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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독소전쟁

주코프 성장과 관동군

by senamu 2026.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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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군 23사단은 할하강 전투로 궤멸 상태가 된다.독소불가침조약이 구세주가 된다.그냥 패해서 빠지면 상당히 모양이 좋지 않았지만 이 조약이 명분이 된다.일본군 지휘부는 전투를 신속히 종료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사실상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던 관동군은 복수를 다짐하며 게이지를 채우게 된다.복수의 칼은 육군 참모 본부가 제동을 건다.충분히 소련에게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었다며 뜯어 말린다.이렇게 되자 할하강 전투 패전에 대한 책임은 붕뜨게 된다.결국 할하강에서 사고친 관동군 참모들이 아무 처벌도 없이 태평양전쟁까지 수행하게 된다.

일본은 할하강 전투로 소련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물론 소련 피해도 컸지만 더 펀치를 날리면 뼈도 못 추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미국 전쟁 역사가 앨빈 쿡스는 이 전투로 일본은 소련 침공을 거두고 태평양으로 눈을 돌렸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미국이 소련보다는 약한 상대로 본 것이다.기싸움에서 이긴 소련은 이 후 펼쳐질 독소전쟁에서 일본 걱정 없이 독일을 상대할 수 있게 된다.소련이 독소전에 승리한 것은 일본이 동쪽에서 진격을 안해 양면전을 피한 이유도 한 몫하게 된다.소련군이 이겼다해도 여기를 냅둘 수는 없었다.방어진을 갖추게 되고 일본군 역시 소련이 언제 침공할지 모른다며 관동군을 이 지역에 계속 주둔 시키게 된다.결국 힘의 균형이 맞추어 지게 된다.

할하강 전투의 영웅 주코프는 승승장구하게 된다.주코프는 나는 할 수 있어 하며 자신감이 만땅이 된다.일본과의 강화 협상을 위해 5개월 정도 여기에 더 머물게 된다.이 당시가 핀란드와 소련이 겨울전쟁을 벌인 시기였다.통나무로 구축된 핀란드 방어라인을 뚫지 못해 여러 장군들이 줄줄이 목아지 였는데 주코프는 이 소나기를 피하게 된 것이다.주코프는 소비에트 연방 영웅 훈장을 받게 된다.전 인민의 영웅이 되더니 키에프특별군관구 하나를 맡게 되고 나중에 1941년초 총참모장까지 오르게 된다.

주코프가 소련군 총참모장이 된 거는 훈련 덕분이였다.독일군이 프랑스를 제압하자 소련은 부랴부랴 독일을 가상 적으로 하는 모의 훈련을 실시하게 된다.주코프는 여기서 가상의 독일군을 맡아서 훈련에 참여한다.2번의 모의 훈련이 있었는데 주코프의 가상 독일이 이기게 된다.주코프의 가상 독일군을 압도적 전력으로 가정했기 때문에 뭐 이럴 수 있겠다 싶었다. 다음 번에는 주코프가 독일군이 아닌 소련군으로 역할을 바꾸게 된다.그런데 여기서도 주코프는 가상의 독일군을 제압하게 된다.스탈린은 이 훈련 결과를 받고 소련군 방어진을 구축한 메레츠코프를 해임하고 주코프를 소련군 총참모장으로 앉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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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코프는 1930년대까지만 해도 동기에 비해 승진이 더뎠다.절친 로코솝스키가 위에서 많이 끌어 당기며 주코프에게 길을 열어준다.이제는 주코프가 로코솝스키를 넘어서게 된다.주코프는 소련군 방어진을 보더니 난감하게 된다.이전 국경 보다 훨씬 국경이 서쪽으로 이동해 있었다.이 얘기는 독일과 국경이 가깝다는 거고 기존에 구축했던 방어선이 전혀 쓸모가 없게 된다는 뜻이였다.전 참모총장 메레츠코프는 전방에는 극소수 병력만 놓고 감시만 하자 했지만 스탈린이 이를 거부한다.피같이 얻은 땅 한 치도 적에게 내줄 수 없다는 것이다.주코프는 이런 스탈린 뜻을 알고 마냥 대들 수는 없었다.요새를 보강해서 독일군 지연을 막고 뒤에 배치된 병력을 필요한 곳에 배급할 수 있게 병력을 배치하게 된다.

주코프의 군배치에 대해 훗날 쇄빙선 학설이 나오게 된다.소련 정보기관 핵심 요원이였던 레준은 정보요원의 수명이 다하자 1978년 영국으로 망명한다.그리고 소련의 치부를 드러낸 책을 출판하고 여기서 쇄빙선이라는게 나온다.독일이 프랑스를 낫질씩 공격으로 쌈싸먹듯 소련역시 남부 키예프 쪽에 힘을 실어 선제공격을 해려 했다는 것이다.여러 증거를 댄다.소련의 전차 중 궤도가 없는 게 있는데 이건 잘 발달된 서유럽 도로를 달리기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소련이 붕괴되고 옐친이 집권하자 이 쇄빙설 이론은 점점 퍼져나가게 된다.이 이론대로 라면 히틀러는 스탈린에게 칼을 꽂은 것이 아니라 독일이 소련의 서유럽 기독교 국가들을 방어하기 위해 예방전쟁을 펼쳤다는 얘기가 된다.옐친 시절에는 냉전 시대 소련의 모든 것을 부정해야 했기에 이런 학설이 힘을 얻게 된다.

지금 역사학계에서는 소련이 가지는 전략적 옵션 중 하나라는게 정설이다.여러 대비책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소련이 독일을 침공한다는 작전은 있었으나 이 문서에 스탈린의 서명 흔적은 없었다.침공하려면 대규모 병력을 집결 시켜야 하는데 스탈린은 이를 매우 염려했다.스탈린은 괜히 독일을 자극해서 정말 침공하면 어쩌냐는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1차대전을 보면 한 놈이 동원령 선포하니까 이를 본 다른 놈도 동원령을 내리고 이에 따라 또 대응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이러났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였다.독일은 1차대전 때 서부전선과 러시아 양면전을 일으켜 패망했다.스탈린은 그런 전례가 있는데 또 같은 실수를 독일이 저지를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소련만 가만히 있으면 독일은 침공안 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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