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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독소전쟁

스탈린의 오판

by senamu 2026.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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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은 독일이 지금은 침공 안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설령 침공한다해도 1943년 이후나 될 것이라 판단한다.혹시 독일과 소련간을 이간질 시키려는 영국의 가짜 정보가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다.영국이 본토 항공전을 통해 독일과 싸우면서 위험했고 여기에 독일의 수뇌부인 루돌프 헤스가 영국으로 날아가자 이런 의심에 불을 지피게 된다.소련은 첩보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보망을 여기저기 갖추고 있었다.헝가리나 일본쪽 첩자들에게도 독일 침공 징후가 있다는 시그널이 계속 오고 있었다.일본쪽 첩보원 조르게는 독일과 러시아 혼혈아로 마치 나치 당원인 것처럼 위장해 첩보활동을 하고 있었다.조르게는 여성에게 제비처럼 접근 남편의 정보를 빼내는 귀재였다.조르게 역시 독일이 침공할 것이라는 정보를 주나 스탈린은 난봉꾼 조르게 라며 한 귀로 정보를 흘린다.더 한 일도 일어난다.정보국장이 자꾸 독일이 침공할 것 같다고 하니 왜 자꾸 영국 역정보에 당하냐며 정보국장을 바꿔버린다.스탈린 생각엔는 1차대전 영국과 프랑스 도왔다가 제정 러시아가 무너졌고 공산당이 집권했는데 괜히 영국 정보부의 계책에 휘말려 독일과 싸우면 공산당이 무너지는 거 아니냐며 우려하게 된다.

독일 주재 소련대사가 독일이 침공할 것이라 보고를 올리나 엔카베데 총수 베라야는 스탈린 각하의 예견 답게 독일은 침공하지 않을 것이며 침공한다는 것은 서방국가의 역정보라며 스탈린에게 듣기 좋은 아부를 하게 된다.뼈도 못추리는 침공 징후는 또 나온다.1941년 6월 21일 그러니까 독일 침공 하루전 독일 병사 3명이 소련 국경으로 탈영한다.이 중 한 명이 리스코프였는데 이 사람은 공산당 추종자였다.독일이 소련을 침공한다고 알려준다.이 보고는 스탈린에게 올라가고 스탈린은 적의 역정보 계략이라며 총살 명령을 내리게 된다.다음날 독일군이 침공하면서 총살은 취소된다.

1941년 일본과 소련은 서로 중립 조약을 맺게 된다.이 조약도 스탈린에게는 독일이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게 된다.일본은 1931년 만주 사변 이후 영국과 미국의 제재를 받게 된다.일본이 이 당시까지 아시아에서 성장한 이유는 영미의 힘이 컸다.일본은 이 상황을 타개해야 했다.독일과 방공협정을 맺게 된다.그리고 1년 후에 이탈리아와 관계를 맺는다.이 후에 소련과 할힌골 전투가 벌어져 국경 문제로 다투다가 독일이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자 일본은 고민에 빠진다.소련의 공산주의도 문제였고 아직 국경에서 으르렁 대고 있어서 어떻게 할지 고민한다.일본은 외교전을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가져오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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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외무장관 마츠오카가 나서게 된다.마츠오카는 독일과 소련을 중재하며 세계에서 센터로 오를 꿈을 꾸게 된다.독일 외무 장관리벤트로프도 그런 꿈을 꿨으나 이 때는 스탈린이 누가 이길지 모른다며 간을 보는 터였다.마츠오카는 추축국 동맹 후속 조치를 위해 독일로 향하고 가기 전 모스크바를 들르게 된다.여기서 일단 일소중립조약에 대해 합의하고 부푼 꿈을 앉고 로마로 달려간다.무솔리니를 만나고 최종으로 베를린에서 히틀러를 만나게 된다.마츠오카는 4국 동맹을 성사시킬 수 있다며 기대에 부풀었으나 히틀러는 다른 얘기를 하게 된다.히틀러는 일본이 미국을 치면 우리가 도와 줄 수 있다는 말만 하게 된다.마츠오카는 꺼림칙하며 소련과 조약을 맺게 된다.스탈린 입장에서는 추축국 일원인 일본이 불가침 조약을 맺은 것은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증거로 인식하게 된다.독일이 소련을 치려면 추축국 일본과 상의를 했을 것이고 소련 동쪽을 일본으로 하여금 괴롭히고 독일이 침공하는 시나리오를 머리 속에 그리게 된다.그런 시나리오가 1941년 4월 13일 일본과의 중립조약으로 깨지게 된다.히틀러는 이런 소식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된다.히틀러는 일본 도움 없어도 소련 정도는 한 주먹 꺼리라고 판단하고 있었다.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 오히려 일본 정부는 이게 뭔 일이냐며 더 당황한다.

독일의 침공에 대비할 소련 장군들 중에 상징적 장수는 부됸니 였다.코사크 지역 출신으로 기병대를 많이 보고 자랐고 적백내전 시기에 전설의 제 1기병대 초대 사령관이 된다.1기병대는 상징적 모자인 부됴놉카(프루젠카)를 썼다.독일의 피켈하우베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오해가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독일 모자는 철제인데 추운 러시아에서 쓰면 그대로 머리가 얼어 붙을 수 있었다.부됸니는 스탈린과도 친했다.1938년 스탈린이 군 숙청을 대대적 단행한 시기 엔카베데 요원이 부됸니에게 들이 닥치게 된다.부됸니는 요원들을 완력으로 제압 스탈린에게 전화를 건다.스탈린은 오해였다며 요원들을 바로 철수 시킨다.그만큼 스탈린과 부됸니는 절친이였다.하지만 부됸니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기병에 대한 향수로 기병의 역할을 기갑부대가 대체하는 것에 매우 거북해 하고 있었다.결국 패배를 거듭하며 1942년 현직에서 물러나 상징적 존재가 된다.천수를 누리다가 1973년 90세로 사망하게 된다.

티모센코는 부됸니의 후배이나 주코프의 선배였다.우크라이나 코사크 출신이였다.기병대원으로 탁월한 능력을 선보이게 된다.이 양반은 부됸니와는 다르게 기갑전의 중요성을 깨닫는 최초의 소련 장교 중 한명이였다.소련이 과거 적백내전에서 현대전을 수행할 수 있게 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핀란드와 겨울전쟁 때 총사령관으로 잠깐 나락으로 갔으나 부활한다.티모센코는 서방에서도 유명했다.소련을 이끄는 장성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1942~43년 대 되면서 주코프,코네프,로코솝스키같은 후배들에 밀리며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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