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련은 핀란드와 겨울 전쟁 후 대대적 군 개혁에 들어가게 된다.소련은 군사전문가인 장교와 정치위원을 한 패키지로 엮어서 군사를 운영했다.이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장교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1940년 10월 제정 러시아 시절 장교들이 누렸던 특권을 다시 주면서 이들을 달래게 된다.숙청도 진행한다.겨울전쟁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했다.스탈린의 측극 보로실로프가 해임된다.아기돼지 요리를 곁들인 식사자리에서 핀란드와의 전쟁에 대해 스탈린의 문책이 있자 보로실로프는 아기 돼지 살점을 탁 내려 놓으며 자를 박차고 나가게 된다.부됸니도 명예만 남고 실권을 빼앗게 된다.구세대가 가고 주고프 같은 신진 세력이 소련군에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된다.



히틀러는 소련의 진격에 띠겁게 생각하고 있었다.폴란드 분할 시에도 별 힘을 안들이고 숟가락만 얹고 상대적으로 나머지 영토도 야금야금 먹는게 꼴보기 싫었다.소련은 영토가 늘어나서 기뻐해야 하지만 마냥 좋을 수는 없었다.계속해서 독일과 국경을 마주하는 일이 많아 진 것이다.







소련의 서쪽이 독일의 국경이 가까워지는 동안 소련 동쪽은 일본의 만주국과 충돌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었다.소련을 등에 엎은 몽골과 일본의 만주국은 1930년대 말 계속해서 국경에서 티격티격 대며 군사적 긴장이 높아진다.여기서 나중에 할하강 전투가 벌어지는데 이 전투에서 2차대전 소련 영웅 주코프가 처음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게 된다.2차대전 동안 소련이 독일과 치고 받는 동안 만주 주둔 일본 관동군은 동쪽에서 아무 힘도 쓰지 않게 된다.독일은 서쪽에서 일본은 동쪽에서 양면에서 치고 들어갔으면 역사는 바뀔 수 있었을 지 모른다.하지만 관동군은 대치만 하고 있다가 소련이 독일 제압 후 만주로 쏟아져 들어오자 펀치 한 번 맞고 그대로 붕괴되고 결국 북한까지 들어오게 된다.









할하강 주변은 서로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지역이였다.여기는 초원이라서 경계로 할만한 뭐가 없었다.과거 유목민들은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제사를 지냈다.돌무더기를 오보라 부르고 여기 오보 중에 하나가 노모한 이였다. 놈은 불교의 법 이고 한은 칸 즉 왕이였다.즉 불교법의 왕인 성스러운 오보였다.이 오보가 몽골과 만주국의 국경이였다.이 오보 이름을 따서 노모한 전투라 부르게 된다.일본은 노모한 전투를 사건이라 부른다.일본이 전투를 사건으로 치부하는 경우는 많았다.만주사변,지나사변 등 이 모두가 전투인데 사건으로 부른다.이유는 외부적 이미지를 중시해서였다.일본은 전쟁을 하지 않는 나라라라는 것을 각인 시킨 것이다.미국은 중립법이라고 해서 전쟁하는 나라에 대해 물자를 대주지 않고 있었다.일본이 여러 전투를 사건이라 포장하며 미국의 도움을 받게 된다.일본은 이 시기 많은 물자와 자원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었다.


만주옆에 몽골은 청나라 시대 청나라 영토였으나 이 둘이 분리되어 내몽골과 외몽골이 된다.소련은 외몽골을 도와서 나라를 세우게 하는데 힘을 보태게 된다.일본은 만주국이라는 괴로 정부를 세우고 대륙으로 힘을 투사하고 있었다.그럴러면 몽골을 거쳐 러시아로 들어가야 했다.소련은 이런 일본의 야심을 제어할 필요가 있었다.외몽골에 지원을 해주면서 일본에 견제구를 날리고 있었다.









1928년 처이발상은 외몽골을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원래는 승려였는데 갑자기 공산사상에 물들더니 몽골의 스탈린 처럼 강력한 권력을 쥐게 된다.1930년대 들어서는 스탈린에 더 열광하게 된다.소련을 보면서 여러 혁신적 개혁을 단행하게 된다.사상교육을 강화하고 공산세력에 저항하는 세력에 칼을 휘두르게 된다.지식 계층이라 여겨지는 티베트 불교 라마승 수천명을 처단하게 된다.그 다음 사회 곳곳에서 공산당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제거한다.스탈린은 몽골의 공산화를 보면서 기뻐하며 보태쓰라며 군사력을 지원해 주게 된다.일본 역시 관동군에 힘을 주고 있었다.만주국이 잘되어야 일본이 점점 더 커질 수 있었다.






