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평리 전투에 나서는 23연대는 연대지만 사단급 지원을 받는 부대였다.미군이 2차대전때 도입한 편제였다.연대에 다가 사단급에 붙을 법한 공병,포병,기갑까지 다 몰아준 부대였다.하나의 독립된 전투를 할 수 있는 부대였다.레인저 특수 부대도 포함된다.이 부대에 한국군 1개 중대도 배속되 함께 싸우게 된다.가장 강력한 무기는 155mm 곡사포였다.이는 중공군 군단급 포병을 능가하는 화력이였다.하지만 병력은 5800여명으로 부족했다.원래는 고지를 선점에 포로 때리면 좋겠지만 이러면 각개 격파 당할 확률이 높았다.퍼지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 원형진을 구축하게 된다.















23연대에는 프랑스 1개 대대도 포함된다.프랑스군을 이끄는 사람은 몽클라 장군이였다.대장급 지휘관이 대대를 지휘하는 것이다.짠밥이 엄청 높았다.몽클라는생시르 육군사관학교 출신이였다.학교다니다가 1차대전을 경험하게 된다.이 당시 초급장교가 많이 하늘나라로 갔는데 몽클라는 예외였다.그는 전투에 재능이 있었다.이 후 분쟁지역을 자청하고 모로코에 외인부대도 이끌게 된다.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군을 원래는 섞어야 했는데 하나의 독립된 중대로 만들게 된다.영국은 사단급 병력을 파병했다.프랑스도 상임이사국으로써 영국에 질 수 없다며 그에 못지않은 병력을 파견하려 했으나 프랑스는 알제리나 인도차이나에서도 전쟁 중이였다.할 수 없이 대대를 보내고 대신 압축된 정예병을 보내고 거기에 백전노장 몽클라를 붙인 것이다.몽클라는 6.25에 참전하기 위해 계급을 스스로 강등시키는 열정을 보이게 된다.






중국군 13병단 사령원 덩화는 미군의 23연대를 보병 연대로 착각한다.병력 우위를 살려 압살시키는 작전을 구사하게 된다.신속한 병력 기동이 생명이였다.희생이 몇이 나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미군이 지원하러 침투하면 연대 섬멸이 어렵다고 판단한다.재빨리 지평리로 통하는 지원길을 막고 23연대를 포위하여 격파할 생각을 한다.횡성에 있던 부대까지 투입하여 일전을 준비한다.




23연대장 프리먼 역시 만반의 준비를 갖추게 된다.프리먼은 중국어에 능통한 몇 안되는 중국통이였다.과거에 중국에서 3년동안 중대장 생활을 한 이력이 있었다.1940년 1월에는 중국 대사관 무관보에 근무하면서 중국어를 능숙하게 하게 된다.이 후 마셜 밑에서 아시아 담당 참모를 하면서 중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된다.태평양 전쟁 당시 미 6군에서 레이테섬에서 싸워봐서 실전 경험도 갖춘 장교였다.6.25 가 터지자 자진해서 야전 지휘관으로 참전하게 된다.그는 중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중국군 포로를 직접 심문해 중국군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