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전다방/6.25 전쟁

원산 상륙 작전

by senamu 2025. 11. 20.
728x90
반응형

한국군이 원산 앞에 이르기 전 미군은 원산 상륙 작전을 준비하게 된다.상륙일을 1950년 10월 15일 로 정하는데 인천에서 장비를 적재하고 다시 서해 남해 동해를 지나 원산으로 가는데만 6일이 소요 된다.이런 지지부진한 진행에 워커는 차라리 10군단을 평양 진격에 쓰자고 주장한다.그러면서 한국군이 원산으로 갈 동안 항공과 함포를 지원해주게 된다.어쩌면 육지로 가는게 쉬운 선택일 수 있었다.하지만 원산 상륙 작전을 준비하던 10월 1일 무렵에는 서부 전선을 받쳐줄 보급이 아직 미비했다.이런 상황에서 8군과 10군단이 같이 움직이면 보급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10군단은 인천 상륙 작전 경험도 있고 하니까 빙빙 돌아 원산 상륙 작전을 감행하기로 한다.

원산 상륙 작전은 인천 상륙 작전에 투입된 부대가 거의 그대로 투입된다.하지만 차이가 있었다.북한군이 원산 앞바다에 기뢰를 산더미처럼 깔아 놓은 것이다.원산은 북한에게 매우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다.원산 좌측은 도심지 였고 동부는 산업 시설이 밀집해 있었다.북한군은 여기에 42사단을 투입해 막으려 한다.아직 병력이 완편되지는 않은 상태였다.포병연대 일부는 평양에서 오고 있었다.적이 오고 있다는 소식에 부족한 병력을 메우기 위해 죄수 부대를 투입한다.원산교도소 죄수 1800여명을 석방하면서 528 독립 연대를 만들게 된다.웬걸 한국군이 파죽지세로 원산앞에 이르자 이들은 도주하게 된다.

반응형

 

한국군은 원산 상륙 작전을 기다리지 않고 원산을 먹기로 한다.우선 원산을 훤히 볼 수 있는 고지 부터 공격해 들어간다.3사단과 수도사단은 누가 먼저 원산에 들어가느냐를 두고 진검승부에 들어가게 된다.변변한 지도 없이 전투에 임하다 보니 서로의 전투 지경선이 꼬이는 사태도 벌어지게 된다.동쪽이 먼저 뚫리게 된다.189고지를 점령하고 그 기세로 시내로 들어가게 된다.미해병 항공대는 공중 지원을 아끼지 않게 된다.이어서 여왕산이 점령되고 서쪽에서도 한국군이 원산에 입성하게 된다.10월 10일 10시에 수도사단과 3사단 모두 원산 시내에 들어온다.시가전을 벌이고 북한군 잔당을 소탕한다.10월 11일 새벽까지 소탕전을 벌여 원산을 손에 넣게 된다.이 시기 10군단은 출발도 못하고 있었다.워커는 원산이 한국군 손에 들어가자 원산으로 가서 한국군 1군단장 김백일을 치하한다.나중에 알몬드 10군단장이 와 훈장도 수여하게 된다.워커는 원산 비행장을 시찰하며 보급에 대한 계산을 하게 된다.

한국군은 이제 일본으로 부터 보급을 받을 수 있는 원산 비행장을 확보한다.미군은 원산 상륙 작전이 애매해 지게 된다.한국군이 이미 원산에 입성한 것이다.하지만 그대로 상륙 작전은 진행되게 된다.1950년 10월 6일 해병대 1사단이 배에 몸을 실게 된다.상륙작전을 하기 전에 소해 부대가 원산 앞바다 기뢰를 제거하러 들어가게 된다.무려 2주가 걸리게 된다.10월 25일에야 기뢰 제거를 완료한다.그전까지 상륙정은 원산 앞바다에 그냥 둥둥 떠있었다.

소해과정은 쉽지 않았다.10월 12일 소해정이 기뢰를 건드려 침몰하게 된다.해군 13명 이 전사하고 79명이 부상을 입게 된다.이러다 보니 소해과정을 조심스럽게 진행한다.많은 시간을 투입했지만 원산 기뢰를 다 제거하지는 못한다.이 소해 작업은 6.25전쟁 내내 이어지게 된다.보급기지로써 원산은 그만큼 중요했다.한국군이 원산을 점령했으나 미군은 이 참에 상륙전 연습을 해보자며 실전처럼 원산에 상륙전을 감행하게 된다.한국군은 원산 점령후 기세를 올려 단천 방향으로 진격하게 된다.7사단은 원산 상륙은 의미가 없다며 이원으로 가서 상륙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728x90

'역전다방 > 6.25 전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양 레이스  (0) 2025.11.23
기뢰  (1) 2025.11.23
백골부대 38선 돌파  (1) 2025.11.18
미군의 보급 파워  (1) 2025.11.18
북진 계획과 조지 마셜  (1) 2025.11.16