.이 지역 부터 기차의 궤도가 바뀌는 시작점이였다.소련 영토에 보급을 하려면 여기 접수는 필수적이였다.오늘날에도 여기는 나토와 러시아군이 나뉘는 기점이기도 하다.소련군은 가브릴로프 소령의 지휘 아래 결사 항전을 한다.소련군 7000여명이 항복하게 되고 가브릴로프 소령은 계속 저항하게 된다.1941년 7월 23일 까지 브레스트 요새에 숨어서 저항한 소련군이 있었다.거의 한달인데 이 기록은 한 병사의 벽낙서로 확인이 된다.가브릴로프 소령은 탈진에 이를 때까지 저항하다 독일군의 포로가 된다.가브릴로프는 4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다 풀려나 일본군 포로 수용소 소장이 된다.그는 포로 생활 경험으로 일본군 포로들을 잘 대우해 주게 된다.1975년 가브릴로프 소령은 사망한다.









1941년 8월 26일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브레스트 요새를 방문하게 된다.소련군이 무너졌다며 선전하기 위함이였다.하지만 소련군이 완전히 소탕된 것은 아니였다.무려 10개월을 브레스트 요새에 기거하며 저항한 소련군이 있었다.독일군은 경악하고 폴란드 유대인을 요새로 투입 찾으라는 명을 하게 되고 압박을 받은 소련 군인 1명은 자결하게 된다.소련군은 초반에 독일군에게 탈탈 털렸지만 브레스트 요새는 달랐다.소련은 전쟁 내내 이같은 저항을 모르고 있었다.나중에 스미르노프가 이곳을 조사하다 항전 사실을 알고 책으로 출판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가브릴로프는 소련의 영웅으로 추대되고 이 지역은 성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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