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은 최신 기술을 선보인다.바로 레이더였다.해안가에 레이다를 촘촘히 배치한다.여기에 방공포,비행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적기가 출현하면 레이다에 걸리고 이 모든 정부가 중앙에 컨트롤 타워로 모였다.이 시간이 그 당시에 불과 40여초였다고 한다.중앙에서는 여성 오퍼레이터들이 적 전투기 움직임을 하나의 상황판에서 기록하게 된다.당시 레이더 성능이 좋지 않아 규모가 얼마인지 파악은 어려웠다.영국은 기다리다 공군기를 한꺼번에 모아 떼로 덤비는 전술을 쓰게 된다.





영국 공군은 중앙 통제를 통해 적기의 방향을 알 수가 있었다.독일의 폭격기 편대가 오면 먼저 폭격기를 호위하는 전투기부터 격추 시켰다.여러번 떼 지어 출격하며 독일의 공격을 막게 된다.독일 전투기가 항속거리 문제로 돌아가려 하면 또 이틈을 노려 폭격기를 두들기게 된다.독일 폭격기는 한 번 출격 때 마다 20~30%정도 손실이 나게 된다.1940년 7월~10월 까지 영국 전투기는 900여대 독일 공군은 1300여대의 전투기를 잃게 된다.영국은 전투기는 막 찍어내는데 조종사가 부족해지자 폴란드 의용군을 투입하면서 손실분을 만회하게 된다.독일 공군이 영국 공군에 밀린 것은 휴 다이딩이 만든 시스템 덕분이였다.다우딩은 프랑스가 독일에 넘어갈 때 이미 진 전쟁에 우리 공군을 투입하는 것은 자원 낭비라 주장했던 인물이다.다우딩은 선진 레이다 시스템과 영국의 방공망 체계를 만들고 통합 시스템을 만든 장본인이였다.






독일은 큰 착각에 빠지게 된다.공중전이 벌어지면 너무 어지러워 정확한 전과 보고가 어려웠다.조종사들이 돌아와서 격추된 전투기들이 많다고 부풀리는 경우가 많았다.영국도 이는 마찬가지였지만 독일이 더 심했다.독일 공군 정보 장교 슈미트는 한술 더 뜨고 있었다.희망적인 보고를 괴링에게 올린다.독일 전투기가 영국 전투기를 압도한다는 잘못된 신호를 계속 주게 된다.





독일은 계속된 낙관 보고에 고무된다.사령부에서 영국 공군기가 얼마나 남았을래나 주판을 두들기게 된다.공군 정보 참모 슈미트는 영국 공군기가 고갈되었다고 보고를 하게 된다.독일은 때가 왔다며 바지선을 동원 상륙작전인 바다사자 작전을 준비시키게 된다.










바다사자 작전을 진행하던중 대형 사건이 터지게 된다.영국도 독일 비행장에 대해 폭격을 시작한다.그러다가 일부 폭격기가 베를린으로 침투해 폭격하는 사건이 일어난다.히틀러는 영국 공군이 무너졌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냐며 대노한다.원래 순서라면 바다사자작전을 위해 해안을 더 때려야 하는데 이 사건으로 목표를 런던으로 바꾸게 된다.독일은 지금 런던을 때리면 영국의 얼마 남지 않은 전투기들이 모두 출격할 것이라 생각한다.그러면 영국 공군을 아얘 거덜낼 수 있겠다는 희망회로를 돌리게 된다.1940년 9월 7일 독일 공군은 주간에 런던을 폭격한다.영국 국민은 분개하며 항전의지를 불태우게 된다.독일 폭격 도중에 버킹검궁 근처에도 폭탄이 떨어지게 된다.처칠은 이를 대서특필할 것을 지시한다.서민들은 왕실도 우리와 똑같이 두들겨 맞고 있다며 더욱더 단합하게 된다.처칠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여기에 기름을 붓게 된다.







