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은 됭케르크 철수하면서 거의 10개 사단을 무장시킬수 있는 엄청난 장비를 두고 온다.영국 본토에는 제대로 된 사단이 2개 정도 뿐이였다.이집트에 영국군은 본국의 육상 병력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다.7기갑사단과 부족한 분은 인도 사단으로 보충하고 있었다.이집트는 절호의 기회로 여긴다.리비아에 이탈리아군 20만이 출격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이집트 진격은 완전히 무솔리니 독자 결정이였다.히틀러는 탐탁치 않아 했고 독일 발목이나 잡지마라며 방관하고 있었다.추축군은 어떤 조직적 플레이 보다 서로의 이익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독일 장교들은 우려하고 있었다.1차대전부터 이탈리아의 졸전은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이탈리아군의 성과는 등급이 한참 낮은 원주민들과 싸워서 쟁취한 승리였다.독일 장교들은 과연 이탈리아가 잘 할 수 있을까 의심하고 있었다.







이탈리아는 그라치아니를 사령관으로 하게 된다.그는 이탈리아군을 이끌고 리비아 저항 운동가 오마르 무크타르와 싸운 인물이였다.그라치아니는 에티오피아에서도 활약하면서 사막 전투에 대한 경험을 어느 정도 가진 장군이였다.생긴것도 잘생겼다고 전해진다.이집트를 지키고 있던 영국군 장군은 웨이벌이였다.웨이벌은 1차대전 당시 2차 이프로 전투에서 한쪽 눈을 잃었다.의안을 끼고 군복무를 계속하게 된다.1차 대전 후 중동 지역에 주로 근무하게 된다.웨이벌 역시 이 지역 지리에 능통한 장군이였다.










이탈리아군은 전차 600여대 항공기는 400여대가 이 지역에 있었다.영국은 이에 한참 못 미치게 전차 60여대 항공기 200여대만 있었다.이탈리아 전차 수는 많았지만 문제가 많았다.너무 외관에만 치중해서 내실이 부족했다.경전차는 기관총 달린 양철통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고 중전차는 화력이 너무 약했다.내구성도 약했다.사막에 모래바람이 휩쓸고 지나가면 퍼지는 전차가 속출했다.이탈리아는 지중해성 기후로 날씨가 좋은 나라여서 사막의 극한 환경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나중에 중전차가 나오기는 하나 이 시기가 이탈리아 패망 직전에 개발된다.





이탈리아 마르코니는 무선 통신을 개발했다.그리고 미국으로 가서 사업을 하게 된다.무선통신의 종주국인 이탈리아는 전차에 무전기가 없었다.오토바이 탄 전령이 연락병 역할을 했다.실전 경험도 사막의 원주민 대상이 전부였다.영국은 실전 경험이 엄청났다.1차대전부터 잔뼈가 굵은 군대였다.항공기 운용 역시 영국이 앞서가고 있었다.항공 정찰을 잘했다.사막의 날씨에 대비해 엔진에 필터를 장착해 고장을 줄였다.영국군은 사막전을 할 만반의 준비가 된 것이다.영국군은 정보전도 한 수 위였다.이탈리아군의 통신을 감청 암호를 해독하며 적의 동태를 알고 있었다.




그라치아니는 이탈리아군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위에서 닥달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진격을 하게 된다.이탈리아군은 1940년 9월 13일 영국군을 치기위해 이집트로 진격한다.영국군은 후퇴를 거듭하고 이탈리아군은 시디바라니까지 확보하게 된다.이집트 영토 80km 까지 밀고 들어간 것이다.이는 영국군이 의도한 바였다.적을 깊숙히 끌어들여 섬멸할 작전을 세운 것이다.그라치아니는 보급의 문제로 이곳에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진격을 멈춘다.식량과 연료를 트리폴리에서 보급을 받아야 하는데 더 갔다가는 보급로가 차단될 우려가 있었다.




시디바라니는 고대부터 유명한 도시였다.거점을 세운다면 거의 다 사막이여서 이곳이 적합했다.이탈리아는 성과에 고무되어 승리의 길을 닦았다며 축배를 들고 있었다.하지만 완벽한 거점은 아니였다.쭉 이어지는 전선에 구멍이 많았다.연락도 서로 어려웠다.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병사들은 사막의 바람을 막느라 트럭으로 방벽을 세우는데 장교들은 텐트 안을 응접실로 꾸미고 있었다.일부 부대들은 닭이나 염소를 키우고 보급품 중에는 꼬냑과 포도주가 필수 였다.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영국은 독일은 전격전을 하는데 이탈리아는 눌러앉아 전쟁한다며 앉은뱅이 전쟁이라는 조롱을 하게 된다.










영국군은 당황한다.더 깊숙히 들어와야 하는데 안들어오고 캠핑을 즐기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 이였다.이탈리아도 나름 고충이 있었다.보급거리가 거의 1000km 였다.중간에 도시도 없고 뭔가 아무 것도 없었다.리비아에서 트럭이 한 8000대를 동원했는데 이게 부족했다.km 당 따지면 트럭 수는 택도 없는 수준이였다.여기에 트럭이 사막에서 퍼지면서 보급난은 심해진다.식수문제도 심각했다.이탈리아는 장교 조리병을 따로 둔다.이 조리병은 최소한 2가지 이상의 파스타를 할 수 있어야 했다.라면은 물 500ml 면 끓일 수 있지만 파스타는 1리터 정도의 물이 필요했다.빵도 새벽에 구워야 했다.지금도 이탈리아군의 보급품에 파스타는 필수이다.그만큼 먹는 것에 진심인 이탈리아였다.보급난에 시달리자 그라치아니는 노새라도 보내달라고 간청하게 된다.무솔리니는 뭘 얼마나 더 달라는 거야 하며 닥달하고 그라치아니는 3개월 후 12월 중순경에 전진하겠다고 마지못해 보고를 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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