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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6.25 전쟁

밴플리트 사령관

by senamu 2025.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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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4월 중국군과 북한군 130만이 다시한번 공세를 준비하게 된다.이 시기 맥아더는 해임이 되고 그 뒤를 리지웨이가 이어받게 된다.리지웨이는 유엔군 사령관으로 승진하고 8군사령관 자리가 비게 된다.밴플리트가 8군 사령관으로 4월14일 부임하게 된다.그는 취임사에서 서울을 반드시 사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피력하게 된다.밴플리트는 후에 한국 육군 사관학교 설립에 아버지가 된다.그의 재단은 아직도 육군 사관학교와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밴플리트는 웨스트포인트 학교를 졸업하는데 그의 기수는 이른바 별들의 집합소였다.164명중 59명이 별을 다는 영광의 기수였다.밴플리트는 공부보다는 운동이나 이런거에 더 소질이 있었다.1차대전시 전시 원칙에 따라 대위에서 소령으로 진급 유럽에 투입된다.제17기관총대대를 이끌며 무훈을 세우게 된다.전쟁이 끝나자 원래 계급으로 복귀하게 된다.

밴플리트는 1차대전이 끝나자 진로를 고민하게 된다.좋은 육군 학교 다 때려치고 플로리다 주립대 ROTC 교관으로 가는 기행을 선보이게 된다.밴플리트는 교육생을 훈련하고 럭비를 지도하는등 병사를 키우는데 두각을 나타나게 된다.2차대전 당시 동기들은 별을 다는데 밴플리트는 진급에 뒤져 연대장으로 참전하게 된다.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 과감한 진격과 포병 운영으로 미 공수부대의 작전을 돕게 된다.하루에만 훈장 3개를 받게 된다.하지만 부상을 입고 후송된다.하지만 여기서 무단 탈출 부대로 돌아와 부대를 지휘하게 된다.1944년 8월 드디어 밴플리트도 별을 달아 준장이 된다.90보병사단을 지휘하면서 소장이 되고 패튼의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된다.후에 루르 포위전에서 대활약하며 전쟁 영웅이 된다.

밴플리트는 2차대전이 끝나고도 전장으로 가게 된다.그리스 정부군의 군사고문단으로 파견된 것이다.그리스 정부군은 공산군과 싸우고 있었다.밴플리트는 그리스군을 제대로 훈련시켜 그리스에서 공산군을 패퇴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밴플리트의 별명은 빅짐(big jim)이였다.키가 188cm 로 무척 컸고 덩치도 산만했다.웨스트포인트 시절 풋볼팀에 들어가 대활약하게 된다.지금도 그렇지만 미군 육사하고 해사의 풋볼은 거의 전쟁이였다.밴플리트는 해사를 풋볼로 제압하는데 1등 공신이 되며 풋볼스타가 된다. 

밴플리트는 덩치는 컸지만 순둥이였다.친절하고 온화하고 유머러스 했다.내향적이라서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이 성향이 그의 진급을 막게 된다.마셜 미육군참모총장이 하필 밴플리트와 이름이 비슷한 한 장교를 헷갈려 한다.이 장교는 무리한 음주와 사고로 골칫거리였다.이 사람이 밴플리트라고 오해한 것이다.마셜이 보기에는 술쳐먹고 럭비공이나 가지고 노는 문제아로 보이게 된다.이러다보니 번번히 진급이 누락된다.본인도 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보다못한 동기 아이젠하워가 나서게 된다.아이젠하워는 밴플리트가 술 못먹고 진국이라며 마셜에게 말하자 마셜은 깜놀한다.미안하다며 기회있을 때 마다 밴플리트를 진급시켜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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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플리트는 한국에 부임하면서 한국사람에 큰 애정을 가지게 된다.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를 찾아가 과자와 사탕을 나누어 주며 아이들을 살뜰히 챙긴다.밴플리트는 이전 그리스에서 공산군과 싸우면서 무엇보다 그 나라 사람 마음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았던 사람이였다.이승만 대통령과도 격없이 지냈으며 한국군 장성과도 허물없이 지내며 말그대로 밴아저씨가 된다.

밴플리트는 1951년 4월 부터 1953년 2월까지 미 8군 사령관을 역임하게 된다.이 시기 그는 무너진 육사를 재건하는 일등 공신이 된다.그리고 1953년 3월 31일 전역한다.전역 후 밴플리트는 한국을 잊지못해 한미재단을 만들고 한국을 돕는 일에 나서게 된다.밴플리트는 플로리다 주지사자리도 제안받지만 고사하고 오직 한국을 위해 헌신한다.완전히 내가 지켰던 한국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호의를 베풀게 된다.이런 마음에 한국 정부도 감명받게 된다.전역후 매년 한국에 2번 정도 반복하며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밴플리트가 미8군 사령관이 된 것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아시아에 대해 잘모르지만 그리스에서 공산군과 싸운 경험이 주효했다.리지웨이는 밴플리트를 싫어했다.낙하산아니냐며 의심하고 있었다.점찍어둔 후임이 있었는데 난데없이 밴이 온 것이다.리지웨이는 수시로 8군사령부를 방문하면서 밴플리트를 견제하게 된다.리지웨이는 더 위를 생각해 두고 있었고 밴플리트는 군인으로써 명예가 중요했고 이 전쟁이 끝나면 전역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이런 진심으로 부하들의 신임이 두터워지고 한국군 장성과 이승만 대통령까지 지지하게 된다.리지웨이에게도 이런 진심은 통한다.믿고 맡겨도 되는 실력자임을 인정하고 간섭을 줄이게 된다.

밴플리트는 화력전으로 매우 유명한 장교였다.2차대전당시 90보병사단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독일의 아르덴 공세 당시 룩셈부르크를 점령한 독일군 1개 대대를 향해 14개의 포병 대대를 동원해 화력으로 압살 시킨 것이다.아무래도 보병이 소탕하면 희생이 나므로 이같은 전술을 쓰게 된다.이제 중국군과 일전을 벌여하는 상황이 오게 된다.중국군은 이전보다 휠씬 많은 대포를 이끌고 한국으로 오게 된다.밴플리트는 우리가 포가 부족하니 그러면 탄을 많이 쓰면 맞춰지겠네 하면서 중국군과 일전을 준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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