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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6.25 전쟁

운산 전투와 비호산 전투

by senamu 2025.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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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사단이 무너지는 동안 한국군 1사단은 거침없이 진격하고 있었다.미군 전차대대까지 등에 없고 거칠것 없이 쭉우욱 밀고 들어간다.1950년 10월 25일 오전 11시경 1사단 15연대 앞에서 진격하던 전차대대에 박격포 공격이 떨어지게 된다.이 때까지도 북한군이 아직 건재한 줄 알았다.전투끝에 중국군 포로를 잡게 되고 1사단장은 포로를 직접 심문하게 된다.이 포로는 만주 국경이 아니라 저멀리 남쪽 출신의 병사였다.중국군 개입을 확인한 순간이였다.1사단장은 즉시 밀번에게 이를 보고한다.밀번도 심상치 않다고 여기고 8군 사령부에 보고하나 미8군 사령부는 그럴리가 없다며 보고를 흘려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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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군사령부는 속도 모르고 공격을 독촉하고 1사단은 공세에서 방어로 태세를 전환하게 된다.잘못하면 중국군에게 쌈싸먹힐 위기에 처하게 된다.미1기병사단은 진격을 멈추지 않고 점점 북진을 계속한다.1사단은 미1기병사단이 오기까지 버텨야 했다.10월 30일 미 1기병사단이 운산에 도착하게 된다.미1기병 사단과 연합해서 공세로 잠시 전환하나 이미 주요 길목을 중국군이 틀어막고 있었다.동쪽을 방어하던 한국군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밀번은 철수를 결정하게 된다.8기병대는 중국군 포위망에 가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특히 8기병대 3대대는 중국군과 혈투를 벌이게 된다.3대대는 궤멸적 피해를 입게 된다.어떤 언론은 자랑스런 미1기병사단이 전멸했다는 오보를 내기도 한다.이 전투가 운산 전투인데 미국민들은 이 소식을 듣고 경악하게 된다.미군은 북진 이후로 첫 후퇴를 하게 된다.

여기가 미군의 화력이 빛을 보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온정리와 온산 이 지역은 청천강의 본류,지류의 상류 지역으로 어마어마하게 복잡한 지형이였다.산지와 협곡이 얼켜있어서 화력을 퍼부어봐야 효과가 미비한 지역이였다.중국군은 이 복잡한 지형을 도보로 이동하면서 수류탄을 던지면서 근접전을 벌인 것이다.가지고 온 방망이 수류탄을 던지면서 공격을 감행하게 된다.도망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협곡이 그대로 장애물이 되면서 도망도 못가고 중국군에게 포위를 당한 것이다.청천강 이쪽은 우리에게 익숙한 곳이다.중국 수나라가 고구려를 치려오자 여기에서 을지문덕이 수나라군을 물리치는데 역사는 이를 살수(청천강 옛 이름)이라 한다.이제 반대 상황이 된 것이다.이런 오지에 지금은 북한 핵시설 지대로 유명한 영변도 자리잡고 있다.워커는 전군에 철수 지시를 내리게 된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 맥아더는 왜 퇴각을 하냐며 질타하게 된다.중국군 규모도 아직 파악이 안되고 있었고 진격이 멈춘 것은 아군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고 치부해 버린다.중국군은 한국군 사단을 무너뜨리기 위해 집요하게 파고든다.38군은 한참 뒤로 가서 한국군을 길막하고 부수려 하나 이 작전은 실패하고 한국군은 청천강 이북에 방어선을 구축하게 된다.한국군은 동쪽 비호산에서 중국군의 공격을 사활을 걸고 막게 된다.이 지역이 무너지면 뒤에 있는 아군의 운명을 장담할 수 없었다.7사단은 사력을 다해 비호산을 사수한다.3차례나 주인이 뒤바뀌는 혈전 끝에 중국군 38군을 막는데 성공한다.이 전투 이 후 중국군은 갑자기 사라지게 된다.맥아더는 이 상황에 왜 지레 겁먹고 후퇴했냐며 현장 지휘관을 꾸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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