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군은 킬러작전과 리퍼작전을 펼치는 동안 보안에 상당히 신경을 쓰게 된다.신문도 철저히 통제한다.기자들이 뭔 작전을 할 때 마다 대서특필하고 이게 고스란히 중국군 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남북전쟁당시 남군 스튜어트 기병대는 신문을 통해 북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북군을 괴롭혔던 역사가 있었다.미군은 엠바고를 걸어 보도를 통제하게 된다.하지만 불안 요소는 더 있었다.바로 맥아더의 입이였다.리퍼작전 개시일에 맥아더가 한국에 오게 된다.기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 것을 염려한 리지웨이는 맥아더에게 제발 가만히 있어달라고 간언하고 맥아더는 이를 수락한다.하지만 이 자리에서 작전은 노출안했으나 노골적으로 워싱턴을 비판해서 트루먼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다.







미군은 38선 돌파도 염두에 두게 된다.잽을 날리되 깊숙히 들어가지는 않게 된다.리지웨이는 다시 한번 지도를 펼쳐보고 구미가 당기는 지역을 발견한다.철의 삼각지대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이쪽은 평야지대로 미군의 대규모 기갑전력이 밀고 들어갈 수 있는 최적의 지역이였다.미군은 러기드 작전을 세우고 38선을 돌파하여 돌출된 전선을 평탄화하는 구상을 하게 된다.






1951년 4월 3일 오전 미 1군단 24사단과 25사단이 공세를 펼치며 위로 치고 올라간다.문제는 1기병사단 쪽이였다.화천댐이라는 장애물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리지웨이는 호지에게 화천댐을 별동대를 투입해 무력화 시키라고 명하게 된다.호지는 다시 1기병사단장 팔머에게 이 명령을 전한다.하지만 전달이 잘못되서 대규모 부대로 직접 점령하라는 뜻으로 알아듣고 공세를 감행하게 된다.이 공격 시도로 중국군은 방비를 하고 화천댐 수문을 열어버린다.수공으로 소양강에 부설한 부교가 손실되 공세가 몇일 뒤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미군은 계속 손에 손잡고 전선을 북으로 밀어올리게 된다.그러면서 각종 통제선을 촘촘히 긋게 된다.공세 펼치고 통제선에 다다르면 정지하고 다지고 다시 공격하고 이러면서 올라가게 된다.통제선 이름을 붙이면서 미군에게 친숙한 주 이름을 붙이게 된다.통제선 사이마다 있는 중간선은 미국 도시 이름을 붙여서 작전명이 입에 착착 감기에 만든다.이렇게 통제선을 촘촘히 한것은 안전을 위해서였다.잘못해서 부대들이 더 올라고 덜 올라가고 이러면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중국군이 파고들어 근접전을 펼치면 위험했다.이 원칙을 지키면서 미군은 야금야금 북으로 가고 있었다.



펑더화이는 병력을 1,2선으로 나누고 1선을 물러나게 한다.미군이 올라오면서 틈이 벌어지면 유인을 해서 포위 섬멸하려 했으나 미군은 정지선을 철저히 지키며 올라오고 있었다.펑더화이는 미군의 작전이 크게 바뀌었다며 당황한다.추가 병력을 압록강에서 북한지역까지 데려오게 된다.차량이 부족해 걸어서 오게 된다.10일치 식량도 각 병사에게 분배된다.여기에 미군 화력전에 대항하기 위해 박격포,기관총등으로 중무장 시켜 내려보내게 된다.



펑더화이는 유엔군이 전면 공세로 전환했음을 알게 된다.불안감이 엄습하게 된다.인천상륙작전에 대한 트라우마가 떠오르게 된다.실제로 진남포와 원산에 미군은 계속 잽을 날리고 있었다.게다가 감청을 통해 미국본토의 주방위군 40사단과 45사단이 일본에 도착한다는 불길한 소식을 듣게 된다.펑더화이는 저 병력이 상륙하면 좆된다고 판단한다.중국군 참모진들은 철의 삼각지대로 물러나자고 주장한다.여기면 원산과 진남포 어디든 갈 수 있었다.하지만 펑더화이는 달랐다.철원평야에서 물러나면 그대로 미군 기갑전력이 거침없이 진격할 거라며 무조건 사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공세를 펼쳐서 적을 때려 잡으면 상륙작전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