독일은 애초에 목표가 더욱 늘어나게 된다.차례대로 해안을 밀면서 뚝심있게 밀고 나가야 하는데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게 된다.당시 기술은 목표물을 정밀하게 칠 수 가 없었다.목표물 근처 민간인도 그냥 폭탄을 두들겨 맞게 된다.런던 폭격은 애초에 무리가 있는 작전이였다.호위기인 bf-109는 항속거리 문제로 조금 호위하다가 본진으로 돌아가야 했다.영국 전투기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독일 폭격기 사냥에 나서게 된다.폭격기 손실이 너무 커지자 독일은 주간 폭격을 하지 않고 야간 폭격으로 전환하게 된다.




독일은 영국을 폭격하면서 새로운 항법 시스템을 개발하게 된다.민항기 착륙 유도장치를 개선한 크니케바인을 만들게 된다.전파 발신국에서 목표를 딱 맞추고 전파를 쏘면 항공기는 이 전파를 따라 이동하게 된다.전파를 벗어나면 이상한 소리가 나고 정확히 가야만 연속음이 나게 되있다.이런 전파국이 2개 있으면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 있어서 독일 공군은 정확한 위치에 폭탄을 떨어 뜨릴 수 있었다.영국은 독일의 이런 시스템에 교란 전파를 쏴서 대응한다.그것도 약간만 방해해서 독일 공군이 잘못된 곳에 폭격하는 것을 눈치 못채게 한다.어떤 날은 끄기도 하고 이러면서 교묘히 독일 공군을 속이게 된다.












독일 공군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만 지금 공격을 빼는 것은 모양이 상당히 안좋았다.독일 공군이 갈리고 있다는 것을 히틀러도 눈치채게 된다.주간 폭격은 어림없었고 야간 폭격은 어쩔 수 없이 자존심 하나로 진행하게 된다. 시간은 흘러 10월이 되고 풍랑은 거세진다.대규모 상륙작전인 바다사자작전은 전격 취소 된다.독일은 공군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줄고 있었지만 영국전투기는 격파당하는 중에도 조금씩 늘고 있었다.생산량도 늘고 파일럿 양성 프로그램도 활발히 가동되고 있었다.베포와 괴링의 잘못된 보고가 사태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든다.히틀러는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 발을 빼게 된다.
















영국은 독일이 본토에 상륙할 것을 대비해 홈가드 즉 국민 방위대를 만들게 된다.정규군의 빈틈을 이들이 메우게 된다.기동성을 위해 롤러스케이트 타면서 기동 훈련도 하면서 전투의지를 다진다.그 수는 점점 불어 1940년 후반에는 150만까지 늘게 된다.이들의 무장은 미국이 담당하게 된다.1차대전 때 쓰던 구식 무기를 이들에게 준다.거의 아저씨들로 구성된 부대였다.도로도 순찰하고 폭격당할 때 마을 사람들을 안전하게 피신시킨다든지 여러 역할을 하게 된다.이 홈가드에 대한 애정은 아직도 계속된다.많은 드라마나 영화에 이들 활약상이 그려지고 있다.홈가드는 독일 상륙에 대비해 여러 아이디어도 내게 된다.그 중 무모한 작전도 있었다.독일 상륙할 때 석유 파이프 라인을 모조리 연다음 불지를 계획을 세우게 된다.











영국 국민의 구심점은 처칠이였다.처칠은 브이 사인을 시그니쳐 포즈로 내세운다.이게 근데 욕이였다.영국이 프랑스와 백년 전쟁 당시 프랑스군은 영국의 긴 활에 당했다.두 손가락으로 활을 쏘는 포즈로 이거는 활로 너희를 죽였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영국은 전쟁전 서민과 지배계층간에 괴리가 있었다.억양도 다르고 문화도 달랐다.처칠이 욕인지도 모르고 브이자를 날리자 옆에 보고 있던 서민 출신인 비서는 이를 지적해주고 처칠은 브이자 포즈를 손등이 보이게 하는 제스쳐로 바꾼다.이 에피소드가 보여주는 거는 처칠이 지배계층이건 서민이건 영국 국민의 단합을 강조했다는 사실이다.독일에게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었지만 영국은 처칠이라는 구심점으로 독일과의 본토 항공전에 승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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