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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6.25 전쟁

원자폭탄과 미영회담

by senamu 2025.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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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1월 초만 해도 미정부는 승리를 낙곽하고 있었다.크리스마스전에는 승리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하지만 중국군 참전으로 모든 계획은 어긋나게 된다.미국무장관 에치슨은 협상을 통해 해결하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합참의장 브래들리는 협상을 반대한다.협상카드를 들이미는게 우리 상황이 불리하다는 신호를 준다는 것이다.군사적 성과를 얻은 후 협상을 하자고 제안하게 된다.전황은 좋지 못했다.동부전선도 서부전선도 미군은 진격을 할 수 없었다.

군부와 국무부가 논의를 하는 동안 군부는 맥아더의 의견을 물으러 콜린스를 급파하게 된다.전황도 상세히 알 필요가 있었다.1950년 12월 4일 콜린스는 도쿄에서 맥아더를 만나게 된다.맥아더는 중국군 50만이 나타났다며 대규모 증원이 필요하다고 읍소하게 된다.웨이크섬에서 큰소리 쳤던 위엄은 사라져 있었다.중국군과 확전이 불가피하다 주장하게 된다.지금 중국군이 한반도에 투입되어 있으므로 본토가 비었을 거라며 본진을 털 것을 주장한다.하지만 중국 본토에는 300만 이상의 정규군이 있었다.

미군은 조심스레 핵무기를 점검하게 된다.미군부는 일본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이 후로 이 무기의 사용으로 인한 파급효과를 주기적으로 연구하고 있었다.당시 인식은 핵무기를 써도 꺼리낄게 없었다.미국 독점이였던 것이다.브래들리 합참의장은 핵무기 사용에 대한 검토만 하고 쓸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사고는 대통령이 친다.1950년 11월 30일 트루먼은 기자에게 답변을 하던 중 핵무기를 쓸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게 된다.신문은 곧바로 인용해 핵무기 사용이 임박했음을 대서특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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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참의장은 맥아더에게 핵무기를 쓴다면 몇 개가 필요한가를 조심스레 묻게 된다.맥아더는 26발이 필요하고 추가로 8발이 더 필요할 수있다는 대답을 한다.미국은 당시 핵폭탄 보유량이 300기 정도였다.MK-4라 명명된 이 원자폭탄은 폭팔력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가 있었다.맥아더가 요구한 양은 미군이 가진 핵무기의 10%였다.문제는 소련이였다.소련도 RDS-1 이라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미군은 1949년 소련과의 전쟁을 상정하게 된다.유럽에서 소련이 침공할 경우 필요한 핵무기를 한달 간 350여발을 소모할 것으로 예상한다.이중에 중국과의 전쟁에 30여기를 빼면 유럽 방어에 큰 균열이 생기게 된다.핵무기 투하 장소도 문제였다.중국은 공업화가 덜 되서 핵심 산업 시설이 부재했다.중국군 밀집 지역에 떨어뜨리는 방법이 있으나 전부 산속에 은폐하고 있는데다가 중국군에 대한 정보도 부재해서 타겟을 특정할 수 없었다.결국 워싱턴은 핵카드를 망설이게 된다.

핵무기 사용에 대해 유엔국들도 말리게 된다.영국은 1950년 12월 4일 미국과 회담을 갖게 된다.분위기는 좋지 않았다.트루먼은 중국이 참전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라며 공화당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영국 총리 애틀리는 중국과 협상을 하거나 한반도에 철수하거나 하자며 미국을 압박한다.둘다 미국의 위신을 깍아먹고 자칫 잘못하면 주도권을 영국에 주게 생기게 된다.영국은 내심 불안했다.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묶이면 유럽은 어떡하냐는 것이다.미국도 불안했다.영국이 이탈하면 상당수 유엔 회원국의 지지가 날아갈 것이 뻔했다.트루먼은 여기서 공산권국가에게 밀리면 유럽에서의 공산화 확장을 막지 못할 것이라며 애틀리를 설득한다.애틀리는 이번에 맥아더에 딴지를 걸며 이제 부터 영국과 미국이 같이 지휘를 하자며 새로운 제안을 하게 된다.브래들리는 미군은 유엔으로부터 전쟁 권한을 부여받은 군대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한다.브래들리는 영국군 몽고메리 사령관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일갈한다.하지만 미영은 공산주의 확산 방지라는 공통의 목적이 있었다.마지막날 콜린스는 전황파악을 마치고 워싱턴에 돌아와 상황은 심각하나 포기할 정도는 아니라는 보고를 하게 된다.여기서 미영은 핵무기 사용금지,한국을 포기 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미국은 위신이 깍이지 않으면서 전쟁을 끝낼 정전협정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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