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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6.25 전쟁

원주 전투

by senamu 2025.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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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군은 영연방군의 희생으로 무사히 철수한다.중국군은 서울을 접수하게 된다.펑더화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며 1951년 1월 8일 부로 공격을 중지하고 정비 모드로 돌아간다.김일성은 이 결정에 반발하게 된다.빨리 남진해서 적화통일 하자며 의견충돌을 보이게 된다.김일성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자 소련 대사에게 스탈린으로 하여금 중국군이 남하하도록 압력을 가해달라고 부탁한다.펑더화이는 꿈적도 안한다.군량미가 턱없이 부족했다.트럭도 한 300여대로 미군 1개 사단보다 부족한 형편이였다.이 상황에서 남쪽으로 가면 그냥 사지로 들어가는 거였다.게다가 유엔군을 몰아냈다고는 하나 상처뿐인 영광이였다.온전한 부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펑더화이는 남으로 가려면 북한군 단독으로 가라며 으름장을 놓게 된다.

원주는 매우 중요한 곳이된다.유엔군이 방어라인 구축한 정중앙이였다.교통로도 사방으로 뻣쳐있는 요지이기도 했다.유엔군도 이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미2사단이 여기를 방어하게 된다.문제는 2사단이 이전의 손실로 신병 위주로 대거 보강됬다는 사실이였다.북한군은 여기를 노리고 들어오게된다 1951년 1월 6일 원주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눈이 계속 내려 항공 지원은 기대할 수 없었다.북한군은 미친듯이 주야를 가리지 않고 몰려들게 된다.포병진지까지 북한군이 파고들자 미군은 탄약수와 포수에게 수류탄과 M1 카빈을 주고 보병처럼 싸우라 명하게 된다.하지만 계속 이렇게 버티는 것은 무리라 판단한 2사단장은 원주에서 물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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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몬드는 원주를 사수하랬더니 뭐하는 짓이냐며 매클러를 나무란다.매클러는 계속 이러다가 죽는다며 철수를 계속 요청한다.알몬드는 그러면 포병이 원주를 때릴 수 있는 거리까지만 무르라고 한다.매클러 사단장은 다시 원주를 찾기 위해  감제고지인 247고지를 점령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백병전도 벌어지고 항공지원까지 받으면서 여기를 가까스로 되찾고 북한군을 원주 밖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한다.하지만 매클러는 공세기질이 부족하다며 부임 1달만에 짤리고 러프너가 그 자리에 앉게 된다.러프너는 공격적 전술을 구사하는 사단장이였다.

원주전투로 정신없는 틈에 북한군 2군단이 동부전선 틈이 벌어진 곳을 그대로 돌파해버린다.2군단은 빨치산 유격활동을 했던 병사로 구성된 부대였다.산악지형에 도가 텄다.특히 2군단 밑에 10사단은 그 명성이 더 높았다.재빠른 이동과 공격으로 미군은 이들을 걷는 공수부대라 칭할 정도였다.이 부대를 맡은 인물이 바로 최현이다.최현은 최해룡의 아버지이다.파고들어 혼란은 주었으나 문제는 체계적이지 못하고 게릴라 수준으로 전투를 벌였다는 것이다.

미군 미해병 1사단에게 이들을 밀어내는 임무를 주게 된다.북한군 2군단은 1월 20일 더 이상 침투를 못하고 평창으로 가게 된다.문제는 이 철수에 모든 부대가 간 것이 아니란 점이다.남은 북한군은 그대로 게릴라가 된다.미해병1사단과 한국군 1해병연대가 게릴라 소탕작전에 투입되게 된다.1월말에 이르자 게릴라들의 힘은 약해지고 소탕된다.

중국군이 정비 모드로 돌아가는 동안 유엔에서는 6.25전쟁 처리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오간다.1월13일 자유진영국가들은 휴전을 일단하고 타이완문제와 중국 유엔 가입을 논의하자며 공산권 국가를 설득하려 한다.마오쩌둥은 이를 거부한다.마오쩌둥은 지금까지 전황을 보면서 승리를 꿈꾸게 된다.마오쩌둥은 미군 전투력이 보잘것 없다며 장제스 군대보다 더 약하다고 말하기 까지 한다.처음 출정당시 조마조마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이제 점점 자신감으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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