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이 소련을 치는데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소련의 땅이 너무 넓었다.독일 기갑부대가 재정비 없이 작전 할 수 있는 거리는 400km 인데 소련은 여기를 뛰어넘고 있었다.소련의 길도 문제였다.도로 자체도 듬성듬성 있고 포장 상태가 엉망이였다.철도 역시 사정은 좋지 않았다.독일 철도와 소련 철도는 서로 폭이 달랐다.기차의 폭을 가변으로 조정하게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이렇게 움직이게 만들면 내구성이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운송 수단으로 가장 심플한 방법은 말이였다.상황이 이렇지만 독일 군부는 여태까지 잘해왔다며 앞으로도 잘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었다.





소련영토를 생각할 때 평탄한 평지만 있을 꺼라 생각하면 오산이다.강,습지,언덕,호수 등 자연 장애물이 많았다.특히 프라퍄트 습지는 아얘 대군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였다.이곳에 파르티잔이 소수 기거하면서 나치에 저항하는 세력이 근거지로 삼게 된다.거길 지나면 드네프르 강 같은 자연 장애물을 또 만나게 된다.과거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할 때 길이 있는데 독일 역시 이 침투로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남부는 더 힘들었다.루블린 리바우 이쪽은 1차대전 브루실로프 공세가 펼쳐질 정도로 어려운 전선이 앞에 버티고 있다.그다음 현재의 우크라이나로 들어가야 했다.우크라이나에서 남쪽의 가장 큰 목표인 돈바스에 가야 했다.너무 땅이 넓어서 한번에 가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프랑스를 먹을 때 처럼 적을 양익포위로 포켓에 가두고 바둑돌 따먹듯이 적을 잡아야 했다.최대로 진격할 때마다 진격로에 저항하는 적을 감싸서 바둑돌처럼 드러내고 또 다시 양익을 벌리고 적을 감싸서 포위 섬멸하고 이런식으로 계속 하면서 전진해야 했다.




독일은 양익포위를 하기 위해 빠른 기동전이 필요했다. 4개 기갑집단군을 만들고 북부 중부 남부를 동시에 진격하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커다란 문제가 생긴다.무솔리니가 그리스를 침공하면서 남부에 구멍이 생기게 된다.형님의 삽질에 히틀러는 독일 12군을 그리스 쪽으로 돌리면서 남쪽 양익 포위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중부만 노리고 남부는 포기하면 병력을 집중할 수 있고 좋았겠지만 히틀러로써는 남부는 뺄 수 없었다.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와 돈바스의 자원지대는 앞으로 펼쳐질 전쟁에 대비해 꼭 확보해야 했다.소련은 전방에 부대를 깔아놓고 전선을 길게 가져가고 있었다.들어오면 광할한 영토를 이용 들어오는 적을 야금야금 갈아먹겠다는 전략으로 나서게 된다.






독일은 소련군에 대해 정보가 부족했다.독일은 프랑스에는 첩보 자산이 많았으나 소련은 아얘 첩보할 생각을 등한시 했다.그나마 있는 정보망도 한 곳에 중앙 통제가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관리하고 있다보니 큰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독일은 소련이 인구가 많으니 보병 전력은 막강하겠구나 막연히 생각한다.하지만 소련은 1930년대 부터 군대를 기계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독일은 핀란드와의 졸전,일본과의 전투에서 화염병에 작살나는 탱크이런 것만 보고 소련군의 전력을 완전히 깔보고 있었다.독일은 한 한달 1차 진격으로 적 절반 깨고 2차 진격으로 소련군 한 번 두들기면 소련은 항복할 것이라 생각한다.독일이 너무 방심했다 생각할 수 있지만 미국이나 영국도 독일과 소련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면 독일 수뇌부와 마찬가지로 소련이 쉽게 무너질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소련 내부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소련은 농장을 집단화하고 주민들을 강제 이주를 시키며 내부의 불만이 커진 상태였다.대기근까지 발생 수배만이 아사당하기도 한다.스탈린이 국민들을 완전히 강압적으로 통치하고 있었다.히틀러가 보기에는 이거 내가 한번만 땅 때리면 그대로 소련이라는 집은 무너질 것이라 보게 된다.








히틀러는 1940년 12월 18일 총통지령 21호를 발령하고 바르바로사 작전이라는 소련 침공 작전을 개시하게 된다.바르바로사는 과거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다.바르바로사는 외모적으로 붉은 수염을 가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였다.1189년 십자군 원정에 몸소 출정하게 된다.1년후 허망하게 강에 빠져 익사하고 만다.이 후 그는 수호신이 된다.독일인들 사이에서 바르바로사가 익사한게 아니라 살아있다는 것이다.깊은 숲에 잠자다가 독일이 위기에 빠지면 그 때 잠에 깨서 우리를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확산된다.이전 역사를 보면 나폴레옹은 우세한 전력에도 러시아 원정에 실패했다.그 트라우마는 독일인에게도 있었다.소련 침공에 대해 괴벨스는 공산당과 유태인을 척결해야 할 대상으로 정해서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작전명을 바르바로사라는 수호신을 끌어들임으로써 온 우주가 우리 나치 독일을 도와줄 것이라며 독일인들을 독려하게 된다.
'역전다방 > 독소전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941년 6월 22일 (0) | 2026.03.05 |
|---|---|
| 독일의 소련 침공 준비 (0) | 2026.02.22 |
| 스탈린의 오판 (0) | 2026.02.22 |
| 주코프 성장과 관동군 (0) | 2026.02.21 |
| 할힌골(할하강) 전투 (0) | 2026.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