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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독소전쟁

독일의 소련 침공 준비

by senamu 2026.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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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은 병력 320만 145개 사단을 소련침공에 투입하게 된다.독일 전력의 70%였다.소련군은 570만이였다.서부에 290만이 있었고 예비병력은 1400만명이였다.독일군은 북부,중부,남부 집단군을 편성하는데 한 군 보통 3~4개 야전군을 합쳐 놓은 규모로 1개 집단군은 현재 우리나라 병력 규모보다 더 컸다.남부 집단군에는 헝가리 사단 2개와 이탈리아 사단 2개를 집어넣어서 부족분을 채우게 된다.슬로바키아와 스페인 부대도 투입 이들에게는 별도 임무를 맡기게 된다.집단군의 목표는 빠르게 진격을 하면서 적을 섬멸시키면서 가야 했다.이 거리가 1000km 가 넘었다.

독일은 기갑 집단을 만들게 된다.대규모 전차를 몰아 넣어 빠르게 진격하면서 돌파하는 게 목적이였다.이미 프랑스에서 기갑을 모아 운영한 경험으로 이런 임시 편제를 만들게 된다.소련 영토가 워낙 크고 각 지역 마다 양익 포위하면서 가야 했으므로 수가 아주 많이 필요했다.프랑스에 투입되었던 전력의 2배를 늘려야 했다.독일군은 전차들을 모두 긁어 모아 3500여대를 마련하게 된다.이래도 부족했다.원래는 크게 크게 싸먹어야 했지만 이러기에 수가 부족하자 잘게 나누어 양익 포위 규모를 잘게 쪼개야 했다.소련은 경전차 T-26 17000대, 중전차 600대 ,T-34 1000여대가 있었다.

소련 전차는 양은 많았으나 부품이 많이 부족했다.운용을 하다보면 정비가 원할히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게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숙련된 정비병은 부족했고 부품 유통도 거의 붕괴 수준이였다.독일군 전차도 문제가 있었다.3호 전차가 주력이고 최신인 4호 전차는 부족했다.3호 전차는 소련의 중전차를 상대하기 역부족이였다.그나마 수가 부족해 체코제 전차를 긁어 모아 투입하게 된다.체코 전차가 전체 독일 전차의 25%정도였다.하지만 독일은 소련에 비해 압도적 실전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군은 보급도 애로 사항이였다.광대한 기동전을 수행하려면 보급이 필수고 이 보급품을 나르려면 트럭이 무지막지하게 필요했다.이 트럭들을 민간에서 징발하다보니 프랑스를 위시해서 여러나라의 트럭들이 혼재되어 있었다.모델 연식 이런 거로 다 따지면 거의 3000여종이였다고 한다.보급의 중심은 기갑부대에 집중된다.보병은 차량이 없이 기갑부대의 속도를 따라가야 했다.반궤도 장갑차도 만들고 말도 동원하면서 속도를 맞추게 된다.병력도 문제였다.부족한 병력을 신병이 채우고 있었고 이들은 숙련된 병사가 아니였다.기초군사훈련이 원래 4개월이였으나 이걸 2개월로 줄이며 병력을 갈아넣게 된다.포병은 소련이 수적으로 완전 압도하고 있었다.독일 장교들은 포병보다 슈투카같은 폭격기가 더 효용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독일은 석유도 부족했다.독일은 프랑스를 점령하고 프랑스가 가지고 있던 석유를 접수하게 된다.독일은 소련과 전쟁이 나면 1달 석유 소요량을 80에서 100만톤으로 추산하게 된다.프랑스 보유 석유로 1개월 정도 버틸 수 있었다.독일은 루마니아 유전을 통해 석유를 공급받고 상당수는 합성유로 대체하고 있었다.석유가 부족했지만 이걸 이탈리아에게도 줘야 했다.당시 기준으로 북아프리카에서는 석유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이 당시에는 중동에 이란에서 석유가 나왔지만 여긴 영국 땅이였다.독일이 계산해보니 지금 비축분이 한 3개월 즉 12주 정도로 나오게 된다.그러니까 독일은 빨리빨리 치고 나가면서 자원이 떨어지기 전 소련군 주력을 섬멸 소련의 항복을 받아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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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데리안은 2기갑집단 사령관이다.구데리안은 1차대전 당시 통신병과로 군생활을 하게 된다.여기서 정보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그 후 오스발트 루츠를 만나게 된다.루츠는 차량부대를 지휘하고 있었는데 루츠 밑 참모로 구데리안이 가게 된다.구데리안은 여기서 기갑전의 중요성을 내다보게 된다.[아흐퉁 판처]라는 기갑 관련 책을 내고 이 책은 많은 기갑병의 교과서가 된다.구데리안은 통신병과를 해서 독일군 전차 모두에 무전기를 넣어 전차들이 서로 통신하면서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한다.독일군 전차 1대는 약하지만 뭉쳐서 통신하며서 움직이니까 강할 수 있었다.루츠같은 과거 세력이 물러나면서 구데리안은 기갑전의 최고 고참이 된다.구데리안은 프랑스와 폴란드에서 기갑의 위력을 보여주고 상급대장으로 진급 2기갑집단을 맡게 된 것이다.거의 전차 1000여대를 지휘하게 된다.구데리안 문제는 독불장군이였다는 점이다.적이 많았다.부하를 다그치고 들들 볶아 피곤한 상사였고 다른 장군들과 사이도 나빴다.

1기갑집단 사령관은 클라이스트가 맡게 된다.구데리안의 상사로 프랑스전 당시에 기갑에 대해 반신반의 했지만 성과를 보고 기갑전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클라이스트는 선대부터 우수한 장교를 배출한 명문가 출신이였다.뼛속 깊이 왕정을 지지한 사람이였다.히틀러가 잠시 쳐냈다가 장교가 부족하니 다시 불러들인 인물이였다.유고슬로비아 전선에서 기갑부대로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게 된다.클라이스트는 귀족이라서 명예를 중시했다.소련 침공 당시 소련인민들을 굉장히 잘대해 주었다고 한다.소련인에게 잘못하는 독일군이 있으면 엄정 처벌을 했다고 한다.소련인 중에 클라이스트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이 양반은 나치를 싫어했지만 군인이라는 명예로 독소전에 참가하게 된다.

호트는 3기갑집단군 사령관이다.호트는 새로운 거 배우는데 주저함이 없었다.구데리안 기갑전을 보자 거부감을 느낀 지휘관도 있었는데 호트는 쉽게 받아들일 정도로 유연한 사고를 가졌다.구데리안과는 다르게 덕장이였다.부하들에게 신망이 투텁고 다른 장교들의 평판도 좋았다.호트 밑에는 7기갑사단장 롬멜이 있었다.롬멜은 캐릭터가 성깔이 있었는데 이런 부하까지 품을 수 있는 장수였다.호트는 볼셰비키와 유대인을 없애기 위한 성전에 동의하고 있었다.이것은 호트가 가지는 생각만이 아니였다.대다수 독일 장교들이 호트와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4기갑집단 사령관은 회프너였다.회프너는 나치를 굉장히 싫어했다.나중에 히틀러 암살사건에 까지 관여하게 된다.

4개의 기갑집단 사령관은 저마다의 개성이 있었다.그래도 이 중에 구데리안과 호트는 작전 개념이 서로 통했다.승진 속도 마저 똑같았다.혹자는 구데리안이 기갑전에 뛰어나다고 하지만 호트도 이에 못지 않았다.오히려 구데리안보다 낫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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