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군들이 하갈우리로 모여들고 이제 하갈우리에서 다음 목표 고토리까지 가야 했다.하갈우리에서 부상병을 항공 수송하고 있던 물자들은 모두 소각해 버린다.12월 6일 드디어 하갈우리에서 선두 전차를 후미에 호위부대를 배치 고토리로 진격을 시작한다.미해병대는 철수하면서 항공지원을 받게 된다.철수로 주변을 폭격해버린다.중국군은 다급해진다.중국군 입장에서는 장진호에서 미해병을 섬멸할 절호의 기회를 놓친데다가 온전히 도망가자 애가 탄다.압록강 대기하던 예비군 26군을 신속히 장진호로 이동시키게 된다.







미해병은 철수를 결심하고 감제고지인 동쪽 고지를 먼저 선제 공격한다.중국군은 당황한다.철수하는 부대가 역공을 나오니 적지 않게 놀라게 된다.해병 1연대가 뚫고 올라왔던 지옥불 계곡에서 또다시 혈전이 벌어지게 된다.밤새도록 중국군은 공격했으나 철수를 막지는 못하게 된다.전사자 700여명을 내고 미해병 1사단 3개 연대는 무사히 고토리에 집결하게 된다.쑹스룬은 장진호에서 미군을 포위할 당시 마오쩌둥에게 미해병은 독안에 든 쥐라며 미해병 섬멸을 자신했다.그런데 이미 미해병은 장진호를 빠져나가 고토리로 집결해 버린다.







쑹스룬은 마오쩌둥에게 큰소리 쳤는데 잘못하면 목이 날아갈 수 도 있었다.다음 철수지인 진흥리를 가려면 장진강 발전소의 방수로 길을 지나야 했다.여기에 수문교가 있었다.무조건 이 길 아니면 갈 수 없었다.다른데는 천길 낭떠러지였다.중국군은 별동대를 투입 이 다리를 끊어 버리게 된다.미공병은 나무 다리로 임시 가설을 하게 된다.하지만 12월 4일 또 와서 다리를 끊어 버린다.미공병은 철길로 이 다리를 다시 이어 버린다.중국군은 12월 6일 새벽에 다시 와서 이것도 박살낸다.임시 보수로는 이을 수 없는 수준으로 만들어 버린다.












다리를 잇는 방법은 2가지가 있었다.장간조립교 설치라는 공병출신이라면 치를 떠는 방법이 하나 있다.2차대전 대량 보급되 연합군 진격에 일조를 한 조립 다리이다.하지만 이거는 자재와 시간이 너무 많이 들었다.다른 방법은 M2 부교이다.이거는 비교적 쉽게 설치할 수 있었다.미공병 장교는 머리를 맞대어 여기에 M2 부교 3개를 놓아 잇기로 결정을 하게 된다.









미군은 M2 부교를 항공투하하기로 결정한다.문제는 이게 하나에 1톤이 넘는 다는 거였다.처음에는 G1 낙하산을 사용한다.얘는 하중을 136kg 정도 버틴다.이걸 다닥다닥 붙여 투하했더니 대실패한다.특대형 낙하산 G5를 써보기로 한다.얘는 하나에 700kg 을 버틴다.시험할 시간은 없었다.그냥 M2 다리 하나당 G-5 2개씩 붙여 투하하기로 한다.61수송대가 투하 임무를 맡게 된다.12월 7일 오전 다리를 실은 수송기가 수문교 근처에 도착하게 된다.정확히 실수없이 투하해야 했다.예비 포함 총 5개를 떨어뜨린다.1장은 중국군 지역에 1장은 떨어져 파손된다.다행히 3장이 무사히 도착하게 된다.공병트럭으로 이 무거운 거를 옮겨 수문교를 복구하게 된다.









쑹스룬은 수문교 폭파에도 미군이 철수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황초령으로 58사단을 이동 시킨다.이 추위에 무리한 행군을 감행하게 된다.미해병이 고토리 떠나기 전날 극한의 추위가 닥치게 된다.황초령에 진을 치고 있던 중국군은 동사자가 속출하게 된다.12월 9일 미해병은 고토리를 철수하게 된다.출발하자 미군은 함재기를 동원 황초령 일대를 폭격한다.중국군은 추위에 죽고 네이팜탄에 죽고 이래저래 쓸려나가게 된다.그날 오후에 미군은 수문교 앞에 이르게 된다.











미해병은 수문교에 매복했던 중국군을 발견하게 된다.이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그대로 항복하게 된다.공병은 수문교 상태를 보니 생각보다 끊어진 길이가 더 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옆에 침목이 쌓인거를 보고 이거를 이용하기로 한다.하지만 일손이 좀 모자랐다.미군은 중국군 포로를 꼬득여 부족한 일손을 메우게 된다.공병은 육군의 전진과 마무리 까지 지어버리는 보이지 않는 공로자였다.태평양 전쟁 당시에도 공병의 활약은 두드러 졌다.길을 만들고 일본군 진지를 깨부시는 역할을 이들이 하게 된다.








미해병이 고토리에 출발할 당시 진흥리에 미해병 1연대 1대대는 수문교 다음 길을 개척하러 가게 된다.여기서 중요 감제고지를 먹어야 중국군 공격으로부터 아군을 구할 수 있었다.겁나 무거운 4.2인치 중박격포를 들고 산악 행군을 감행하게 된다.중국군도 중요성을 알고 여기에 부대를 배치한다.미해병 1연대 1대대는 고지에 있던 중국군을 공격하게 된다.비슷한 시간 수문교를 지나온 미해병 선발대도 이 고지를 공격하게 된다.양쪽 공격을 받은 중국군은 철수를 결정하게 된다.








미군 모두 수문교를 건너자 미공병은 다리를 폭파해 중국군 추격을 막게 된다.쑹스룬은 다잡은 먹이를 놓쳐다며 더 앞으로 군부대를 이동시켜 길막을 하기로 한다.중국군 77사단은 야간행군을 감행하며 미군을 추격하게 된다.하지만 중국군은 공격에 별 관심이 없었다.보급트럭만 공격해서 먹거리나 방한복 확보에 혈안이 된다.거의 산적 수준으로 노략질을 하게 된다.이제 중국군은 더 이상 미군의 철수를 막을 수 없게 된다.피난민들도 이 해병을 따라서 이동하게 된다.중국군은 이 피난민에 숨어서 미군등을 치려 했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12월11일 21시 미해병 전원 함흥 방어라인에 입성하게 된다.흥남 해상 철수가 결정되고 곧바로 흥남으로 가게 된다.미군은 여기에 장진호 전투에서 죽은 전우를 묻게 된다.중국군은 나중에 이 장진호 전투를 미해병대를 몰아낸 전투라며 극찬하게 된다.6.25전쟁 공간사에 그 내용이 고스란히 적혀있다.이 전투에 고무된 중국은 영화까지 만들며 대대적 선전을 하게 된다.하지만 중국군은 미해병 1사단을 섬멸하는 목적을 실패했다.사단을 무너뜨리면 이거는 전쟁의 판도도 뒤집을 수 있는 상황이였다.15만 정도의 중국군 9병단은 동사자,전사자 포함에 거의 5만여명의 손실이 발생하게 된다.한동안 9병단은 6.25전쟁에서 사라지게 된다.미국도 이 장진호 전투에 주목하게 된다.여러 미담과 영웅담이 쏟아지게 된다.장진호 전투는 치열한 겨울 전투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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