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가 항복한 거에는 미국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1940년 루스벨트는 3선 도전을 하고 있었다.굳이 전쟁에 개입해 버리면 표가 날아갈 수도 있었다.문제는 프랑스가 너무 일찍 붕괴된 것이였다.유럽이 독일 손에 들어가고 영국마저 무너지면서 미국은 이를 위협으로 간주하게 된다.미군은 무기대여법까지는 아니지만 영국 해군과 협력하기로 한다.조금씩 전쟁에 발을 디디게 된다.영국은 실질적 위협에 직면한다.인도로 가는 길이 독일이 먹어버린 프랑스 해군에 막힐 수도 있는 것이였다.가뜩이나 이탈리아 해군도 지중해를 건드는 상황에서 영국은 이를 좌시할 수는 없었다.








영국은 지중해에 남아있는 프랑스 해군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영국 총리가 된 처칠은 프랑스에 함정을 이끌고 우리한테 오던지 아니면 모조리 자침시키라는 입장을 전달한다.프랑스는 큰 배신감에 휩싸이게 된다.땅 털린 것도 통탄할 일인데 해군을 내놓던지 자침시키라는 요구에 어의없어 한다.페탱은 영국과 대화를 하려 시도하나 영국은 다급했다.지중해에 있는 프랑스 해군 기지를 포격한다.폭격기도 출진하고 기뢰도 깔면서 프랑스 해군 함정을 모조리 깨부수려 시도하게 된다.이 과정에서 1300여명의 프랑스 해군이 사망하게 된다.페탱은 격분하여 영국을 적이라고 선언해 버린다.














영국은 혼란에 빠진다.처칠은 의회 연설을 통해 대국민 호소를 하게 된다.영국 내각은 분열된다.독일과 협상을 하자는 파와 끝까지 싸워보자로 양분된다.처칠은 독일과 협상은 안된다는 입장이였다.그동안 영국이 쌓아온 대영제국의 식민지 이걸 온전히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독일과 협상하면 대영제국의 모양이 상당히 빠지고 영국이 종이 호랑이라며 들고 일어설 가능성도 있었다.게다가 독일에 점령당한 나라에서 의용군이 영국으로 몰려드는데 이 판국에 협상을 하면 싸워보지도 않고 독일에게 머리를 조아리면 이건 영국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였다.







처칠은 그동안 정치의 이단아였다.그런 사람이 총리가 되면서 진정한 영국의 리더가 되기 시작하게 된다.처칠은 미국이라는 커다란 뒷배가 있다며 항복은 없다며 단호한 입장을 계속 피력한다.대중의 항전의지를 끌어 올리기 위해 당근을 던진다.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카드를 이 때 꺼내게 된다.영국의 복지국가 기틀이 여기서 시작된다.영국 국민들은 이를 자랑스러워 하게 된다.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개막식 쇼를 하면서 수많은 침대가 펼쳐지고 어린이들이 보살핌 받는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히틀러는 고민이 깊어진다.영국과 협상을 하고 적당히 유럽을 관리 좀 해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프랑스를 손쉽게 무너뜨리자 이 기회에 영국도 무릎 꿇리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로 생각이 바뀐다.가만히 생각해보니 노르웨이에서 영국 해군을 상대한 경험이 있었다.독일 해군은 영국 해군에 많이 밀리지만 독일에게는 막강한 공군력이 있었다.노르웨이 국왕이 탈출할 때도 독일 공군의 활약에 애를 먹고 간신히 탈출했다.공군은 이렇게 활약했지만 해군 성적은 처참했다.이거는 히틀러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하지만 프랑스가 먹히고 해군은 입도 뻥끗할 수 없게 된다.영국을 치려면 해군을 통해 상륙전을 해야하는데 이건 자살 행위였다.독일은 영국을 치는 바다사자 작전을 기획하게 된다.해군 총사령관은 안된다고는 감히 말 할 수 없고 공군을 물고 늘어지게 된다.제공권이 장악되면 힘써보겠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프랑스의 항복을 받고 히틀러는 괴링을 부른다.우리 공군이 영국을 무너뜨릴 수 있겠느냐 하고 물어 본다.괴링은 주저없이 예스라 대답한다.마지노선은 9월로 짧았다.이 시기가 지나면 바다가 험악해져서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상황이 되버리기 때문이다.괴링은 독일 공군의 에이스 조종사 출신이였다.영웅적인 이미지에 잘생긴 외모는 나치당의 인지도를 끌어 올리는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히틀러에게 아부를 잘하고 충성심을 내보이며 공군 총사령관직까지 꿰찬것이다.

















괴링은 나치 독일 공군의 힘을 키우는데 큰 공을 세우게 된다.조직을 키우는데는 재간이 있었지만 공군을 운영을 잘해서 적에게 타격을 입히는 전략가 스타일은 아니였다.괴링이 입지를 다진 것은 히틀러나 괴벨스가 가지지 못한 친근함이 한 몫을 하게 된다.히틀러는 거의 성역이였고 괴벨스는 호감있는 스타일은 아니였다.괴링의 이미지는 후덕한 마음씨 좋은 아저씨 인상을 독일 국민들에게 심어준다.독일 공군 사령관이 아닌 정치가로 본다면 괴링은 대중의 마음을 흔드는 묘한 카리스마가 있었다.자신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많은 예산이 공군으로 오게끔 하는 입지적 인물이기도 하다.하지만 전쟁이 거듭될 수록 총기를 잃게 된다.갈수록 되지 않는 똥고집을 피우면서 독일을 파멸로 이끄는데 기여를 하게 된다.독일이 패망하고 감옥에 가게 되고 약을 끊으면서 괴링은 다시 총기를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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