할하강 주변 국경선이 문제가 된다.소련은 소련대로 일본은 일본대로 서로 더 많은 영토를 가지기 위해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1930년대 초에는 외교적 노력으로 풀려 했으나 서로의 입장 차이는 컸다.양쪽은 국경선에 군사력을 대거 배치하며 서로 순찰을 하게 된다.국경수비대 끼리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었다.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은 만주지역 관동군을 대폭 증가시키게 된다.소련은 해보자는 거냐 하며 이에 맞불을 놓게 된다.극동군을 30개 사단으로 늘리며 일본 관동군에 대비하고 있었다.양측 군이 이렇게 많아지다 보니 크고 작은 충돌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일본에게 소련은 항상 주적이였다.러일전쟁 때는 러시아였고 이를 소련이 계승하자 적대적 관계는 계속되게 된다.소련의 사상도 문제 였다.1920년대 일본에도 공산당이 결성되며 군주제를 없애고 토지 개혁을 하자며 세를 불리고 있었다.천왕의 나라 일본에서 이는 좌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일본은 우리 국민들이 살기 위해 독일의 라벤스라움같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그 공간에 시베리아가 포함되어 있었다.만몽(만주와 몽골)생명선도 내세운다.여기가 우리 명줄인데 이곳을 공산화된 소련이 노리고 있다며 여론전을 펼치게 된다.일본육군은 중일 전쟁이 터지자 활약하고 있고 만주에 있는 자칭 엘리트라 주장하는 관동군도 뭔가를 해야 했다.자신들의 존재감을 키우려면 소련과 국경분쟁을 일으켜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일본과 소련의 군사적 긴장도가 높아지고 장고봉이라는 지역에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장고봉은 일본 소련 모두가 서로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있었다.소련이 먼저 움직인다.장고봉에 병력을 깔아놓은 것이다.일본 군부는 상황을 지켜보라 하나 여기 주둔 일본 관동군 생각은 달랐다.만주사변을 일으켜 성공하자 기고만장해 있었다.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며 일본 육군 참모 명령을 쓰레기통에 버린 것이다.1938년 7월 13일 일본헌병대가 소련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일본 정부는 사태 수습을 위해 소련과 교섭을 진행하나 실패한다.관동군은 이건 기회다라며 사토 고토쿠가 야간 기습을 통해 장군봉에 소련군을 공격하여 소련군을 몰아내게 된다.



소련은 일본군이 보병으로 장군봉을 먹자 더 큰 힘으로 일본군을 격파시킬 생각을 하게 된다.장갑차와 항공기 그리고 보병 3000여명을 투입하여 장군봉을 두들기게 된다.폭격을 두만강 일 때 까지 확장하면서 여기 있는 조선인들은 피해를 입게 된다.상황은 좋지 않았다.장군봉 가는 길이 진창이 되면서 전차가 올라가지 못하게 된다.일본군 19사단은 여기를 끝까지 사수하면서 전선은 고착된다.





1938년 8월 11일 모스크바에서 정전협정을 체결하게 된다.양쪽 합쳐서 거의 2만여명이 투입되고 피해도 컸다.소련군 전차 피해도 컸다.96대가 격파되고 항공기 3대도 손실처리 된다.일본군 참모부는 소련 무섭다며 전면전 벌이면 큰일나겠다고 생각한다.관동군은 반대 생각을 가진다.관동군은 화염병으로 소련 전차를 상대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던 것이다.야구 잘하는 나라 답게 화염병을 잘던져 소련군 전차에 스트라이크를 날리고 이게 불 붙으면서 소련 전차가 피해를 입은 것이다.관동군은 해볼만하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역전다방 > 독소전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할힌골(할하강) 전투 (0) | 2026.02.18 |
|---|---|
| 소련 57군단장 주코프 (0) | 2026.02.18 |
| 크레타섬 공수 작전 (0) | 2026.02.16 |
| 나치 그리스 본토 점령 (0) | 2026.02.16 |
| 컴퍼스 작전 (0) | 2026.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