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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6.25 전쟁

백골부대 38선 돌파

by senamu 2025.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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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진을 하려고 보니 북한의 도로사정이 문제였다.변변한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는 없었다.철길은 좀 있었다. 광복후 평양 원산 라인과 신의주로 가는 철도,그리고 러시아와 연결되는 철도가 그 축이였다.하지만 6.25발발하자 북한 보급 끊는다며 철길을 망가뜨려 버린다.공격하려면 보급로가 중요한데 이제 파괴된 철도가 발목을 잡게 된다.8군 사령관은 이를 간파한다.워커는 평양으로 우선 전체 병력으로 밀고 들어가 원산으로 가는 안을 내놓는다.이러면 지휘권도 단일화 되고 나름 합당한 선택지였다.하지만 맥아더 생각은 달랐다.지휘권을 2개로 나눈다.원산 가는 부대,평양가는 부대 이 둘을 경쟁 시키는 선택을 한다.이런 선택은 전에도 있었다.태평양 전쟁 때 맥아더는 필리핀 탈환을 하면서 6군 사령관과 8군 사령관을 경쟁 시켜 효과를 극대화 했던 옛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미군의 북진은 결정되었어도 아직 부담감이 있었다.달아오른 것은 이승만이였다.미군이 안가자 한국군도 38선 앞에서 대기하게 ㅗ딘다.이승만은 대구의 육군 본부를 방문한다.이승만은 여기서 그대들이 보기에 이나라 국군 통수권자는 나인가 맥아더 인가 하면서 북진 명령을 내린다.하지만 현실은 군통수권이 미군에게 있었다.정일권 육군 참모 총장은 북진할 구실을 만들기로 한다.지형 지물을 살피다가 기사문리 고지 일대를 발견한다.거기에 북한군 포병이 이쪽으로 공격한다며 얘네를 북진하여 격퇴하고 오겠다는 구실을 만든다.8군 사령관 워커는 이를 승인한다.1950년 10월 1일 한국군 1군단 3사단 (백골부대)는 최초로 38선을 돌파하게 된다.한국군의 북진에 미군은 공중 폭격을 지원해 준다.산악지형이라 폭격 효과가 반감되자 함포를 동원하게 된다.같은날 맥아더는 북한에게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하는 라디오 방송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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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마오쩌둥과 스탈린에게 SOS를 치게 된다.이전 부터 김일성은 소련에게 제발 공군좀 지원해달라고 매달리고 있었다.중국에는 중화기를 요청하게 된다.중국은 야포 말고 박격포같은 개인화기를 내주게 된다.스탈린은 자신을 안 거치고 김일성이 마오쩌둥과 소통을 했다는 사실에 분개한다.유엔 376호 채택으로 북진이 확정되자 맥아더는 10월 9일 최후통첩을 하게 된다.북한군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군을 기다리기로 하고 버티기 작전에 들어가게 된다.평양 축선을 중심으로 강력한 방어망을 구축하게 된다.

한국군 1군단은 수도 사단과 3사단이 서로 경쟁을 하며 원산으로 기어 올라가게 된다.태백 산맥 서쪽은 수도사단이 오른쪽은 3사단이 맡게 된다.두 부대가 금강산 레이스를 벌이고 있었다.보급이 원할하지 않자 북한군 거를 뺏어가며 전진한다.

수도 사단 안에는 기갑 연대가 있었다.당시에는 기갑이라는 이름만 있었을 뿐 탱크가 없었다.미군의 장갑차 몇대 밖에 없었다.말만 600여필 있었다.이런 상황은 월남전에도 변함이 없었다.하지만 베트남에서 전투가 거듭되면서 장갑차가 공여된다.1971년 3월 미군7사단이 빠지자 국군 32사단이 두고간 장비를 인수하게 된다.이 부대가 수도 사단안에 1973년 3월에 들어간다.이것이 수도 기계화 사단이 된다.후에 이 부대는 8사단으로 들어가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한국군끼리 경쟁하다 고비를 맞게 된다.신고산 철령 요새에 북한군의 완강한 저항을 받게 된다.수도사단 1연대와 18연대가 번갈아 공격했지만 실패한다.18연대 1대대장은 속임수를 건의한다.소련제 트럭 배기통을 다 제거하고 뒤에 트럭 40여대를 일렬로 라이트 켜면서 진격 시킨다.북한은 대규모 기계화 부대가 온다며 겁을 먹고 도주하게 된다.마침내 한국군 1군단은 북한군의 저항을 뚫고 원산 앞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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