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군은 맷집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하게 된다.1선에만 55만 병력을 배치한다.2선에 배치한 부대까지 합치면 거의 130만 대군이 된다.과거 고구려 수나라 전쟁 때 알려진 113만 대군 출병 이후로 최대였다.무기도 처음 출병할 때는 온갖 잡다한 거를 다 가지고 들어왔으나 이제 장비도 안정된다.앞선 부대들이 깡으로 싸웠다면 이제 소련제 무기들이 공급되면서 중국군은 더 강해지게 된다.




76mm 포는 6.25전쟁 초반에 북한군이 사용한 야포였다.러시아 육군이 1차대전에 사용했던 포가 개량된 형태였다.조중연합군의 주력 대포로 사용되게 된다.야포로도 쓰고 대전차 잡는데도 쓰이는 포였다.북한은 아직도 이 포를 유용히 써먹는다.하지만 약간 파괴력이 딸리는 단점이 있었다.지금도 이 포는 북한 해안에 대거 배치되어있다.










76mm 포가 약하니 이것보다 구경을 늘린 122mm 포를 만들게 된다.2차대전 당시 소련에서 활약한 군단포였다.M-30은 원거리 포격및 적 포병 진지 공격에 쓰이게 된다.수평 사격 능력도 우수했다.소련군은 이 포에 8명을 붙여 운영했으나 중국군은 1문에 대여섯명만 붙여서 발사 속도가 아무래도 더디었다.유엔군은 이 포의 위력에 적지 않게 당황한다.이 후 더 파괴력을 높이기 위해 구경을 늘려 152mm 까지 만들게 된다.하지만 중국군은 이 구경은 너무 무거워서 쓰지를 못하게 된다.M-30군단포가 끌고 다니기도 편했다.중국군은 6.25 전쟁 이 후 이 포의 성능에 만족해 54식 곡사포로 개량해 실전 배치하게 된다.








카츄사라는 무기도 중국군은 끌고 들어온다.1930년 후반 소련 포병총국에서 아이디어가 나온다.항공기에서 지상을 공격해서 쏘는 폭탄을 하늘에서 쏘지 말고 한데 묶어서 지상에서 지상으로 투하하는 방식을 생각하게 된다.지속적 포격은 안되지만 넓은 면적을 한번에 초토화 시킬 수 있었다.2차대전 당시 독일은 이 카츄사에 곤역을 치르게 된다.별명은 스탈린의 오르간이였다.얘가 쏘면서 슈슈슉하는 기분 나쁜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독일군도 이를 모사해 다연장 로켓을 만들게 된다.미군과 시칠리아에서 싸울 때 써먹고 미군은 이 다연장 로켓을 울부짖는 매미라 별명 붙인다.미군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M4 셔먼 전차에도 달고 배에도 달고 비행기에도 달아서 적을 공격하게 된다.















2차대전 때 소련의 양대 전차는 KV-1 과 T-34-76이였다.문제는 T-34가 더 빠르고 KV-1은 중량이 무거웠다는 점이다.둘이 연계 작전이 어려웠다.게다가 KV-1은 무거운 중량으로 가는 곳의 도로나 교량을 망가뜨리면서 전진하게 된다.소련군부는 T-34를 더 많이 생산하자며 KV-1 생산량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인다.KV-1을 만든 코틴 설계국은 비상이 걸린다.잘못하면 자기들 밥그릇이 날아갈 판이였다.코틴 설계국장은 더 좋은 전차를 준비중이니 기다리라고 한다.게다가 그 전차에 스탈린이라느 이름을 붙일 것이라며 성능을 자신하게 된다.독일도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맹수전차를 잇달아 내놓게 된다.소련은 IS(이오시프 스탈린 약자)-1 이라는 전차와 독일 맹수전차로 싸움을 붙이게 된다.원거리에서 포를 쏘고 괜찮네 하고 달려들었다가 맹수 전차에 다가갔다가 완패를 하게 된다.파괴력 보강 필요성을 느끼고 IS-2 를 만들게 된다.드디어 이 전차는 맹수 전차 장갑을 뚫게 된다.소련은 이 전차를 전면에 내세우고 적진을 돌파 후 그 뒤에 다수의 T-34를 밀어넣는 전술을 즐겨 쓰게 된다.이 전차가 중국군 손에 들어가게 된다.


중국군은 보병 1개사단에 포병대대를 꾸리게 되는데 무장을 75mm 포 또는 76mm 포 12문을 배치하게 된다.이에 맞서는 미군은 보병1개사단에 105mm 곡사포 54문 ,155mm 곡사포 18문을 배치하고 있었다.단순 비교하면 미군 1개 사단 포병 위력이 중국군 1개 군단과 맞먹는 급이였다.문제는 중국군이 춘계공세를 준비하면서 사단이 어마어마하게 늘었다는 것이다.이전과 비교하면 거의 20배 이상 포병 화력이 증가된 것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