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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6.25 전쟁

6사단과 온정리 전투

by senamu 2025.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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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은 계급투쟁을 중시하는 군대였다.병사부터 간부까지 작전을 공유하다 보니 자신의 목표를 뚜렷이 알고 있었다.중국군의 압록강 도하는 극비리에 이루어 지고 있었다.사진이 남아 있는데  이 사진은 1951년 1.4 후퇴 후 여유있는 시간에 연출해서 찍은 사진이다.64군 소속 정치부 사진기자가 191사단 572연대의 도하 사진을 찍은 것이다.실제 압록강 도하 사진은 가장 밑에 사진이다.이 사진이 진짜로 압록강 도하를 건너는 사진인데 워낙 극비다보니 누가 찍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그 당시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도 처벌을 면하기 어려웠다.그만큼 보안에 신경써서 북한에 들어오게 된다.

중국군은 삭주와 만포진 부근으로 들어오게 된다.삭주에는 수풍댐이 있었는데 이 발전소는 규모가 커서 북한및 중국에도 전력을 공급했다고 한다.만포진은 지안이 있는 곳으로 옛 고구려 수도 국내성이 있던 곳이다.중국군은 10월 15일 도하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4일 후 북한으로 점점들어오게 된다.중국군은 유엔군을 속이기 위해 살금살금 이동하고 있었다.편한 길을 가지 않고 산으로 가고 야간 행군까지 감행하며 신속히 북한땅 깊숙히 진격하게 된다.밤 이동시에는 유엔 공군에 들킨다며 숨소리도 죽이고 불빛도 안켜고 행군을 하게 된다.

중국군이 도하에 성공하자 펑더화이 중국군 총사령관도 대유동으로 들어오게 된다.펑더화이는 대유동 근처에 와서 북한주재 중국 대사에게 김일성이 어디있는지를 묻게 된다.대사관도 김일성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자신의 승용차까지 버려가면서 김일성은 도주에 여념이 없었다.펑더화이 소식을 듣고 김일성을 살았다며 대유동으로 오게 된다.이곳에 통합사령부를 설치하게 된다.대유동은 천연요새였다.구한말 대유동과 운산 인근에서 노다지 금이 발견된다.그러면서 프랑스와 미국 자본가가 들어와 이 일대를 개발하게 된다.이 때부터 인프라가 깔리기 시작했던 것이다.한 때는 세계 금 생산량 7~8위까지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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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군은 방어라인을 잡고 유엔군을 막으려 했으나 이미 유엔군은 턱밑까지 들어오고 있었다.펑더화이는 방어전으로는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하고 거꾸로 공세를 펴서 적을 각개격파하기로 작전을 변경하게 된다.한편 맥아더는 물 들어올 때 노젖는다고 지금이 기회라며 진격을 독려한다.10월 24일 신맥아더라인을 깨고 더 진격하라고 독려하게 된다.맥아더는 11월 넷째주 목요일 추수감사절 전에 전쟁을 끝낼 희망회로를 돌리게 된다.수풍댐까지 유엔군 진격 명령을 내리고 옛날에 4군 6진이 있던 곳까지 가라고 병사들을 다독이게 된다.부대 사이 촘촘히 짜면서 라인을 끌어올려야 구멍이 안생기는데 여기저기 틈이 벌어지게 된다.

북진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겨울은 다가 오고 있었다.남쪽과는 비교가 안되는 추위가 시작되고 있었다.하지만 유엔군 병사들은  전쟁 종료에 들떠 있었다.보급이 원할하지 않게 된다.폭격으로 도로와 철길은 엉망이였다.개성에서 군수물자를 가져와야 했다.유엔군 같은 경우는 보급을 받아가면서 북진을 여유롭게 했지만 한국군은 달랐다.조국 통일이 눈 앞에 있다며 6사단이 신속 진격하여 압록강에 이르게 된다.이 시기 중국군은 조용히 유엔군 목을 조이려 다가오게 된다.병력 수는 사실 누가 우위라 할 것이 없었다.중국군의 현란한 기동에 마치 병사들이 많은 것처럼 보인 것이였다.

6사단은 6.25개전 초기 많은 활약을 하게 된다.북한군 2군단을 홍천과 춘천에서 막고 버틴 것이다.이 버팀으로 인해 북한군 작전이 꼬이게 된다.충북에서도 마찬가지였다.6사단 7연대는 북한군 집결지에서 북한군 15사단 48연대를 격파한다.이 전투로 7연대 장병들 모두 1계급 특진이라는 영광을 얻게 된다.이 부대가 압록강에 가장 먼저 도달하고 그 물을 떠서 이승만에게 보내게 된다.

중국군은 확실히 약한 고리를 알고 있었다.한국군 3개 사단 정도를 무너뜨리고 활로를 찾는 계획을 짜게 된다.운이 없게도 첫 희생량이 6사단이 된다.중국군 40군은 주요 요지에 병력 화력을 배치하고 야간에 6사단 2연대를 기습 공격하게 된다.꽹꽈리도 치고 나팔과 피리를 불며 정신없게 만든다.6사단장은 직감하게 된다.북한군이 아니다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2연대는 무너지게 되고 후퇴한다.다 후퇴하지도 못한다.잔존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19연대가 긴급 투입되게 된다.하지만 중국군은 19연대 마저 둘러싸고 공격하며 격파하게 된다.6사단이 무너지게 되자 압록강 까지 진격했던 7연대에 후퇴 명령이 내려지게 된다.7연대는 공중 엄호를 받으며 후퇴하나 이 역시 중국군이 가만두지 않게 된다.7연대는 3500여명 부대원 중 800여명 가량만 살아서 11월 6일 평안남도 개천에 집결하게 된다.6사단이 중국군 전술에 말려들어 각개격파 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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