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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독소전쟁

루마니아 오데사 포위전

by senamu 2026.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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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육군이 소련군을 밀어 붙인 것은 루프트파페의 힘이 컸다.독일 공군은 장거리 공격에는 무리가 있었다.육군을 지원하려면 비행장을 점점 앞으로 댕겨서 건설을 해야 했지만 여의치 않게 된다.부품 수급도 문제가 생겨 보급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1941년 8월말 독일 공군 힘은 빠지고 있었다.반면 소련은 홈그라운드였다.항공기가 독일 2배 넘는 수가 확보되면서 독일군의 진격은 더디게 된다.

독일군을 따라 들어온 동맹군 역시 힘이 빠지고 있었다.헝가리군은 얼마 오지도 않았는데 퍼지게 되고 죽는 소리를 하게 된다.루마니아는 33만의 대군을 파병하며 독일군을 돕게 된다.루마니아는 전진하는 독일군의 우측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탈리아군도 독일의 남부집단군에 가담하게 된다.무솔리니는 간을 보다가 1941년 6월 30일이 되서야 숟가락을 얹게다며 참전을 선언한다.독일군은 이탈리아군의 졸전을 소문으로 듣고 눈으로 보면서 중요한 임무를 맡기지 않게 된다.독일 장군들은 이탈리아군에 들어가는 밥값에 대해 아까워하고 있었다.무솔리니는 한술 더 떠 떡고물을 더 얻기 위해 1942년에는 파견군 규모를 20만 늘리겠다고 말하게 된다.무솔리니는 우만 포위전에 승리 후 히틀러와 함께 방문하면서 선전효과까지 누리게 된다.이탈리아 군인들은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다.소련 남자들이 전쟁터로 나가 죽어서 여자가 남아돌자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소련에 그냥 눌러 사는 일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루마니아 참전 목적은 명확했다.독일과 함께 진격하면서 소련에게 뺏긴 영토 수복이 우선순위였다.그 후에 더 치고 들어가 발칸과 흑해에 이권을 차지하려들게 된다.루마니아는 흑해 연안을 따라 진격하면서 독일 남부집단군을 보호하는 임무를 띠게 된다.1941년 7월말 히틀러는 루마니아 지도자 안토네스쿠를 만나서 오데사를 함락시킬 것을 요청하게 된다.루마니아군 정도면 오데사 공략에 무리가 없을 것이라 판단한다.

루마니아군은 오데사 정도는 그냥 한주먹 꺼리라며 자신감을 보인다.병력은 소련군의 6배였고 포병 규모도 5배였다.소련군은 2단으로 방어망을 구축 극렬히 저항하게 된다.한달도 안되어 루마니아는 3만여명의 병력 손실을 보게 된다.참담한 결과였다.중포가 없었고 기계화되지 않은게 문제였다.1941년 8월 28일 심기일전하여 보병 돌격을 감행한다.이리도 해보고 저리도 해보았지만 소련군은 뚫리지 않게 된다.피해는 더 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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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데사는 항구도시였다.바다로 부터 병력과 물자를 보급받을 수 있는 곳이였다.이곳을 지키는 소련군 사단은 2개 뿐이였지만 노동자,포병,수병 모두 동원되어 루마니아군에 저항하게 된다.게릴라전도 곳곳에서 벌이게 된다.파블리첸코라는 여성 저격수는 볼셰비키의 발키리라 불리는 명사수였다.숨어서 180여명의 적군을 사살하게 된다.해군육전대는 원래 해군기지를 보호하는 경비병이였는데 이들 역시 전투에 참가하게 된다.총알이 떨어지면 백병전도 불사하는 무서운 부대였다.

독일군은 루마니아군에게 통큰 지원을 하게 되고 1941년 9월 11일 공세를 재개하게 된다.루마니아군은 힘을 받아 오데사 항만 근처까지 진격하게 된다.소련군 역시 마지막 힘을 짜내 루마니아군을 막게 된다.루마니아군은 흠칫 놀라 10km 정도 후퇴하게 된다.돌파구는 다른데서 터진다.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이 위기에 빠진 것이다.소련군은 병력을 철수시켜 크림반도로 이동시키게 된다.3달 동안의 오데사 전투에서 루마니아는 전체 병력의 1/3인 10만여명의 손실을 보게 된다.루마니아 4군은 거의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루마니아는 주판을 두들기게 된다.같이 참여한 헝가리는 퍼져서 쉬고 있고 손실도 루마니아의 1/5 이였다.루마니아는 더 깊숙히 개입했다가 개박살나겠다며 발을 슬슬 빼게 된다.

오데사 포위전은 후에 펼쳐질 스탈린 그라드 전투의 예고편이였다.오데사 시내 곳곳을 요새화 했고 흑해를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병력이 공급시켜 저항한 것이다.오데사는 우리나라로 치면 부산 같은 곳이다.드네프르 강 끝에 있고 중요한 항구도시다.우리나라가 6.25 때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 반격의 디딤돌로 삼았듯 오데사 역시 이런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수십년이 흐른 지금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많이 언급되는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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